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상인] 한겨레·경향의 ‘글쟁이’들이 노무현을 죽였다
[잡상인] 한겨레·경향의 ‘글쟁이’들이 노무현을 죽였다
  • 김경탁
  • 승인 2019.05.20 1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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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검찰의 정치 수사에 놀아나면서 ‘죽음의 굿판’ 벌이고 굿값 챙긴 이들
두 매체 향했던 해묵은 악감정,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 읽고 정리되는 ‘역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리 이뤄진 후에야 용서·화해 가능하다는 원리 체감했다
‘동아투위’ 역사가 동아일보 법인의 것 아니듯 ‘노무현 죽이기’도 분리해볼 것

‘죽음의 굿판’

2016년 말, 박근혜 탄핵 촛불이 타오를 때 인터넷 일각에서는 ‘무력혁명’이니, ‘유혈사태 필요성’이니 등등을 떠벌리는 자들이 있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격언을 들먹이면서 남의 피 값을, 타인의 생명을 우습게 보는 치들이었다.

대한민국의 성숙한 다수 시민들은 이런 헛소리를 무시하고 자발적·내부적으로 소동을 진압했으며 결국 세계 최초의 ‘무혈 혁명’을 이루어냈다. 탄핵 판결 직후 ‘애박 집회’ 참가자들의 무모한 폭력 행위로 인한 사상자가 일부 발생했을 뿐이었다.

1970년대의 대표적 저항시인 김지하가 1991년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칼럼으로 역사적 변절을 하게 된 배경에는 배신감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수감되었을 당시 밖에 있던 동지들이 ‘김지하 사형’을 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09년 그해.

대한민국 정치사회의 한축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진보진영과 그 우군으로 인식되는 매체들이 했던 여러 변화무쌍한 널뛰기 행위들을 한가닥에 꾀어서 제대로 규정하는 언어로 이 ‘죽음의 굿판’ 만큼 적절한 단어가 있을까?

2009년에 ‘죽음의 굿판’을 벌인 이들은 굿 값을 두둑히 챙겼다.

제물이 된 사람과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을 제외한 세상 모두에게 이문이 남는 거래였다. 저쪽 사람들은 눈엣가시였던 이쪽의 두 거목을 쓰러뜨릴 수 있었고, 이쪽 사람들은 두 거목이 쓰러진 것이 오롯이 저쪽 책임이라 떠드는 것만으로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었다.

덤덤하게 읽은 그날까지의 기록

권순욱 뉴비씨 대표기자의 신간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는 이 굿판이 ‘이쪽’에서 어떻게 벌어졌는지 전체 과정을 정면으로 직시한 최초의 기록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중단 없이 쭉 읽기가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그해 5월 23일 이전까지 한겨레와 경향신문 두 매체를 중심으로 민주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언론의 보도와 이쪽 인사들의 발언 전반에 대한 복기를 읽어 내려가면서도 의외로 감정적 동요는 크게 없었다.

원래 잘 알고 있던 내용이고 지난 세월 동안 내내 계속해서 곱씹었었던 일들이기 때문이다.(예외적으로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가 ‘마지막 인터뷰’로 왜곡·장사질했던 대목은 다 아는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읽으면서 상당히 빡치긴 했다)

2002년 대선 경선 이후부터 참여정부 시기까지 대부분의 언론들이 노무현과 그 적극적 지지자들을 ‘적’으로 대하는 행태를 실시간으로 겪었던 터였다. 

그래도 참여정부 시기, 나와 우리는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그나마 우리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때는 늘 그들을 응원했고 참 열심히도 돈을 갖다 바쳤다.

노무현 대통령 당신도 퇴임 후 돌아가시기 전까지 두 신문만을 구독했다고 한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에 맞서 씩씩하게 싸워왔던 그가 세상을 보는 창으로, 여론을 접하는 창으로써 두 매체에 대한 신뢰는 끝까지 유지했던 것이다.

이 말은 그 마지막 반년, 당신을 향해 ‘산화해서 제물이 되라’고 주문하는 그 악귀 같은 글들을 그가 계속해서 읽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참여정부 당시 ‘정치인 노무현’의 좌절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가끔 했던 생각은 ‘이 놈의 나라에 대통령 노무현은 과도한 사치’란 것이었다.

그의 퇴임 후 '시민 노무현'에 대한 매도와 집단 괴롭힘을 지켜보며 ‘차라리 정치를 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고통스럽게 되뇌었다.

그래서 그가 노하우 홈페이지에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라는 글을 올렸을 때, 오히려 어떤 마음인지 이해가 됐다.

차라리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그에 대한 관심을 끊기를 바랐다.

그냥 나 같은 극소수 마니아들과만 조용히 소통하면서 시간을 버텼으면 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좀 잠잠해진 후에, 꼭 한번쯤 그의 두툼해 보이는 손을 한번만 잡아보았으면 했다. 영원히 이룰 수 없게 된 소원.


그날 이후 이어진 무력감

2009년의 그날, 피씨방에서 담배 반갑을 태우며 부고기사를 써서 송고했다.

