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표, 2012 대선 끝난 날 ‘나 때문에 졌다’고 되뇌고 있었다”
“홍영표, 2012 대선 끝난 날 ‘나 때문에 졌다’고 되뇌고 있었다”
  • 김경탁
  • 승인 2020.03.2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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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씨 현장 인터뷰] 4·15 총선 대전 동구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후보 (1)
“대전 동구의 심각한 인구 감소는 그만큼 지역 정치가 무능했다는 의미”
이장우 전 동구청장, 시립병원 부지에 호화 청사…대전의료원 조속 설립해야

뉴비씨가 4·15 국회의원 총선거 대전 중구 지역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하는 장철민 후보를 지난 22일 만났다.

인터뷰가 진행된 장 후보의 선거사무실 벽면에는 대전 동구의 인구 변화 그래프가 크게 붙어있었다.

장 후보는 “광역시치고 이정도로 인구가 줄어든 사례가 있을까 싶은 곳이 대전”이라며, “대전 동구의 경우 1992년 31만명이던 인구가 2019년에 22만7천명 이하로 줄어들었을 정도”라고 이 그래프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비수도권 광역시들이 조금씩 인구가 줄기는 하지만 이정도로 줄어든 곳은 정말 흔치 않다”면서 “그만큼 지역의 정치가 무능했던 것이고, 국가균형발전 정책들이 동구에는 해당되지 못했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장 후보는 “도시 자체를 새로운 에너지와 새로운 정책, 새로운 비전으로 뭔가 끌어내서 다시 도약하는 동구를 만드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부분들에 대해 유권자분들에게 많이 말씀 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장철민 후보의 원래 대표공약은 중구에 있는 ‘대전역 역세권 문제 해결’이었다고 한다.

장 후보는 “조선시대까지 큰 밭이 있는 촌이었던 대전은 일제시대 경부선이 지나가면서 생긴 도시”라며, “철도에는 모태도시로서 대전을 키워낸 자원으로써의 의미가 있지만 철도가 가진 자원을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단순히 교통수단으로써뿐만 아니라 문화적, 역사적, 산업기술적 측면 등 철도가 가진 여러자원들을 잘 끌어낼 도시발전의 비전을 만들어 대전역을 비롯한 원도심이 새로운 혁신도시 클러스터로 만들 적임자가 장철민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그가 최근에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는 대전의료원의 조소한 설립이다.

대전의료원은 대통령 공약이기도 했고 지금도 국정과제로 되어있는데, 코로나 사태로 단순하게 질병 자체만의 문제가 아닌 국가안보적 차원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에 선거가 끝나 당선되는 다음날부터 바로 해결에 들어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이번 선거의 상대 측인 미래통합당 이장우 후보가 동구청장 재임시절에 원래 있던 시립병원 부지에 호화 동구청사를 지으면서 공공병원이 갈 곳이 없어진 상황이라는 점도 중요 공략 포인트이다.

장철민 후보는 “너무 호화청사로 짓다보니 나중에는 동구에 빚이 너무 많아지면서 부도 직전까지 가서 공무원들 월급도 못줄 지경이 되기도 했던 연혁이 있는 사안이 바로 대전의료원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장우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변호인 유영하 변호사가 ‘옥중서신’을 공개할 때 옆에 서있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1983년생인 장철민 후보는 올해 38살의 젊은 정치인이다. 

장철민 후보가 처음 선거운동을 시작할 때 지역주민들 사이에는 ‘너무 젊고 경륜이 좀 부족한거 아니냐. 연습 삼아 경험 삼아 나온 거 아니냐’는 말들이 나돌았다고 한다.

하지만 경선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 후보로 확정되고 이력이 점차 알려지면서 그런 말들은 거의 다 불식됐고 오히려 ‘대전에서 인물 하나 나온다’는 이야기가 퍼지고 있다고 한다.

