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애의 변명과 파르테논 신전
김진애의 변명과 파르테논 신전
  • 곽민수
  • 승인 2019.05.03 19:3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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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지 않은 방식으로 변명

김어준의 <뉴스공장>(4월 18일 방송)에 출연한 김진애 박사의 노트르담 대성당/고딕 건축 관련 발언에 대해서는 나도 비판을 했었지만 원론적인 비판이 가능했던 발언이었던 만큼, 굳이 내 비판이 아니더라도 김진애가 그 발언 뒤에 여기저기서 많은 비판을 들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혹시나 그 비판들에 대한 반응이 있을까하여, 며칠 전 4월 25일자 <뉴스공장>의 김진애 출연 부분을 들어보았다. 김진애는 나름의 입장을 밝히기는 했지만, 그는 가장 좋지 않은 방식으로 변명을 하고 있었고, 더 나아가 부정확하거나 개인적 편견이 진하게 들어가있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발언들을 계속하고 있었다.

다시 김진애의 발언들을 몇 가지만 살펴보자.

"제가 고딕 양식을 폄하했다....애호가들에게....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지 않다고 하면 기분 나쁘다. 이해한다. 저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건축계에서 별로 그렇게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그 말에 굉장히 상처를 받으셨던 것 같은데, 건축계에서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김진애는 지난 주 방송에서도 그러했듯이 계속해서 '건축계'를 언급하는데, 나는 그 건축계가 어디인지 잘 모르겠다. 여태껏 고딕 양식을 이렇게 저렇게 비평하는 건축 전문가들은 많이 봤지만, 일방적으로 폄하하는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건축 전문가는 본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김진애가 언급하는 '건축계'가 구체적으로 누구를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지 매우 궁금하다. 억측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김진애가 말하는 '건축계'는, 많은 정치인들이 갖고 있는 '국민의 뜻대로'라는 말을 '내 뜻대로'의 의미로 사용하는 습관과 비슷한 습관, 그러니까 자신의 개인적 정서나 견해를 별 근거도 없이 조금 더 공신력 높은 범주의 것으로 확장시키려는 습관의 산물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김진애가 노트르담 관련 발언으로 비판을 받았던 것은 '애호가의 마음을 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비판받았던 것은 '고딕 양식은 건축계에서 인정받지 못한다'거나 '고딕 양식은 기술적 혁신이 많지 않다'와 같은 고딕 양식에 관한 정확하지 않은 말들을 구체적인 근거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단언적으로 발언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김진애는 자신에 대한 비판을, 마치 자기 얘기를 듣는 사람의 기분과 관련된 문제인 것처럼 이야기하며 자신을 향한 비판에서 빠져나가려고 든다.

이걸 조금 더 쉬운 예를 들어서 이야기해보자. 김진애는,

"방탄소년단은 별로 인정받지 못해요. 엔터테인먼트계에서 높이 평가하지 않아요."

라고 말해서 비판을 받았는데, 그 비판에 대해서

"아, 팬들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상하실 수도 있겠죠. 이해합니다. 그런데 방탄소년단은 엔터테인먼트계에서는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라고 반응하는 꼴이다. 방탄소년단에 대한 호불호와는 무관하게, 이 그룹이 현재 전세계적으로 받고 있는 엄청난 주목과 높은 성취의 정도는 충분히 '사실적 상황'인 만큼, 그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물론 방탄소년단의 음악에 대해서, 혹은 퍼포먼스에 대해서 이러저러한 평가는 가능하다. 다만, 그 평가가 공허한 것이 아니기 위해서는 적절하고 구체적인 근거가 함께 제시되어야 한다. 그런데 김진애는,

"춤이 너무 화려하고 빨라요. 엔터테인먼트계에서는 높이 평가하지 않아요. 으허허허"

이런 식으로, 매우 주관적이고 아주 피상적인 방식으로 사실적 상황을 부정하며 말하고 있다. 김진애가 널리 지지를 받고 있고, 그것의 타당성 여부와는 무관하게 건축가로서의 권위를 많은 이들에게 인정 받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는 매우 무책임하고 실망스러운 행태다.

