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반지하가 가난의 상징인 줄 몰랐다
나는 반지하가 가난의 상징인 줄 몰랐다
  • 성장한
  • 승인 2019.06.04 17:45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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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화 기생충 스틸컷)
(출처 : 영화 기생충 스틸컷)

나는 반지하가 가난의 상징 같은 것인 줄 몰랐다. 최근에 안 건 아니지만, 나이에 비해서는 한참 늦게 알았던 것 같다.

우선 내 친구들의 대부분이 반지하에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하다. 형편 같은 거 모르고 사귄 친구들이니 우연이었을 것이다. 

어렸을 때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비밀 기지로 가는 느낌이 들어서 마냥 좋게 느껴졌다. 빛이 얼마나 들어오는지 그런 거 알 게 뭐람.

그리고 반지하에 사는 친구들보다 우리집이 훨씬 안 좋았다. 사실 집은 어떻든 아무 상관 없었다. 내 관심은 오직 화장실이었다. 화장실만 좋으면 단칸방이든 바다 위든 캠핑카든 괜찮았을 것이다.

우리집 화장실은 뒷문을 열고 몇 걸음 나가면 계단 밑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아주 좁고 지저분했지만 화장실이 그것 뿐이니 안 갈 수도 없었다. 늘 꼽등이와 구더기가 있었다. 앉아 있으면 구더기가 발등으로 올라왔다.

이사할 때 내가 부모님께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것도 화장실이었다. 화변기라도 있으면 아주 좋은 집이었다. 반면 내가 아는 반지하 집들은 항상 수세식 양변기가 있었다. 그러니 반지하 집이 나쁜 집일 리가 없다.

돌아보면, 아마 내 부모님은 극빈층에 가까웠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극빈층이었던 적이 없다. 그 와중에 나는 용돈을 넉넉히 받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밤마다 빚쟁이가 찾아 오고 가구와 가전에 차압 딱지가 붙는 와중에 나는 매주 아이큐점프를 샀고 원하는만큼 군것질을 했다. 

내 처지를 탓해 본 적은 딱 한 번 있었다. 빚쟁이를 피해 아예 타지로 이사했을 때다. 이모부가 관리하는 비닐하우스 안에 합판으로 집을 짓고 살았다. 집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양변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싫은 건 친구들과 헤어져야 하는 것이었다. 그때도 돈 때문에 이사를 해야 한다는 게 나는 납득이 잘 되지 않았다. 부모님은 가난했지만 나는 가난하지 않았으니까.

구김살이라는 게 뭔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아마 나에게 그런 건 없을 것이다. 

재래식 화장실이 딸린 집에 살 때도 나는 친구들을 우리집에 자주 데려왔다. 그 중에는 화장실에 충격을 받은 친구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화장실이 불편하다는 안내를 해주면서도 그것이 부끄럽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단독 주택이나 고층 아파트에 사는 친구네 집에 놀러갔을 때도 내 생각은 하나 뿐이었다. 아, 화장실 좋다.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우리집은 가난했던 것 같은데 나는 왜 열등감이나 부끄러움을 느낀 적이 없을까. 나는 왜 자존감이 낮았던 적이 한 번도 없을까.

생각해 보면 간단하다. 그 당시의 나는 몰랐기 때문이다. 지나고서 알게 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건 내가 아니라 부모님이었기 때문이다.

그 뒤에 내 어머니의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던 걸까. 그건 아직도 짐작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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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범 2019-06-05 10:07:39
나는 아는 사람이 시골살때는 2~3층에 살아서 지네가 나오는줄 몰랐는데
서울로 이사가고 나서 반지하에 살아서 한번은 지네에 물리고
한번은 지네를 발견해서 밤새 찾아서 잡아죽이고 나서 잤다고 한다.
그래서 반지하는 지네가 나오는즐안다.

sunnyten 2019-06-04 21:31:01
훌륭한 부모님이셨네요
우리 어렸을적엔 재래식 화장실 진짜 무서웠는데~
기생충 가족들에겐 그래도 수세식양변기가
있네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종현 2019-06-04 20:35:45
지나고나서 소중함을 알고 지나고나서 어려움을 알고 지나고나서.. 부디 그런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