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관희 칼럼] 쉽게 그려진 만평의 부끄러움
[한관희 칼럼] 쉽게 그려진 만평의 부끄러움
  • 한관희
  • 승인 2019.10.07 10:40
  •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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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집회를 민주당이 주도했는가?
집회를 통한 '세 대결'은 나쁜 것인가?
민주당이 민생을 외면하고 있는가?

쉽게 씌어진 것의 부끄러움

'씌어진 것'의 의미

 사람들은 각자가 자리한 위치에 따라서 다양한 수단을 통해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풀어낸다. 판사는 피고인이 받는 혐의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판결문을 통해 밝히며, 학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연구 문제를 연구논문을 통해 분석해낸다. 기자는 기사를 통해, 평론가들은 칼럼을 통해, 이렇다 할 표현수단을 가지지 않은 일반 시민들은 SNS에 올리는 짧고 긴 포스팅을 통해 자신이 가진 생각을 풀어낸다.

 마찬가지로 시인은 자신이 보고 느끼는 것들을 시로써 풀어낸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담아내기도 하고, 인간으로 지니는 고뇌를 담아내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를 고발하기 위하여 시를 쓰기도 하고, 자신이 목도한 참상을 담아내기 위하여 펜을 들기도 하였다.

 이런 관점으로 윤동주가 1942년에 쓴 시인 『쉽게 씌어진 시』의 한 구절을 되새겨보자.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윤동주(1942), 『쉽게 씌어진 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은 이 구절에 대하여 암울한 시대적 상황과 참혹한 현실 아래에서 자신이 고작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한 줄의 시를 쓰는 것밖에는 없음에 부끄러워하는 시적 화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배워왔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일제로부터 핍박받았던 우리 민족의 참상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살기 어렵다는 인생을 한 편의 시로 담아내는 데 있어서 시가 쉽게 쓰이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스스로 물어보는 것은 사회의 한 부분을 담아내는 데 있어 더 살필 것은 없는지, 놓친 부분은 없는지, 다른 관점으로 생각할 수는 없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고찰해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날카롭게 씌어진 양날의 칼, 만평

 대부분의 언론사는 글과 영상을 통해 기사를 내보내는 것뿐만 아니라 만화의 형태를 지닌 만평을 통해 사회를 풍자하고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글로 풀어낸 기사·평론이나 영상매체인 뉴스는 읽거나 시청하는데 어느 정도의 시간을 들여야 하지만, 한 컷 내지는 4컷 이내의 만화로 표현하는 만평은 생업에 바쁜 현대인들도 빠르고 쉽게 접할 수 있는 표현수단이다.

일반 텍스트 기사의 상당수는 ‘무플’로 하루살이 삶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만평은 다릅니다. 거의 예외 없이 댓글이 주렁주렁 달릴 뿐만 아니라, 반응의 강도 또한 상당히 ‘격한’ 편입니다.
- 한겨레, 2018.04.15.일자. "[이종규의 마주보기] 권범철 화백은 ‘ㅋㅋㅋ…’ 댓글을 좋아해요"

 또한 만평은 서슬 퍼런 군사독재정권의 탄압에 의해 언로가 막혀 평론이나 기사를 함부로 쓰기 어려웠던 시절에도 우회적으로 사회의 부조리를 풍자하며 사람들의 숨통을 틔워주기도 하였다.

"..예를들면 독재정권 시절이나 80년 초에 군사정권시절에 만평이 희망이었습니다. 기사는 못쓰지만 만평이 우회적인 사회적 풍자를 해주었습니다."

- 2008.02.21. MBC스페셜 "대한민국대통령 1부: 청와대사람들"에서 천호선 당시 청와대대변인의 인터뷰

 만평은 화백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시각화를 통해 전달한다. 화백은 자신이 만평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묘사하는 대상의 사소한 표정이나 구도 하나하나를 통해 전달할 수 있으며, 이렇게 표현된 화백의 메시지와 이미지는 사람들의 뇌리에 강렬하게 박히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평을 그리는 화백의 경솔한 표현은 자칫 사람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기 쉬우며, 심지어 충분한 고민과 성찰이 담기지 않은 일부 만평은 누군가에게는 아픔이 될 수 있는 소재를 여과 없이 사용하여 이를 보는 독자들의 분노를 자아내기도 하였다.

(미디어오늘 2017.06.14.일자 기사, "한겨레'외벽청소노동자 추락사' 만평 논란, 화백사과")

(한겨레 2016.09.04.일자 기사, "이탈리아 지진 희생자를 파스타로 비유샤를리 엡도 만평 논란")

  만평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강렬한 만큼, 만평작가가 그린 획 한 줄은 기자·평론가가 쓰는 글 한 줄보다도 몇 배의 고민과 성찰이 담겨야 한다.

