[기자수첩] 檢, 공소장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
[기자수첩] 檢, 공소장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
  • 조시현
  • 승인 2020.06.19 2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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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의 이례적인 공소장 변경 요청...재판부 "공소장에 간접 사실들만 나열돼"
공소장 변경 이뤄질까?...공소사실 뒷받침할 증거들 제출할 수 있을지 의문
한 사건에 대해 공소장 작성하기 기록 세울 듯

1980년대 대중가요 중에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라는 노래가 있다. 40대 중반 이상인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은 흥얼거렸을 노래이다.

‘사랑을 쓸려거든 연필로 쓰세요.  사랑을 쓰다가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라는 노랫말이 나오는 노래인데, 이 노래를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수사한 검사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물론 개사를 해서 말이다.

‘공소장을 쓸려거든 연필로 쓰세요. 공소장 쓰다가 쓰다가 변경하려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라고.

정 교수 재판에서 검찰은 그동안 공소장만 3번을 작성했다. 검찰은 지난해 9월 6일 자정이 되기 직전 전격적으로 정 교수를 기소하며 공소장을 1차 작성했다.

이후 11월 11일 정 교수를 14가지 혐의로 추가 기소하며 2차공소장을 작성했고,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으나 재판부가 불허하자 12월 17일 3차 공소장을 작성한 바 있다. 이른바 ‘1사건 2기소’라는 사법 사상 초유의 일이 일어난 것이다.

■ 재판부의 이례적인 공소장 변경 요청
그런데 이번에는 재판부가 먼저 공소장 변경을 검찰 측에 요청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2부(임정엽·권성수·김선희 부장판사)는 18일 열린 정 교수의 19차공판에서 “검찰 측은 7월 2일까지 공소장 변경 신청서를 제출하라”며 이같이 말했다.

재판부는 “현재 공소장에는 공소 사실이 특정돼 명시된 것이 아니라 간접 사실들만 나열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블루펀드 출자 증서 변경 거짓 보고의 경우 정 교수가 조범동 씨와 공모한 일시·내용 등을 특정해 기재해 줄 것과 정 교수가 출자 증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면 어떤 행위를 분담했는지를 명시해 줄 것을 검찰 측에 요청했다.

또 재판부는 미공개 정보 이용의 경우 조범동 씨가 자본시장법에서 규정한 정보제공자 지위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특정해 명시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어 정 교수의 딸이 인턴 활동을 한 후 받은 부산 호텔 아쿠아펠리스와 서울대 인권법센터의 확인서에 대해 각각 작성자와 작성시기 및 장소 등을 특정해 명시해 줄 것을 요청했다.

끝으로 재판부는 증거인멸교사 혐의와 관련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정 교수가 조범동 씨와 공동정범인지 여부를 정확히 밝혀달라”고 검찰 측에 주문했다.

이어 “조 전 장관과 정 교수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방법으로, 어떤 허위 내용을 작성하도록 지시했는지가 공소장에 나타나 있지 않다”며 “교사 행위를 특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교사 행위가 특정되지 않으면 공동정범으로 봐야 하는데, 증거인멸 공동정범은 형법상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짚었다.

■ 공소장 변경 이뤄질까?
이처럼 재판부가 나서 검찰 측에게 공소장 변경을 요청하는 일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 C 씨는 “재판부가 공소장 변경 이유를 조목조목 짚으며 변경을 먼저 요청한 것은 검찰 입장에서는 상당한 모욕감이 들었을 것”이라며 “이는 앞서 제출한 공소장의 공소 사실들이 허술하게 기재됐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재판부의 요청대로 검찰이 공소장 변경 신청서를 제출한다고 해도 이와 관련된 증거들을 제대로 갖춰 제출할 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재판부의 요구 사항이 담긴 공소장을 작성한다고 해도 이를 뒷받침할 증거를 검찰이 갖고 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이미 재판은 19차공판까지 진행됐다. 검찰은 한 사건에 대해 공소장 작성하기 기록만 세우게 됐다.

기록 달성을 앞둔 검찰에게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앞으로는 공소장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길 바란다. 그래야 변경하기 쉬울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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