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진탁의 우리가 잘 몰랐던 발칸 반도]② 20세기 상흔 극복 못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노진탁의 우리가 잘 몰랐던 발칸 반도]② 20세기 상흔 극복 못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노진탁
  • 승인 2019.08.1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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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상흔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는 세계 1차 대전의 발원지로 유명하다. 1914년 보스니아 국적의 세르비아계 청년이 세르비아 민족주의 광풍의 영향을 받아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태자를 암살한 사건 말이다. 20세기 후반에 또다른 국제전이 있었다. 동구권 붕괴 시기에 보스니아의 분리 독립 움직임을 막기 위해 세르비아가 주도하는 유고슬라비아 정부가 만행을 저지른다. 보스니아 내에 거주하는 세르비아인들은 유고슬라비아 정부의 지원을 받아 보스니아인들을 학살했고 이로써 돌아오기 힘든 강을 건너게 된다.

교과서에서 많이 봐왔던 사라예보 저격 사건
교과서에서 많이 봐왔던 사라예보 저격 사건
사라예보 저격 사건의 그 자리. 라틴교
사라예보 저격 사건의 그 자리. 라틴교

발칸 반도를 휩쓴 유고슬라비아 전쟁은 서방 세계의 개입으로 마무리 된다. 데이턴 협정에 의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둘로 쪼개졌다. 북쪽은 세르비아인들이 거주하는 스릅스카 공화국, 남쪽은 보스니아인들이 거주하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으로 나뉘었다. 이 둘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라는 하나의 나라에 속해 있는 동시에 독립된 자치 공화국이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이름이 두 어절로 되어있다 보니 간혹 오해를 받는다. 공교롭게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1국가 2체제이기 때문에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가 두 구성체이고 그 둘을 합한 이름을 공식 국명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설명이 인터넷상에 떠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왜곡이다.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는 지명이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스릅스카 공화국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1국가 2체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1국가 2체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에 거주하는 보스니아인들은 무슬림인 반면, 스릅스카 공화국에 거주하는 세르비아계 주민들은 세르비아 정교회 신자이다. 차이도 차이지만 전쟁이 아주 최근이었기 때문에 감정의 골이 심하게 깊다. 스릅스카 공화국의 주민들은 방송도 세르비아 방송을 보는 등 세르비아에서 발산되는 문화를 누리고 세르비아인들에게 아주 우호적인 대우를 해준다. 반면 남쪽의 보스니아인들에게는 적대적인 감정을 서슴지 않고 드러낸다.

동구권의 붕괴와 서방 세계를 흔든 국제전의 직격탄을 맞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유럽 최빈국 중 하나로 꼽히며 유럽 내에서 난민을 가장 많이 발생시켜온 나라이다. 슬로베니아로 이민을 온 사람들의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이 바로 보스니아 출신이다. 그리고 이들 중 대부분은 난민이거나 보스니아의 가난을 벗어나고자 온 노동 이민자이다.

헤르체고비나 지방의 매력적인 도시, 모스타르
헤르체고비나 지방의 매력적인 도시, 모스타르

보스니아가 다시 일어나기는 정말 쉽지 않아 보인다. 뭔가 국민들에게도 동력이 될 만한 것이 필요해 보이는데 현재로서는 그것이 스포츠 정도 밖에 없지 않나 싶다. 유고슬라비아 시절 1984년 수도인 사라예보에서 올림픽이 개최되었던 것이 여태껏 국민 최대의 추억이다. 이는 사라예보를 돌아다녀보면 아주 쉽게 느낄 수 있다.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 뛰고 있는 AS로마의 에딘 제코, 유벤투스의 퍄니치를 아느냐는 식당 주인장의 모습에서도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 스포츠에 있음을 느꼈다.

사라예보를 방문하면 꼭 가봐야 할 바슈카르지아 시장
사라예보를 방문하면 꼭 가봐야 할 바슈카르지아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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