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욱 칼럼] 이진주씨 비판자들에게 묻는다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
[권순욱 칼럼] 이진주씨 비판자들에게 묻는다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
  • 권순욱
  • 승인 2019.07.08 15:40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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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차 사건 당시 노무현 대통령 일가족 향한 언론 테러는 한겨레, 경향도 동일
조선,중앙,동아일보에 대한 적대감만으로 일관성 상실한 비판 난무
한겨레, 경향을 비판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진주씨 비판은 더러운 진영논리의 결정판
한겨레와 경향 등 진보언론 비판하는 시민들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 중에서도 소수에 불과

다시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라는 질문을 던진다. 지난 4월 29일에 내가 펴낸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에서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했지만, 이 질문은 당사자들이 반성을 하고 사과를 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아직도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소위 진보언론과 지식인들이 유포한 허위사실에 사로잡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이명박 정권과 검찰, 그리고 소위 조중동 등 보수언론에게만 묻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2008년 12월부터 2009년 5월 23일에 이르기까지 노무현 대통령을 향한 저주, 증오, 조롱에 터잡은 소설같은 기사를 쓴 것은 소위 민주진보개혁 세력이라는 사람들이 '원팀', '우리편'이라며 감싸는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도 다르지 않았다. 그 역사적 사실을 압축하고 압축해도 450페이지에 이른다. 원고를 줄이기 이전의 초고는 700페이지가 넘는다. 이마저도 극히 일부만 정리한 분량이 그 정도다.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는 소위 진보적인 언론, 시민단체, 지식인, 정당들이 노무현 대통령과 그 가족을 향해 내뱉은 소설같은 기사, 칼럼 등 저주와 조롱을 모두 담아낸 책이다.

사과문으로 적당하지 않았던 이진주 전 <중앙일보> 기자의 사과문

<중앙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했던 <걸스로봇>이라는 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는 이진주 씨가 페이스북에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 씨의 미국 자택 취재 경험을 토대로 '반성(?)문'을 올리며 주말 동안 논쟁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이 씨는 기자 초년병 시절 용산 참사 취재기에서부터 노건호 미국 자택 취재 이야기를 풀어냈다. 여기에 자신이 살아온 가정사도 곁들였다.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반론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구구절절 자신의 인생을 풀어내며 마치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변명으로 들렸다. 많은 사람들이 유태인 학살에 가담했던 아이히만 이야기를 꺼냈고,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도 집어들었다.(이진주 씨의 페이스북 원문 링크)

(사진=이진주 씨의 페이스북)

이 씨의 구구절절한 반성문에 대해서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했고,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으니 굳이 동어반복을 할 필요는 없겠다.

그런데 나는 정말이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씨의 글에 분노를 표현할 줄은 몰랐다. 2008년 12월부터 2009년 5월 23일까지 벌어졌던 그 '광란의 칼춤'을 시민들을 모아 매일 모니터링을 하며 하루에 수백개씩 쏟아지던 언론보도를 기록했던 사람으로서, "언론보도는 소설"이라며 악을 쓰며 외치다 '무뇌 광노빠' 소리를 들으며 불가촉 천민 취급 당했던 사람으로서,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는 우리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주지 않던 그 당시 싸늘했던 국민 여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정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분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럽다고 해야할지 참으로 복잡한 심경이었다.

2009년 3월 20일 필자가 만든 동호회인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사이트 : http://cafe.knowhow.or.kr/media)은 카테고리 구분에 있어서도 조선, 중앙, 동아일보 등 보수언론과 한겨레, 경향 등 소위 진보언론을 하나로 묶어서 정리했다. 이들의 보도행태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진=역기사. 이 사진은 현재는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고 비공개로 돌린 2009년 당시 카테고리의 일부다. 수많은 언론보도를 매일 정리했고, 이 자료를 토대로 2009년 10월에 <내 마음 속 대통령, 노무현재단 펴냄>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진주씨를 비판하는 그 정의로운 목소리들을 보며 "2009년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민들이 함께 언론과 맞서 싸웠다면"이라는 부질없는 가정을 하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을 존경하지 않는다는, 참여정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사람들조차 이진주씨에 대해 분노하는 것을 보면서 2009년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진주 씨의 사과는 기자들 중에서는 첫 사례, 침묵하는 한경오

이진주 씨의 사과문이 적절하지 않은 것과는 별개로 적어도 2009년 광란의 칼춤을 추었던 한국 기자들 중에 이렇게 공개적으로 사과문을 올린 기자는 이 씨가 처음이다. 당시 조중동과 별반 다르지 않은 기사를 썼던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 소위 진보언론 기자들 중에 공개적으로 사과를 한 사례는 아직 없다.