쉽게 그려진 만평의 부끄러움

경향신문 김용민의 만평

 경향신문은 2019.10.04.일에 '세 대결 정국'이라는 제목의 만평을 게재하였다. 김용민 화백이 그린 이 만평은 '민주당의 서초동 집회'와 '자유한국당의 광화문 집회'가 먼 산 너머에서 '세 과시'에 급급할 때 태풍과 돼지 열병에 의해 고통받는 농민은 이를 망연자실하며 지켜보고 있다.

경향신문 김용민화백의 19.10.04.일자 만평. 경향신문 페이스북 캡처.
경향신문 김용민화백의 19.10.04.일자 만평. 경향신문 페이스북 캡처.

 이 만평은 지난 2019.09.28.일에 있었던 검찰개혁 집회를 다루는 과정에서 시민들이 모여서 한목소리를 낸 집회를 두고 풍과 돼지 열병으로 표현된 민생과는 동떨어져 있는 정쟁에 불과하다고 의미를 폄훼하고 있고, 이 검찰개혁 집회를 마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의해 주도한 것인 양 왜곡하였으며, 결국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정쟁에 골몰하느라 민생을 외면하는 정치집단으로 매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소지가 있다.

집회를 통한 '세 대결'은 나쁜 것인가?

 김용민의 만평은 검찰개혁을 갈망하는 시민의 목소리를 '민생과 동떨어진 세 대결'인 양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후술하겠으나 이는 검찰개혁 집회의 의미를 폄훼하는 표현이며, 자칫 위헌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집회라는 수단은 시민이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표현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임과 동시에 시민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수단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없는 시간을 쪼개 일부러 시간을 내어야 한다. 또한 많은 사람이 모이는 집회 현장은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확실함의 연속이다. 이러한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집회 현장에 나가면서까지 외치는 목소리는 그만큼 절박하고 강렬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모인 시민들은 집회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동료 시민들의 존재를 확인하기도 한다. 동료 시민들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구호를 외치며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느끼고 힘과 응원을 받아 가는 곳이 바로 집회 현장이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굳이 광장으로 나와 함께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또한 집회에 참여하는 시민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효과는 더욱 증폭되기에 집회에 시민들이 많이 모일수록 성공적인 집회가 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난 검찰개혁 집회처럼 수백만의 인파가 한곳에 집결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서 큰 힘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커다란 대로를 가득 메운 사람들을 담은 사진 한 장 만큼 해당 이슈에 대한 여론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 얼마나 있을까? 지난 검찰개혁 집회에 대하여 극우세력이 가장 먼저 보인 반응이 "언론이 보도하는 숫자는 과장되었다"는 것이었다는 점도 집회가 가지는 '세 과시'로서의 기능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난 검찰개혁집회 현장사진. 2백만 인파의 압도적인 힘이 느껴진다.(출처 : 사진작가 이성수님의 페이스북)
지난 검찰개혁집회 현장사진. 당시 현장의 압도적인 힘이 느껴진다.
(출처 : 바보갤러리 이성수작가님의 페이스북)

 거듭 말하지만 집회는 말 그대로 '한데 모이는' 행동이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목소리를 낸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행동이다. 다시 말해 '세 과시'나 '세 대결'은 집회 본연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에서도 집회의 자유에 대하여 국민들의 자신의 주장을 집단적으로 표명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라 명시하며 이는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라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 헌법질서 내에서 집회의 자유도 다른 모든 기본권과 마찬가지로 일차적으로는 개인의 자기결과 인격발현에 기여하는 기본권이다. 뿐만 아니라, 집회를 통하여 국민들이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집단적으로 표명함으로써 여론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집회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와 더불어 민주적 공동체가 기능하기 위하여 불가결한 근본요소에 속한다."

- 헌법재판소 2003.10.30. 2000헌바67 

 이처럼 민주주의의 필수요소라 할 수 있는 '세 대결'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폄훼한 김용민 화백의 만평은 독자들에게 집회·시위에 대하여 왜곡된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는 위헌적인 표현을 담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 화백 스스로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서초동 검찰개혁집회는 민주당이 주도하였나?

 다음으로 김용민 화백은 서초동 검찰개혁 집회가 마치 더불어민주당에서 주도한 집회인 양 묘사하고 있으며, 이는 자칫 검찰개혁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이 더불어민주당이 동원한 사람들인 것으로 오해받을 만한 표현에 해당한다.

 물론 더불어민주당이 이러한 집회를 이끌었다고 해도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물론 돈으로 사람을 사거나 위계에 의한 강압 등이 있었다면 비판의 소지가 있겠지만, 정당이라는 조직이야말로 정치적인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집합체이니만큼 정당이 집회를 주도하였다 해도 손가락질받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주의 검찰개혁 집회가 보여준 압도적인 힘은 수백만의 인파를 한데 모은 구심점이 실체가 있는 어떠한 정당이나 정치조직이 아니라 검찰에 대한 분노와 검찰개혁에 대한 의지였다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난주의 검찰개혁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더불어민주당이 동원한 사람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폄훼시키기 위한 의도가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객관적으로 보아도 지난주의 검찰개혁 집회를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했다고 볼 수 없다. 이는 지난 2016년에 있었던 박근혜 퇴진 집회를 떠올려보면 쉽게 비교할 수 있다.

