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 검사의 견강부회를 논박한다
김웅 검사의 견강부회를 논박한다
  • 황정인
  • 승인 2019.05.10 13: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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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가 심판이라는 '검사내전'의 저자 김웅 검사의 주장 반박

김웅이라는 검사가 있다.

현직검사로는 드물게 <검사내전>이라는 책을 낸 유명인사다. 작년 초 한창 장안의 화제이던 그 책을 나도 읽었었다. 지금은 책 내용은 가뭇하지만 저자에게 호감을 느꼈던 기억만큼은 또렷하다.

현직 검사라는 저자의 신분이 책의 판매에 기여했을 지는 모르겠지만, 역설적으로 저자에 대한 호감은 그의 글에 배어있는 검사스럽지 않은 태도에서 주로 나왔다. 스스로 ’생활형 검사‘를 자처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큰 배의 작은 나사못이 되고 싶다던 그는, 또 법이 만능이 아니라거나 형사처벌 범위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던 그는 적어도 출세지상주의에 찌든 엘리트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오늘(9일) 아침 MBC 라디오의 시사정보 프로그램인 <심인보의 시선집중>에 그 김웅 검사가 출연했다. 최근에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된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한 검찰의 입장을 말하러 나왔다고 했다. 나는 그가 대검찰청에서 수사권 조정 대응 업무를 취급하는 미래기획형사정책단 소속의 부장검사라는 걸 이때 처음 알았다.

생활형 검사에게 그다지 어울리는 직책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그의 인터뷰 내용을 유심히 들어보았다.

일단 음성과 말의 톤은 내가 상상했던 모습에 가까웠다. 헐렁한 카디건에 뿔테 안경을 쓴 순둥이일 것만 같은 음성과 말투였다. 거기까지였다. 그가 내뱉은 말의 내용은 지극히 검사스러웠다. 김웅 검사는 검사가 복싱 경기의 레프리 같은 존재라고 주장했다.

“형사사법구조라는 건 복싱 같은 겁니다. 그러니까 청코너에 경찰 있고 홍코너에 피의자가 있습니다. 그러면 검사는 레프리 역할을 하는 겁니다. (중략) 레프리는 막강한 경찰이 피의자를 심하게 몰아가거나 아니면 반칙 쓰는, 쉽게 말해서 가혹수사를 하는 것 그런 걸 막아주는 역할(입니다).”

경찰을 피의자와 서로 주먹질이나 하는 존재에 비유한 것은 경찰관인 내 입장에서 무척 거북하지만, 문제 삼을 건 아니다. 검사의 역할 내지 임무를 일반 국민에게 설명하기 위한 것일 뿐 경찰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진 않는다.

그러나 검사가 복싱 경기의 레프리(심판)와 같은 존재라는 김웅 검사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수사과정을 복싱경기로, 경찰과 피의자를 서로 싸우는 복싱 선수들로, 검사를 심판으로 각각 설정하는 비유를 김 검사가 창작한 건 아니다.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형사재판을 검사와 피고인이 대등한 지위에서 쟁투하는 과정으로 파악한다. 여기에서 법원은 객관적, 중립적 입장에서 판단을 하는 존재다. 이것을 ‘당사자주의 소송구조’라고 한다. 김 검사는 영미법계의 소송구조론을 차용해서 우리의 수사과정에 그대로 대입했다.

이런 식의 비유는 ‘아무말 대잔치’에 가깝다. 당사자주의의 핵심은 법원이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심판자라는 것이다. 김 검사의 ‘복싱론’도 검사를 법원과 같이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존재로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검사는 결코 수사에 관하여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지금 대한민국 검찰은 수사기관이다.

검사의 영문 명칭인 prosecutor는 ‘기소하는 자’라는 뜻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검사의 본령은 국가를 대표해서 형사재판을 수행하는 데 있다. 우리처럼 검찰 내에서 수사가 공판을 압도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 검찰에서 출세하려면 공안부나 특수부와 같은 수사부서에서 수사 검사로 인정 받아야 한다. 공판부로 발령 받으면 좌천됐다는 위로를 받는다. 대한민국에서 검찰은 자타가 공인하는 막강한 수사기관이다.

둘째, 대한민국 검사는 수사의 주재자로 자임해 왔다.

우리나라 검사들은 모든 사건이 검사의 사건이라고 여긴다. 경찰이 수사하는 사건이라도 검사가 경찰에게 잠시 수사를 맡겼을 뿐이지 궁극적으로 검사의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검사의 수사 주재자론’이라고 한다. 그동안 검찰은 역대 정권이 수사권 조정을 추진할 때마다 “수사의 주재자인 검사가 경찰 수사를 지휘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고 그것이 검사 제도가 존재하는 이유”라는 논리로 저항해 왔다.