어떤 기자들이 어떤 기사를 썼는지는 내 책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에 자세하게 실려있다. 기자, 논설위원, 교수, 시민단체, 정당들이 내뱉은 언설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오히려 소위 민주진보개혁 세력이라는 사람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몽땅 이명박과 검찰, 그리고 조중동에게 뒤집어 씌우고 자신들은 마치 무고한 듯이 굴었다. <한겨레신문>의 2009년 5월 28일자 '진정한 화해는 용서를 구하는 데서 시작해야'라는 제목의 사설이 대표적인 사례다.

2009년 5월 28일자 한겨레신문 사설
2009년 5월 28일자 <한겨레신문> 사설

<한겨레신문>은 이 사설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입을 빌려 자신들은 책임이 없는듯이 보수언론 책임을 지적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현 정권의 ‘몰이 사냥’을 견디다 못한 선택이었다. 촛불에 덴 정권이 그를 배후로 의심해 정치적 보복에 나섰고, 그 하수인인 검찰은 내부에서조차 범죄 성립이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무리한 수사를 강행했다. 보수언론은 여과 없이 혐의사실을 공표하며 그를 구석으로 밀어붙였다. 외국 언론의 눈에조차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증오로 비칠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오늘의 비극을 낳은 자신들의 책임에 대해선 한마디도 않은 채 ‘근거 없이 검찰 책임론을 운위하거나 정당한 보도를 비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정말 뻔뻔하고 파렴치한 사설이 아닐 수 없었다. 박연차의 태광실업 압수수색에서 시작해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 이르는 그 기간동안 한겨레와 경향도 조중동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태연하게 "보수언론은 여과 없이 혐의사실을 공표하며 그를 구석으로 밀어붙였다"고 쓰고 있다. 

검찰의 언론플레이에 놀아난 것은 한겨레와 경향도 다르지 않았고, 오히려 그 해악은 너무도 컸다. 소위 진보언론이라고 하는 한겨레와 경향이 썼던 기사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에 금이 가게 만들었다. 검찰 입장에서도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편이라고 여겨지는 소위 진보언론이 써먹기에 더 좋은 언론이었다. 보수언론이 쓰는 것보다는 진보언론이 검찰 입장을 잘 받아써주면 검찰 수사 행태에 대한 신뢰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검찰 수사는 언론보도 덕분에 여론의 지지를 받았다. 박연차의 640만달러에 대해서도 노무현 대통령이 대가성 있는 돈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2009년 4월 13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6.1%는 노무현 대통령의 해명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신뢰한다는 응답은 22.7%에 불과했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이 11.2%였다.

<한겨레신문>의 2009년 5월 28일자 사설은 자신들 스스로에게 해야 할 말을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보수언론을 향해 일갈하고 있다. 참으로 파렴치하고 뻔뻔한 행태다.

소위 진보언론이 어떻게 검찰의 충견 노릇을 했는지 그 일부만 보자.

<경향신문> 2009년 4월 1일자 3면. 검찰이 그려놓은 그림을 그대로 받아 쓴 기사로 박연차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 그림은 검찰이 백브리핑을 통해 언론에 흘려준 걸 그려놓은 그림이다. 그림만 보면 무죄추정의 원칙은 사라진다.
<경향신문> 만평
2009년 4월 8일자 <경향신문> 기사 목록이다. 마치 잔치가 열렸다는 듯이 노무현 대통령과 그 주변을 향해 정성을 다해 공격을 하고 있었다.

조중동은 물론이고 한겨레와 경향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이 검찰이 흘리는 정보를 열심히 받아쓰는 동안 국민 여론은 노무현 대통령을 불신하는 방향으로 흘렀고, 노무현 대통령의 무고함을 주장하는 나같은 사람은 세상 인심과 동떨어져있는 '무뇌광노빠' 취급을 당하며 노무현 대통령이 당하는 조롱과 멸시를 함께 견뎌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은 법적으로 문제 없음을 밝히기 위해 자세를 가다듬고 있었다.