2012년 당시 민주통합당 홍영표 의원실의 7급 비서관 공채에 합격한 그는 이후 만 7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내내 홍영표 의원 옆에서 국회의 크고 작은 실무를 맡아 일했고, 홍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로 뽑혔을 때는 원내대표실 정책조정실장에 기용되기도 했다. 

장 후보는 “홍영표 원내대표는 워낙 일 욕심이 많은데, 저와 합이 좀 맞았던 것 같다”고 이 시기를 회고했다. 일하는 것이 즐거웠고, 열심히 하다 보니 1년이 채 안되어서 홍 의원이 그를 비서관으로 승진을 시켜주더니 3년차에는 보좌관으로까지 올려주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현행법상 국회의원은 1명당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2명, 6~9급 비서관 각 1명, 유급 인턴 2명까지 최대 9명의 보좌진을 채용할 수 있는데, 의원실 최고서열이자 단 2명 뿐인 보좌관에 불과 경력 3년차에 나이는 30대 초반이었던 장철민을 기용했다는 말이다.

이와 관련 장철민 후보는 “채용될 당시 비서관으로서 제가 제일 젊었고 보좌관이 될 때도 제일 젊었다”면서 “원내대표실 정책조정실장도 보통은 30대가 하는 일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직업으로서 보좌진은 어떻게 보면 삶 자체가 정치”라고 말하는 장 후보는 “일도 즐거웠고 역할들도 꽤 의미 있는 일도 많이 치러서 굉장히 즐거웠는데 이제는 내 이름을 달고 정치를 해야겠다는 판단과 결심을 하고 뛰어들게 되었다”고 밝혔다.

장 후보는 “정치에 젊은 사람들이 너무 없다”며 “젊은 정치인이라고 하면 젊은 정치의 공간을 만들어주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해야하는 것도 있지만, 이 답답한 국회와 당에서 당에 바른 말도 하고, 쓴소리도 좀 하고, 할 말도 하고 그래야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뭔가 당론이 정해지고 거기에 따르는 것은 다른 이야기지만, 내부에서는 정말 치열하게 할 말 하고 싸워나가야 하지 않나 싶다”고 말한 그는 “물론 여태까지 국회에서 훈련됐기 때문에 세련되게 하기는 할 것”이라며 “좌충우돌하는 것은 에너지 낭비지만 들이받을 때는 들이받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야당과 여당을 거친 7년의 보좌관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냐고 물었다.

장 후보는 “처음 국회에 들어왔을 때 있었던 야당 환노위 간사방은 싸움의 최전선으로, 전투의 아방가르드라고 할수 있는 곳이었다”며 “솔직히 일 자체가 어려웠던 시기는 없었고 계속 재미있었다. 약간 정치체질인 듯하다”고 답했다.

그는 “2012년에 국회에 들어와서 일이 너무 재밌고 좋았다.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해에는 9시 퇴근을 두 번쯤 하고 나머지는 전부 밤 11시, 12시를 넘어 새벽 1~2시까지 일했던 것 같은데, 힘들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너무 즐거웠고 그래서 많이 배웠는데, 그렇게 일하다가 그해 12월에 대선이 있었다”고 장 후보는 말했다. “그때 당사 캠프가 영등포시장 안에 있었는데, 눈도 많이 와서 주변도 많이 눈으로 지저분한 풍경이었는데, 지고 나서 말 그대로 멘붕상태였다”고 말을 이었다. 

“그때 홍영표 의원은 캠프 상황실장이었는데 방 안에서 ‘나 때문에 졌다’고 되뇌이고 있었다”고 말한 장 후보는 “저희도 너무 어쩔줄 모르겠는, 정말 역사에 죄를 지었구나 하는 마음으로 강렬한 감정에 빠져서 거의 두어 달은 무슨 일도 잘 안되었던 것 같다”며 “그때는 뭔가 정비를 해서 나아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던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2부(바로가기)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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