셋째, 대한민국 검사는 수사관의 DNA를 지녔다.

수사관은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을 처벌하고자 하는 강한 의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의욕은 수사관으로서의 사명감과 정의감에서 나온다. 수사관에게 꼭 필요한 의욕이지만 자칫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무고한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라는 형사소송의 대원칙을 무시하고 싶은 충동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검사도 마찬가지다. 수사관의 DNA를 지녔기 때문이다.

내가 어느 경찰서 형사계장으로 일하던 때의 일이다. 살인 사건의 범인을 어렵게 잡아서 구속 후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얼마 후 담당 검사가 만나자고 했다. 범인이 경찰에서의 자백을 번복한단다. 확실한 물증도 없는데 어쩌나?

검사와 나는 같이 고민을 했다. 그러다 내가 제안했다.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해 보시죠.” 검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랬다가 진실 반응이 나오면 어쩌라고요.”

그랬다. 검사는 범인의 말이 진실일까봐 걱정했다. 나는 그 검사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도 그와 똑같은 걱정을 했다. 그 순간 나는 검사에게 수사관의 DNA를 공유한 사람끼리의 짠한 동지의식 같은 걸 느꼈었다. (이후에 다행히 다른 증거가 발견돼서 범인은 죄에 합당한 처벌을 받았다.)

이와 같이 대한민국에서 검사는 경찰의 수사를 주재하는 존재로 자임하고 있는 데다가, 그 역시 수사관의 DNA를 지녔기 때문에 결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이런 검사가 경찰이 피의자에게 반칙을 쓰는 것을 제지하고 경고하거나 퇴장시킬까? 아니다. 관객들이나 방송 카메라가 보지 못하도록 살짝 가려주려 할 것이다.

지난 2002년 서울지검에서 조사를 받던 피의자가 고문을 받다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현재까지 대한민국에서 수사기관이 고문으로 사람을 죽인 마지막 사례다. 그 직전 사례는 1987년 경찰이 저지른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이다.

내가 이 불행한 사례들을 상기시키는 이유는 경찰보다 검찰이 더 나쁘다고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다만, 수사기관으로서 수사관의 DNA를 가지고 있는 것은 경찰이나 검찰이나 다르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경찰이든 검찰이든 수사를 하려면 스스로 인권침해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사법통제를 겸허히 아니 기꺼이 수용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검사가 레프리라는 김웅 검사의 주장은 수사기관이 인권옹호자 내지 인권감시자로 자처하려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부적절하다.

이 대목에서 <심인보의 시선집중>의 진행자인 심인보 씨도 김 검사의 주장을 수긍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지금 우리나라 검찰을 아무도 레프리라고 생각 안 할 것 같은데요?”라고 물었다. 여기에 대해 김 검사는 이렇게 답변을 했다.

“그렇지. 그런데 원래 레프리 역할을 하라고 만들어진 게 검찰이거든요. 그런데 레프리가 만약에 자기가 선수로 나와서 싸움을 하게 되면 그 불법은 누가 막겠습니까? 아무도 막을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러면 지금 이 구조를 바꾸려면 레프리는 레프리만 하든지 레프리가 청코너 선수가될 거면 다른 레프리를 세우든지 그렇게 가는게 맞는 방향인데"

아! 내가 오해했다. 김 검사도 지금 현재의 검찰이 레프리 역할을 하고 있다거나, 레프리 역할을 잘 할 수 있다고 우기는 건 아니었다. 그도 지금 현재의 검찰은 레프리 역할을 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 나아가 지금 검찰이 레프리 역할을 못하는 이유는 그 자신이 선수로 뛰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니 앞으로 검찰은 선수로 뛰지 말고 레프리만 하도록 제도를 개선하자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 주장은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인다. 법을 고쳐서 검찰이 직접 수사를 못하도록 하고, 경찰 수사에 대한 지휘에 전념하게 한다면 레프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러한 제도가 잘 정착이 되면 검찰조직에서 수사기관의 DNA가 점차 옅어지고 마침내 공소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 검사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우선 논리적으로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검사가 직접 수사를 하지 않는다고 레프리의 자격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살폈듯이 레프리의 역할을 하려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지위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설령 김웅의 주장과 같이 검찰이 직접 수사를 하지 않더라도 경찰의 수사를 지휘하는 이상 그는 경찰 수사에 대해 결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지위가 아니다.

