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욱 칼럼] 변절자 엄용수의 의원직 상실을 기다리며
[정병욱 칼럼] 변절자 엄용수의 의원직 상실을 기다리며
  • 정병욱
  • 승인 2019.08.14 17: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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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과 항소심에서 징역 1년 6월에 추징금 2억원 선고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의원직 상실
노무현 대통령, 2006년 열린우리당으로 밀양시장 당선된 엄용수 각별히 챙겨
2007년 한나라당으로 당적 옮겨 재선 후 2016년 친박 자임하며 국회의원 당선
출처 : 엄용수 국회의원 홈페이지

열린우리당의 참패로 끝난 2006년 5.31지방선거. 하지만 열린우리당 입장에서 전혀 실익이 없지는 않았다. 영남지역에서 두 곳의 기초자치단체장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천사령 함양군수 당선자와 엄용수 밀양시장 당선자가 그 주인공들이었다.

천사령 군수는 2002년 무소속으로 당선되어 2004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했기 때문에 '현역 프리미엄'이 열린우리당이라는 핸디캡을 이겨내고 당선됐다고 할 수 있었다.

밀양시장은 달랐다. 밀양은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 치러진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자유한국당 소속 현직 시장이 재선될 정도로 보수 색채가 강한 지역이다. 2006년 지방선거 당시에는 '원조 보수'로 불릴만큼 한나라당 내에서도 보수적 성향이 매우 강했던 김용갑 전 의원이 밀양 지역구였다. 그런 밀양에서 엄용수가 시장에 당선됐으니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만했다. 

엄용수가 밀양시장에 당선된 과정도 기적이나 다름이 없었다. 엄용수는 40세의 정치신인이었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와 줄곧 회계사일만을 해온 사람이었다.

상대는 경남도의원과 교육위원을 역임한 한나라당의 박태희 후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했다. 선거판에서 잔뼈가 굵은 박태희를 상대로 엄용수는 선거비용 보전만 받아도 다행이라는 평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개표함을 열어보니 엄용수와 박태희가 엎치락뒤치락 하기 시작했다. 농촌의 개표함이 열릴 때는 박태희가 앞서나갔다. 하지만 도심의 개표함이 열리자 엄용수가 역전했다. 그렇게 역전과 재역전을 반복한 끝에 다음날 새벽 2시가 되어서야 당선자가 발표되었다. 열린우리당의 엄용수의 승리였다. 득표수 2만3,261표, 득표율 40.7%. 249표 차의 극적인 당선이었다. 지역주의와 보수주의의 아성인 밀양에서, 개혁정당이자 전국정당인 열린우리당 소속의 정치신인이, 지역유지 출신의 한나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는 선거혁명은 그렇게 일어났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9월 전국 광역자치단체장들과 기초단체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된 '사회적 일자리 창출 보고회'에서 엄용수 밀양시장을 기초단체장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메인 테이블에 앉혔다. 지역주의의 벽을 깨고 열린우리당 깃발로 밀양시장직에 오른 엄용수의 놀라운 당선을 간접적으로 치하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7년 열린우리당이 붕괴 위기에 처하고, 한나라당으로 정권이 교체될 것 같은 전망이 강하게 일자 엄용수는 열린우리당을 탈당해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참여정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아 임기 중에 100만 평방미터 규모의 하남일반산업단지 조성 등 여러 가지 역점 사업들을 손쉽게 따냈기에, 신의 없는 행동으로 보일 여지가 충분했다. 기적을 연출한 밀양대첩의 주인공은 그렇게 평범한 '한나라당 소속'의 '영남 기초단체장'이 되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나선 엄용수는 현역 단체장이라는 이점과 한나라당 당적까지 더해져 손쉽게 당선에 성공했다. 2014년 밀양시장 불출마를 선언한 엄용수는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밀양·창녕의 본래 국회의원이었던 조해진이 유승민계라는 이유로 컷오프를 당하자 "친박"을 표방하며 새누리당 공천장을 받아냈다. 그리고 컷오프에 불복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한 조해진을 상대로 여유있는 승리를 거두며 처음으로 여의도에 입성했다. 

그렇게 탄탄대로를 달릴 것처럼만 보였던 엄용수의 정치인생은 2017년 12월 정치자금법 위반혐의로 불구속 기소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2016년 총선 당시 2억원의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가 검찰에 적발됐다. 검찰로부터 징역 4년형을 구형받은 엄용수는 2018년 11월 창원지방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 6월에 추징금 2억원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2019년 8월 14일, 부산고등법원 형사1부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엄용수는 1년 6월에 추징금 2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뒤집지 못했다. 현역 국회의원이라는 점을 고려해 1심과 2심 모두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엄용수의 국회의원직은 이제 대법원 판단만 남았다. 이변이 없는 한 의원직 상실은 시간 문제가 됐다. 엄용수는 국회에 등원한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했다. 국회 패스트트랙 처리 과정에서 채이배 의원 감금사태의 공범으로 고발당했다.

한 때 열린우리당 출신의 개혁적인 기초단체장이었다는 사실을 무색하게 할만큼 놀라운 변절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작은 매우 창대했으나, 그 끝은 몹시도 미약한 결말이다. 대법원 판결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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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운 2019-10-01 22:06:56
좋은 정보입니다. 욱일기에 반대한 엄용수가 누구인지 궁금했는데 이런 시정잡배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