당시 자주 드나들던 친노 성향의 다음 카페에 데스크의 손을 거치지 않은 기사 초안을 기록용으로 올리면서 “진중권도 눈물이 난다는데 전 이상하게 눈물이 나지 않네요”라는 코멘트를 덧붙였다. 지금도 이미 눈물을 흘린 진중권이 가끔은 부럽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언론사들도 공범이라고 말하던데, 전 공범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노 대통령 수사 관련해서 기사를 한 번도 제대로 올리지 못했는데 돌아가시고서야 쓰게 되네요”라고 덧붙였다.

그 2주전쯤 검찰의 수사행태를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가 함량미달로 반려된 이후, 모자란 함량을 채울 엄두를 내지 못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것을 자책했다.

그날 이후 현업 기자나 그 많은 할 말 많던 칼럼니스트를 비롯한 오피니언리더들 중에 노무현의 죽음에 대해 반성하거나 자백하는 목소리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단 하나의 예외가 그해 6월 추모공연에서 나온 신해철의 울부짖음이었다. 막지 못했다는 자책. 칼로 찌른 자들의 반성은 듣지 못했다.

한겨레와 경향은 그해 6월 초순, 서거 이전 자신들의 보도 행태를 반성한다는 기사를 냈다. 

하지만 바로 이듬해 ‘놈현 관장사’ 파문이나 한명숙 전 총리 관련 보도행태는 2009년 6월의 반성이 성난 여론에 등 떠밀린 면피성 억지 반성이었음을 증명한다. 

그의 서거 이후 10년은 참여정부 시기 노무현의 지지자로 있으면서 내내 반복 학습했던 ‘무력감’을 매순간 확인 재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읽지 못한 노무현 대통령 추도사에 나오는 ‘나쁜 신문 보지 않고’라는 대목에서 ‘나쁜 언론’에 해당하지 않는 언론이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지 의문이었다.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두 매체가 갖고 있는 ‘그나마 우리편’이라는 지위는 흔들리지 않았고, ‘그나마 상식적’이라는 장점도 철옹성 같았다.

한겨레와 경향이라는 매체 제호만 봐도 막연한 증오, 복수심, 혐오감이 부지불식간에 치밀어 올랐지만 이를 표현하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누구 말마따나 ‘엄혹한 시절’에 ‘내부총질’을 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부적절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더군다나, 조중동은 둘째 치고 두 매체 외 다른 언론매체들의 전반적인 행태가 두 매체에 비해 훨씬 더 고약하고 저열한 경우가 많았기에 두 매체를 비판하는 것 자체가 허무한 일이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는 두 매체를 어찌해볼 수 있는 힘 자체도 없었다.

해묵은 악감정을 내려놓다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는 이런 상황에 대해 ‘어찌해 볼 힘’이 없는 노무현 지지자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어찌함’이었다고 본다. 다른 관점에서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고, 내 나름의 평가를 하는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그 평가에 대한 동의여부는 기록을 읽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우리가 우리 나름의 평가를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그렇게 정리된 역사적 기록을 읽으면서 해묵었던 악감정이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리가 이뤄진 후에야 용서나 화해가 가능하다는 '원리'를 체감했다

2014년 4월, 304명의 무고한 죽음과 그 관련자들의 고통 앞에서 대한민국의 언론들은 자기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였다. ‘기레기’라는 말이 유행어가 됐고, 많은 매체가 국민들 앞에 자신들의 보도를 반성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에 언론의 보도행태가 크게 바뀌었는가 묻는다면 대답은 단언코 ‘아니오’이다.

언론매체 차원의 반성은 2009년에도 2014년에도 잠깐 나왔다가 무의미하게 흘러 잊혀져가는 것일 뿐이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이렇게 생각을 뻗어나가다 문득 동아투위(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사건이 떠올랐다.

1974년 유신정권에 맞서 싸웠던 동아일보 기자들의 투쟁을 동아일보가 몇 해 전에 자랑스러운 자기 역사라고 홍보를 했다가 빈축을 샀던 일이 생각났다.

‘동아투위’의 역사는 투쟁에 참여한 기자들을 내쫓고 유신정권에 굴복했던 동아일보 법인과 그 소유주의 것이 아니라 투쟁에 참여하고 회사에서 쫓겨난 기자들의 것이다.

마찬가지로 2009년 ‘노무현 죽이기’의 역사도 한겨레·경향신문 법인의 것이 아니라 거기에 동참했던 당시 정치부·사회부 기자들과 칼럼과 사설을 써재꼈던 필진들의 것이다.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한겨레·경향에 대한 해묵은 악감정을 내려놓기로 마음 먹었다.

최근의 개인적 화두는 언론매체가 아닌 ‘언론인’이다.

‘사과’를 해도 흘러가버리는 무생물인 언론매체의 법인격이 아니라 그 법인격을 실제로 움직이는 개별 인격에 주목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지금은 거의 시들해진 분위기이긴 하지만 ‘노룩랭킹’처럼 각 기자 개인의 실명 기사를 기록하고 평가하는 시도들에 다시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언론인은 공인에 해당하는가’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언론인들이 전면적으로 ‘공인’ 취급을 하면서 마구 난도질 보도를 하는 유일한(?) 집단인 연예인들과 비교해보면 언론인은 훨씬 공인이다. 박근혜정부의 유일한 업적인 ‘김영란법’도 언론인을 적용대상으로 포함시키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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