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제에서 권력구조의 문제(번외) 노무현과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군주제에서 권력구조의 문제(번외) 노무현과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 정재웅
  • 승인 2019.05.23 12:0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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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 10주기에 부쳐 : 공동체(Res Publica)로서 국가, 개혁, 그리고 방향

10년 전 오늘, 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 비보를 듣고서도 믿기지 않았던 사실이었고, 오보이기를 바랐다.

비록 정치인으로서 노무현 대통령은 세상을 떠났지만, 참혹한 군사독재 시절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기 위해 싸운 변호사 노무현이 추구한 가치, 5공 비리 청문회에서 초선 의원임에도 불구하고 비리를 저지른 인물을 질타한 용기, 그 용기로 당시 김영삼계로 분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삼당합당에 반대하고, ‘바보’ 소리를 들으며 네 번이나 낙선하면서도 민주당 후보로 부산에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며, 마침내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이 모든 과정에서 일관되게 추구한 가치는 그의 서거 이후에도 많은 정치인들과 시민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되었다.

2007년 6월 10일, 6·10민주항쟁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은 기념사를 통해 “수구세력에게 이겨야 한다는 명분으로 다시 지역주의를 부활시켜서는 안될 것이며, 기회주의를 용납해서도 안된다”고 말했다.
2007년 6월 10일, 6·10민주항쟁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은 기념사를 통해 “수구세력에게 이겨야 한다는 명분으로 다시 지역주의를 부활시켜서는 안될 것이며, 기회주의를 용납해서도 안된다”고 말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릉대전에서 참패한 유비가 죽음을 앞두고 제갈량에게 유선을 당부하며 “유선이 황제의 그릇이라면 그를 보필하시오. 그렇지만 황제의 그릇이 아닐 경우 승상이 그 자리를 취하시오”라는 영안탁고를 하고, 이는 공명이 죽을 때까지 식소사번으로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원인이 된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그가 추구하던 가치는 그의 정치적 동료들에게 남겨졌고, 노무현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 “문재인이를 친구로 두고 있기 때문에 나는 대통령 감이 됩니다”라고 극찬한 정치적 동료 문재인이 2년 전 5월 10일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추구했던 가치 – 시민의 참여, 시민과의 소통, 탈권위주의, 외교에 있어 명분과 실리의 균형 추구 등 – 가 옳았음이 밝혀졌다.

어느새 10주기가 된 노무현 대통령 서거를 맞아, 개혁의 어려움을 생각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내내 대통령으로서의 권위를 내려놓음은 물론이거니와, 한국 정치에서 대통령에게 주어진 무소불위의 권력 - 예컨대 국가정보원장 독대 혹은 국군기무사령관의 정보 보고 등 - 을 행사하지 않고, “대화와 토론”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뿐만 아니라 진보 성향 지지자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미 FTA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도 했고, 제주도 강정 해군기지를 추진하기도 했으며, 이라크 파병을 추진하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는 보수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국방개혁 2020을 통해 전시 군 작전권 환수를 비롯한 군 개혁을 밀어붙이기도 했다.

이처럼 노무현 대통령은 그의 임기 동안 대통령으로서 권위와 권력은 상당 부분 내려놓았지만, 민주적 절차를 통해 끊임없는 개혁을 추진하였다. 물론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전 국민 스포츠로까지 불린, “이것이 모두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비판과 지나칠 정도의 희화화, 대통령으로서 4년 동안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박근혜가 당대표로 있을 때 한나라당 의원들이 한 “환생경제”라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조차 없는 저급한 모독까지. 권위와 권력을 내려놓은 대가는 가혹했다.

아마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언급을 한 것도 이러한 원인 때문이리라.

상기한 노무현 대통령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개혁은 혁명보다 더 어렵다. 혁명은 현 체제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을 동원해 무력으로 전복시키는 행위인데 반해, 개혁은 현 체제의 기득권과 불만이 있는 사람 모두를 어느 정도는 만족시키고, 어느 정도는 양보하도록 하면서 끊임없이 점진적인 개선과 변화를 추구하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에서 공화정 로마의 정치인인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를 본다.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는 부유한 평민 귀족으로 감찰관(Censor) 드루수스의 아들이다. 일찍부터 공화정 로마의 엘리트들과 어울렸지만, 호민관 사투르니누스의 급진적 개혁 추진 이후 공화정 로마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온건한 형태로, 보다 넓은 기반 위에서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한다.

이후 가부장권이 강한 로마에서는 믿기지 않을 만큼 진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당시 로마에 만연한 정략결혼을 한 여동생이 사랑하는 사람과 한 불륜을 용서하는 한편 그런 여동생을 구타한 남편과의 이혼을 추진한다.

또한 본인의 가정생활에 있어서도 당대 로마의 가치관으로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인을 인정하는가 하면, 노예들에게도 친절하게 대하고, 대농장에 밀려 생계를 걱정하는 경제수준이 낮은 로마 시민들을 걱정하며, 결정적으로 당시 로마의 이탈리아 지배에 반발하는 이탈리아인들과도 두루 친밀하게 지내면서 그들의 이익과 공화국 로마의 이익이 일치하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에 드루수스는 본인이 추구하는 개혁을 위해 기원전 91년 호민관에 취임하고 원로원에서 보수적인 의원들(물론 이 경우 보수는 한나라당이나 새누리당이 말하는 ‘보수’와는 다른 개념이다)인 원로원 최고참의원 마르쿠스 리비우스 스카우루스, 감찰관을 지낸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오라토르와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집정관을 지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오라토르, 수도 담당 법무관과 소아시아 총독을 지낸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그리고 당대 최고의 권력을 지닌 군인이자 정치인 가이우스 마리우스를 설득하여 자신이 추구하는 개혁에 동의하도록 만든다.