<사람사는세상> 홈페이지에 필자가 개설한 비공개 동호회인 <좋은 자료 모으기 동호회>(http://cafe.knowhow.or.kr/data)에 박연차의 진술을 반박하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자료를 요청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조중동은 물론이고 한겨레와 경향 등 모든 언론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박연차가 검찰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준 돈이다"라고 진술했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박연차는 그렇게 진술한 적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권양숙 여사와 자녀들이 받았다는 박연차의 640만달러가 결코 대가성과는 무관한 돈임을 입증하기 위해 박연차의 기억 조작 혹은 기억 왜곡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런 의지는 오래 가지 못했다. 유일하게 검찰 수사의 문제점과 논리의 결함을 보도한 언론은 <내일신문>이 유일했다. 더구나 노무현 대통령은 봉하마을 사저에서 종이신문으로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을 구독하고 있었다. 조중동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을 사지로 몰고 간 언론은 대체 어느 언론인가?

박연차의 진술을 반박하기 위해 기억의 신빙성에 관한 자료를 요청하고 있던 그 시기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아래에 나오는 칼럼은 전체의 10분의 1도 안된다.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발언과 교수와 시민단체 등 외부 필자들을 총동원해서 노무현 대통령을 공격했다.

2009년 4월 14일 <미디어오늘> 박상주 논설위원은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산화하라"고 주문했다.
2009년 4월 16일 <경향신문> 이대근의 칼럼. 이대근은 이 칼럼에서 "노무현 당선은 재앙의 시작이었다고 해야 옳다. 이제 그가 역사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이 뿌린 환멸의 씨앗을 모두 거두어 장엄한 낙조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라고 썼다.
2009년 4월 30일 <한겨레신문> 김종구 칼럼. 이 칼럼에서 김종구는 "지금이야말로 그의 예전 장기였던 ‘사즉생 생즉사’의 자세가 필요한 때다. ‘나를 더 이상 욕되게 하지 말고 깨끗이 목을 베라’고 일갈했던 옛 장수들의 기개를 한번 발휘해볼 일이다. 그가 한때 탐독했던 책이 마침 <칼의 노래>가 아니던가. ‘사즉생’을 말하는 것은 노 전 대통령 개인의 부활을 뜻하는 게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선언한 대로 그의 정치생명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하지만 그는 죽더라도 그의 시대가 추구했던 가치와 정책, 우리 사회에 던져진 의미 있는 의제들마저 ‘600만달러’의 흙탕물에 휩쓸려 ‘동반 사망’하는 비극은 막아야 한다. 그의 ‘마지막 승부수’는 아직도 남아 있다."라며 죽음을 재촉하고 있다.
2009년 5월 4일 <경향신문> 유인화 칼럼. 이 칼럼은 권양숙 여사를 '빚꾸러기'로 묘사하는 등 조롱하고 노무현 대통령을 아내 핑계를 대는 비겁한 남자로 만들었다. 이 칼럼은 시민들의 거센 비판을 받고 인터넷판에서는 삭제했다.
2009년 5월 22일 <경향신문>에 실린 김건중 신부의 칼럼은 "다가오는 방학 때는 고생해서 몇 십만원 벌려는 아르바이트 걱정을 하지 말고 애들에게 봉하마을 논둑길에 버렸다는 시계나 찾으러 가자고 했다"고 조롱했다.
내가 쓴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 p300~301
내가 쓴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 p334~335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소위 진보언론, 지식인, 시민단체, 정당의 태도는 돌변했다. 그 표리부동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2009년 5월 28일자 <한겨레신문> 사설이다. 보수언론에게만 책임을 몽땅 전가해놓고 자신들은 마치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듯이 말이다.

<한겨레신문> 출신 허재현과 <서울신문> 문소영의 위선

노무현 대통령 서거 과정에서 모든 초점이 이명박 정권과 검찰, 그리고 조중동에게 집중되자 나머지 언론들은 조용히 침묵했다. 자신들은 조중동과는 다르다는 듯이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이진주씨의 페이스북 사과글을 비판하는 대열에 뛰어든 기자들이 있다.