복싱 경기에 비유하자면 경찰의 수사를 지휘하는 한 검찰은 레프리가 될 수 없고, 기껏해야 경찰이라는 선수의 코치에 불과하다. 코치는 레프리와 달리 경찰이라는 선수와 이해관계가 같다. 그래서 경찰의 반칙(인권침해, 권한남용 등)을 감시하고 적발하고 시정하는 작용을 할 수 없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김 검사의 주장에서 검찰을 개혁하고자 하는 진정성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 패스트-트랙에 올라 있는 수사권 조정안의 골격이 첫 선을 보인 것은 작년 6월 21일이었다. 국무총리와 청와대 민정수석, 그리고 법무장관과 행안부 장관은 수사권 조정에 관한 정부 합의문을 발표했다.

전국민에게 생중계된 이날 발표에서 검사와 경찰을 협력관계로 설정하고, 검사의 수사지휘를 폐지한다는 내용의 수사권 조정 방향이 만천하에 천명되었다.

그 후 국회는 여야 합의로 사개특위를 만들어 수 개월 동안 정부의 합의안에 기초한 수사권 조정 법안들을 심사했다. 지금 패스트-트랙에 올라 있는 수사권 조정안은 정부가 합의하고 국회가 수 개월 동안 심의한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요컨대, 검찰개혁을 위한 다양한 방법 중에서 지금 이 모델이 정부안으로 채택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제 입법화만 남았다. 물론 순조롭게 입법이 될 수도 있지만, 다시 한 번 좌절될 수도 있다. 또는 일부 내용이 수정되어 입법이 될 가능성도 있다. 어느 쪽이든 국회가 선택할 몫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대한민국의 역사로 남는다.

그런데 김웅 검사는 지금 이 시점에 지금까지 수사권 조정을 위한 정부의 합의과정과 국회의 심사 과정에서 단 한 번도 논의의 대상이 된 적도 없는 전혀 생경한 안을 들이밀고 있다.

김웅 검사가 들이민 안을 받아들이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합의하고 전국민에게 공표한 조정안을 휴지통에 버려야 한다. 그리고 정부 합의부터 사개특위 논의까지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김 검사의 주장은 이번 정부 내에 수사권 조정을 포기한다는 선언을 하라는 요구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심인보의 시선집중>이 끝났다. 약간 우울한 기분이 되어 <검사내전>을 다시 꺼내 읽었다. 같은 책인데 전혀 다른 느낌으로 읽혔다.

김 검사의 책 어디에도 검찰 조직의 과오에 대한 비판이나 반성이 없었다.

김웅에게는 검찰조직이 저지른 수많은 과오들은, “하루하루 촌로처럼 혹은 청소부처럼 생활로서 검사 일을 하는(383면)” 대다수의 선량한 검사들이 마치 아담과 하와가 금지된 과일을 먹은 죄 때문에 애꿎은 목수의 아들이 죽어야했던 것처럼, ‘검사동일체’란 원칙하에 위에서 사고를 치면 아래에 있는 사람들도 모조리 욕을 먹어야 하는 기이한 상황(5면)“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김웅은 ‘대한민국은 검찰공화국’이라는 말이 정확하지 않다고 말한다. “정확히는 ‘대통령 공화국’이나 ‘형사처벌 공화국’이라고 불러야 한다”(375면)고 주장한다. 결국 김웅에게 검찰의 문제는 일부 고위직들의 개인적 일탈이거나 대통령이 검찰을 쥐고 흔들었기 때문에 생긴 현상에 불과했다.

2004년부터 2015년 상반기까지 검찰 수사 중 자살한 사람이 108명이나 된다. 김웅은 이것도 일부 고위직들의 개인적 일탈이거나 대통령이 검찰을 쥐고 흔들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고 생각할까?

김웅은 자신이 ‘생활형 검사’로 살았노라고 했다(383면). 거창한 야망이나 출세욕을 부리지 않고 “새벽마다 새 아침을 열어주는 청소부처럼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383면) 일했다는 의미인 듯하다.

그랬을 것이다. 그는 악인도 아니고, 권모술수에 능하거나 권세를 휘두르는 부류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일찍이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간파했던 것처럼 악은 악한 마음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조직논리를 무비판적으로 내면화하는 평범한 사람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악이 행해진다.

검찰조직의 과오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반성도 없이 오로지 조직 논리에 충실한 견강부회를 태연하게 늘어놓는 김웅 검사는 “나는 내게 주어진 일을 성실히 했을 뿐”이라고 항변한 아이히만(Otto Adolf Eichmann)과 어떻게 구별되는가?

ⓒ죽림누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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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 2019-05-16 22:30:15
황정인님 논평 감사합니다.

검찰은 과거의 잘못을 말로만 끝내고자 하는것이 보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이 노무현재단 이사장으로 계셨을때를 검찰의 행보를 보자면
검찰의 수사권 분리는 결정된 수순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