이후 그는 민회에서의 호민관 입법이라는 급진적이고 과격한 형태를 취한 그라쿠스 형제와 달리 원로원 내에서 호민관 입법을 통해 이탈리아 내 로마 공유지의 무상 분배, 무산계층에 대한 곡물 저가 배급 등 그라쿠스 형제가 섣불리 추진했다가 그 사후 무산된 개혁들을 성사시킨다. 이에 그는 가장 논란이 되는 문제인 이탈리아에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거의 성공까지 갔다가 암살로 생을 마치게 된다.

드루수스의 모습과 그가 추진한 이러한 개혁은 어떻게 보면 노무현 대통령의 삶과 그가 임기 중 추진한 여러 정치행위들과도 맞닿아 있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세무 전문 변호사로 충분히 안정적이고 부유하게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운동과 정치에 투신했고, 이후 지역감정을 극복하기 위해 “바보 노무현”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노력했으며,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추진한 정책들에도 공동체(Res Publica) 전체를 위해 추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 지지층에게 비판을 받은 정책이 많았기 때문이다.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직후 장인의 빨치산 경력이 문제가 되었을 때 “그럼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라는 말입니까?”라며 아내에 대한 사랑을 드러낸 부분까지도 장인이 불명예스러운 일로 망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를 끝까지 사랑한 드루수스와 유사하다.

노무현 대통령 본인이 사법고시 출신이면서도 계층 상승의 사다리를 제거했다고 상당수 지지층들에게 현재까지 비판 받는 로스쿨 도입, 정책 추진 당시부터 미국의 압력에 굴했다고 비판받은 이라크 자이툰 부대 파병, 한국 경제의 입장에서 꼭 필요한 정책인 한미 FTA, 변화하는 인구구조와 무기체계에서 한국군의 변화를 이끌어낸 국방개혁 2020 등.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한 정책은 공동체로서 한국에 꼭 필요한 정책이었지만, 지지층이나 비판층을 막론하고 항상 격렬한 찬반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비록 암살은 아니지만, 정치적 타살이라고 해도 과장은 아닐 그의 비극적 최후까지. 노무현 대통령은 그 삶의 여러 장면에서 공화정 로마 말기의 위대한 정치인 중 한 명인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와 맞닿아 있다.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사후, 그가 추진한 개혁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와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완성된다.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는 공화정 로마가 나아갈 길을 제시한 것이다.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시오노 나나미 여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

“자신의 야망을 실현한 뒤 침대에서 편안하게 죽는 것이 인간의 행복이라면, 술라는 그 자신의 말처럼 ‘행운아’였다. 그러나 생전에 자신의 야망도 실현하지 못하고 침대에서 죽기는 커녕 수명이 다하기도 전에 비명횡사했다 해도, 그 사람이 속해 있던 공동체의 나아갈 길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새우는 것이야 말로 인간, 특히 공인이 될 운명을 타고난 인간의 행복이라면 술라는 ‘불운아’가 된다.”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는 비록 비명에 갔지만, 그의 뜻은 술라를 거쳐 카이사르로 이어졌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다.

비록 그는 자신이 일생에 걸쳐 추구한 가치가 펼쳐지는 ‘노무현 시대’를 보지 못하고 중간에 너무나도 안타까운 누명을 쓰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추구한 가치는 그의 친구이자 정치적 동반자인 문재인 대통령을 통해 다시 추구되고 있으며,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공동체(Res Publica)로서 한국을 위해 노력한 정치인,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진심으로 추모하며 그를 기린다.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사후 그의 동료들이 그를 진정으로 추모하고 기렸듯이.

아래 글을 노무현 대통령께 바친다.

『그럼 다음 그들은 침묵 속에서 침대 발치에 서 있었다. 드루수스에게 남은 미약한 생명력을 더는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일 마지막에, 숨을 쉬려고 애를 쓰며 헐떡이는 와중에 고통이 견딜만해졌을 때 드루수스는 흐려지는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일어나 앉으려고 애썼다.

“Equadone(누가)?” 그가 크고 강한 목소리로 물었다. “Equadone similem mei civem habebit res publica(누가 나처럼 우리 공화국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그의 아름다운 두 눈 위로 번져가던 흐린 막이 완전히 펼쳐졌다. 두 눈은 불투명한 황금빛으로 흐려졌다. 드루수스는 죽었다.

“아무도 없소, 마르쿠스 리비우스.” 술라가 말했다. “아무도.”』

- 콜린 매컬로, 『풀잎관』 중에서,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의 죽음.

퇴임 직후인 2008년 4월 봉하마을을 방문한 울산 노사모 회원들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노 대통령
퇴임 직후인 2008년 4월 봉하마을을 방문한 울산 노사모 회원들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노 대통령
2008년 4월 13일 노사모와 마을가꾸기 행사를 위해 밀짚모자와 작업복 차림으로 봉하마을을 둘러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
2008년 4월 13일 노사모와 마을가꾸기 행사를 위해 밀짚모자와 작업복 차림으로 봉하마을을 둘러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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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2019-05-26 22:02:53
좋은 칼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