사진=허재현 기자 페이스북
사진=<서울신문> 문소영 논설위원 페이스북

허재현 기자는 박연차 사건 당시 <한겨레신문> 수습기자였거나 막 수습 딱지를 뗐던 것 같다. 그래서 당시 <한겨레신문>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어떤 돌팔매질을 했는지 그 역사를 잘 모르는 듯 하다. 그렇지 않다면 <중앙일보> 출신 이진주씨를 저렇게 비난할 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앞서 소개한 <한겨레신문>의 노무현 대통령을 향한 저주와 공격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래서 허재현 기자를 위해 악명이 높았던 장봉군 화백의 만평 몇 개만 더 보여준다.

역사를 잘 모르면 함부로 나설 일이 아니다.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그나마 반성문을 쓴 기자를 향해 비아냥거리는지 지켜보는 입장에서 가소롭다.

문소영 <서울신문> 논설위원도 남의 일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아마 <중앙일보>는 '가짜뉴스'를 썼고, <서울신문>은 '가짜뉴스'는 쓰지 않고 검찰이 언론플레이하는 것만 따라갔으니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정말 심각하다. 당시 언론보도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전혀 성찰도, 반성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소영 논설위원에게는 당시 <서울신문> 기사의 아주 일부분만 보여준다.

이 사건은 잘 봐줘야 '박연차 게이트'이다. 그런데 당시 언론들은 '노무현 게이트' 혹은 '노무현-박연차 게이트'라는 머릿말을 붙이고 기사를 내보냈다. 언론사들 스스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를 신뢰하고 있었다는 걸 의미한다.

박연차 사건 당시의 언론의 가장 큰 문제는 검찰이 흘려준대로 받아쓴 데 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언론들이 앞다투어 받아쓰기 관행에 대해 세미나도 하고, 토론회도 하며 반성하는 척 했다. 

아닌 말로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제대로 된 사과를 한 언론사와 기자가 있는가? 잘못된 사과문 때문에 비판을 받고 있지만 이진주씨는 내가 알기로는 당시 보도에 대해 사과를 한 첫번째 인물이다. 이진주씨를 제외한 그 어느 기자나 논설위원, 칼럼니스트, 지식인이라는 사람들 중에 공개적으로 자신의 기사와 글에 대해 사과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누가 더 나쁜 인간인가? 잘못된 사과를 한 이진주씨가 나쁜가? 아니면 아직도 시치미 떼며 모른체 하고 있는 기자들인가? 더 나아가 자신들은 아무 책임이 없다는 듯이 이진주씨 비판에 동참한 언론인들인가?

이진주씨가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 기자였다면 당신들의 비판도 같았을까?

박연차 사건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게 심리적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힌 것은 조중동이 아니다. 단언컨데 조중동이 아니다. 왜냐하면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1991년 <조선일보>와 싸움을 시작한 이후 그 어떤 공격을 받아도 흔들리지 않았고, 단 한번도 위축된 적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하는 그날까지 언론과 싸웠다.

박연차 진술과 기억의 신빙성을 다투기 위해 의지를 다지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심리적 타격을 가한 건 소위 진보언론, 진보지식인, 시민단체, 민주당과 민노당 등 민주진보정당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검찰의 개'로 전락한 언론이 무차별로 쏟아내는 기사에 현혹되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거둬들인 시민들의 싸늘한 시선이었다.

지금은 비록 자신이 모셨던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간 세력들에게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지만, 노무현 대통령 서거 직후 유시민 작가는 이렇게 증언한 바 있다.

현재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된 유시민 작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과거는 묻어놓고 가자는 것일까? 그게 좋은 세상을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문재인 대통령도 자신의 회고록 <운명>에서 소위 진보언론과 지식인들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 저 <운명> p400

지금 이진주씨의 사과글을 놓고 맹렬하게 비판을 퍼붓는 당신들. 만약 이진주씨가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 기자였다면 어떻게 했을지를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그동안 <한겨레신문>과 <경향일보> 등 소위 진보언론을 비판하는 데 앞장 선 사람들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 나머지 사람들은 '원팀' 타령을 하면서 소위 진보언론을 비판할라치면 '내부분열', '작전세력', '똥파리' 운운하며 감싸기에 급급하다.