 당시 제1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당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박근혜 퇴진 집회에 함께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지역위원회들의 깃발들이 광화문 일대에 나부꼈고, 더불어민주당의 주요 인사들이 무대에 올라 열변을 토하면 당원과 지지자들이 이에 화답하여 구호를 외치는 장면을 잊을 수 없다. 그 정도는 되어야 "집회를 주도하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지난 검찰개혁 집회를 참여했던 시민들은 보았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지역위원회들이 다수 참여하였으되, 그들도 수많은 시민의 일부로 함께하였을 뿐이다. 집회에 참여한 수많은 시민이 지인들과 삼삼오오 함께 모여 참여한 것처럼, 평소 함께 활동하는 지역위원회 당원들끼리 깃발을 들고 함께 모여 집회에 참여하였을 뿐이다. 심지어 국회의원들조차 시민들 사이에 섞여서 조용히 참여하였던 것이 지난주의 검찰개혁 집회이다.

 
민주당이 민생을 외면하고 있는가?

 김용민 화백은 만평에서 태풍과 돼지 열병으로 고통받은 농민이 저 멀리서 들려오는 집회 소리를 넋 놓고 바라보는 구도를 설정하였다. 필자는 이러한 구도가 궁극적으로는 '민생을 외면하는 정치 세력'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사실 민생을 의미하는 상징들과 정치권을 의미하는 캐릭터가 서로 동떨어져 있음을 보이는 구도는 그동안 많은 만평작가가 즐겨 사용하던 구도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도 김용민 화백의 메시지는 잘못된 메시지이다. 조금만 검색을 해보아도 더불어민주당이 태풍 등 재해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기 위하여 예산이나 지역위원회 인력 동원 등 가용한 모든 수단을 통해 집권여당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만평을 통해 민생을 외면하는 정치 세력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엔 억울하지 않을까?

"이낙연 총리께서도 행안부, 소방청, 경찰청 등 매몰자 구조를 위해 가용자원을 총동원하라고 지시한 상황이다. 당도 재난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지역위원회와 함께 피해복구에 총력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겠다. 현재 당 차원의 예산정책협의회가 진행 중인데 이번 태풍과 관련된 피해복구 예산을 최대한 반영하도록 하겠다."

- 2019.10.03. 더불어민주당 재난대책회의, 이해찬 당대표 인사말

구글에서 조금만 검색해봐도 더불어민주당이 태풍 등의 재해를 수습하는데 노력을 보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글에서 조금만 검색해봐도 더불어민주당이 태풍 등의 재해를 수습하는데 노력을 보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쉽게 쓰여진 만평의 부끄러움

 본 칼럼은 검찰개혁을 염원하는 시민들을 폄훼하고 집권여당에게 부당한 오명을 씌우는 한 만평으로부터 시작된 글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부적절한 만평을 본 시민들이 분노를 표출한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시민들로부터 비판받은 만평들은 하나같이 풍자의 대상에게 오명을 씌웠거나 아니면 풍자를 위해 사용한 소재가 누군가에게는 아픔이 될 것이 명백하였기에 뭇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아왔다.

 만평작가들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모든 사람의 입맛을 다 맞추냐는 등 나름의 항변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어떤 한 만평을 보고 모든 사람이 통쾌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최소한 만평작가라면 내 만평이 너무 쉽게 그려지지는 않았는지 거듭 고민해야 하며, 자신의 펜 끝이 향하는 방향이 제대로 되었는지 자신의 펜이 그리는 궤적이 올바른지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 하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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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룡점정 2019-10-16 00:35:45
경향 참...
기사 잘 봤습니다
뉴비씨 고맙습니다

전해정 2019-10-08 17:12:24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안병숙 2019-10-08 11:03:41
좋은기사 꼭 포털에서도보고싶어요

김은정 2019-10-08 10:56:49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sunnyten 2019-10-08 09:16:27
기사가 너무 좋습니다. 내년에는 이런 좋은 기사를 포털에서도 꼭 볼수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박지현 2019-10-08 08:58:12
굿굿.

이현수 2019-10-08 08:11:40
좋은 기사입니다

문파송송탁 2019-10-08 00:25:45
크으 잘 읽었습니다.^^

뭐여 2019-10-07 17:29:11
비단 만평뿐만이 아니라 쓰고 그리고 말하는 모든 사람들이 새겨야 할 말인 것 같습니다

쿨성우 2019-10-07 11:42:10
보고 있지만 보기 싫은 것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