비판은 일관성이 핵심이다. 소위 '내로남불'이 만연한 사회는 여론을 혼탁하게 만든다. 어제 했던 말을 오늘 뒤집는 행태는 그야말로 조중동 등 보수언론의 오래된 못된 습관, 적폐다. 그런 조중동을 욕하면서 타도의 목소리를 외치는 소위 민주진보개혁 세력들의 행태는 조중동과 얼마나 다른가?

내 눈에는 별반 다르지 않다. 더러운 진영 논리만 무성하다. 언론을 언론으로 바라보지 않고 자기 진영의 나팔수쯤으로 여기는 행태는 정치가 어떻게 시민의 덕성을 타락시킬 수 있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자신들은 태극기부대와 어버이연합을 우습게 여기고 손가락질을 하지만, 사실 그 손가락질하는 손가락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을 욕하는 것으로 자유민주주의 수호자 행세를 하는 자유한국당과 그 지지자들.

자유한국당을 욕하는 것으로 마치 민주주의자가 된 것인냥 행세하는 소위 민주진보개혁 세력이라는 사람들

내 눈에는 별로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다. 오직 증오와 적대감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가여운 사람들일 뿐이다. 이런 사람들이 완장을 차고 설치는 사회가 건강할리 없다. 이런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정당이 좋은 민주주의를 할 가능성도 별로 없다.

과거사 청산은 계속된다. 진정한 반성과 사과를 할 때까지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다. 피해자는 반성을 하고 사과를 해야 화해가 이루어진다. 일본과의 갈등관계도 진심어린 사과를 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문제다. 제주4.3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를 하고, 친일재산 환수를 추진하고, 잊혀진 독립운동가들을 찾아서 서훈을 수여하고, 국가에 의해 저질러진 폭력의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손해배상을 하는 그 모든 행위는 가해자가 존재하기 때문이고, 가해자의 사과 없이 피해자의 용서가 없다는 걸 증명하고 있다. 진정한 통합이나 화해는 이런 과정이 존재해야 가능하다.

그냥 묻어두는 것은 과거 군사독재정권이 했던 행태일 뿐이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 어쩌고 떠들어봐야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으면 그저 말장난에 불과하다. <중앙일보> 기자였던 이진주씨를 향한 날선 비판들, 그 비판이 정당하기 위해서는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 등 당신들 스스로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는 그 언론을 향해서도 동일한 수위의 비판을 가한다면 수긍해주겠다. 그게 아니라면 그 더러운 진영 논리를 집어치우라고 권하고 싶다.

당신들은 정치를 발전시키는 주체가 아니라, 정치를 타락시키는 주체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조중동을 저주하고,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 타도를 목놓아 외치는 사람들은 흔히 프랑스 드골이 나치 부역자들을 숙청했던 역사를 갖고 와서 적폐청산의 목소리를 드높인다. 이런 사람들에게 소위 진보언론의 만행을 들이밀면 잣대가 달라진다. 더러운 진영 논리 때문이다.

이들에게 까뮈의 말을 들려준다. 드골이 나치 부역자들을 청산할 때 이를 옹호하며 까뮈는 이렇게 말했다.

“누가 감히 용서를 말하는가? 내일을 이야기 하는 것은 증오가 아니라 기억을 기초로 하는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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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파만 2019-07-11 22:54:49
양심에 손을 얹고 대답해드릴께요. 똑같이 비판했을건데요.

그러니깐 "우리 진주는 그래도 나은 편이라구요!"라고 말하고 싶은건가요?

문상일 2019-07-09 16:24:39
각오는 하고 읽지만 몸이 떨립니다...
작성하시면서 얼마나 힘드셨을지.....

비회원 2019-07-08 18:30:11
이진주 사과사건이 뭔가 했는데 다 정리가 되네요.
고맙습니다. 아프지만 감사한 칼럼 입니다.

김지은 2019-07-08 18:26:33
맞습니다. 정말. 갑자기 정의감이 왜 그렇게들 넘치시는지?
평소 말 한디도 못했던 인간들이 참 누군가 한꺼번에 맞고 있으면 갑자기 용기가 불끈 솟나 봅니다.

어우러기 2019-07-08 17:48:32
좋은 칼럼 잘 읽었습니다. 반성과 용서와 화해는 진영논리를 떠나 상식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에 합당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데 동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