이처럼 김진애는 고딕과 관련한 자신의 발언에 대해서 어떠한 반성도 보여주지 않은 채 적당히 어물쩡 넘어갔다. 그리고 다른 주제인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이 내용도 내게는 아주 문제의 여지가 많다고 느껴졌다.

예컨대 이런 발언이다.

"파르테논은 폭파되었기 때문에 유명해졌다. 사라질 뻔 했기 때문에 더 위대해졌다. 파르테논은 오버레이트 되어 있다. 아크로폴리스 전체는 하늘에서 만든 것이나 파르테논 건물 하나가 제일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먼저 이 말의 뒷부분, 즉 파르테논 신전은 아크로폴리스 전체라는 보다 확장된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뉘앙스의 말에는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전문가연하는 사람이 어떤 견해에 대해서 '바보짓'이라 폄하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여겨진다. 나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파르테논 신전은 물론 그 자체로도 훌륭한 건축물입니다. 그러나 이 신전을 독립된 신전으로만이 아니라 아크로폴리스 전체의 한 부분으로 바라볼 때에 신전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김진애의 말의 요지는 파르테논 신전은 엄청나게 대단한 건축물은 아닌데, 폭파되었기 때문에 유명해졌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깔린 저의는 이와 다를 수도 있겠으나, 그에 대해서 특별한 배경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그가 방송에서 한 말만을 가지고 그의 생각을 추론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추론된 그의 생각은, 나에게는 파르테논에 대한 몰이해나 편견에 근거를 둔 것으로 보인다.

 

파르테논 신전 2004년
파르테논 신전 2004년
파르테논 신전 2014년
파르테논 신전 2014년

파르테논 신전은 김진애도 언급했던 것처럼 1687년, 오스만 제국과 베네치아 공화국 사이에 벌어졌던 전쟁의 과정 속에서 크게 파괴되었다. 당시 아크로폴리스를 요새화하고 있던 터키 측은 신전의 일부를 탄약고로 사용하였는데, 아크로폴리스에 대해서 베네치아 측에 화력을 집중시키는 과정에서 그 탄약고가 폭발한 것이다.

이 사건은 파르테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면 언제나 언급되는 일화다. 김진애는 이 사건 때문에 파르테논이 유명해졌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이 일화는 파르테논의 중요성-상징성을 전제로 한 뒤, 거기에 정치적인 이유가 덧붙여져서 의도적으로 강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다시 말해서 신전은 원래부터 유명했고, 건축학적으로 놀라운 성취물이며, 동시에 서구의 문화적 상징이었기 때문에 신전의 훼손에 대한 책임을 터키에게 강조해서 돌리려는 의도가 있었을 수도 있다.

이 가정에 대해서 철저하게 계보학적 분석을 해본 것은 아니지만, 중세 이후 터키는 유럽인들에게 오래도록 가장 큰 위험 혹은 가장 강력한 적으로 여겨졌었고, 현대의 그리스는 역사적인 이유로 여전히 터키와 사이가 썩 좋지 않은 점을 감안한다면, 정황상 이 가정의 설득력은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노트르담 성당에 대해서도 그랬고, 이번에는 파르테논 신전에 대해서 그러는 것처럼 서구 중심적 시각에 대해 습관적으로 부정적 견해를 들어내는 김진애는,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그 자신이 매우 강력한 서구적 인식의 프레임에 갖혀버린 것 같기도 하다.

파르테논 신전의 후면
파르테논 신전의 후면

조금만 더 파르테논 신전에 대해서 "상식적인"이야기를 해보자. 나는 이집트 고고학자이고, 고대 지중해 세계에 관심이 많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고전학자나 그리스 건축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아주 상식적인 이야기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런 상식적인 이야기만으로도, 파르테논 신전이 폭파되었기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높은 명성을 얻을 수 밖에 없는 맥락 속에서 지어진 신전이라는 사실과 이 신전이 대체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던 이유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해진다.

페르시아 전쟁 이후, 아테네는 그리스 세계에서 독보적인 중심 국가가 되었고, 그에 따라 재정도 매우 풍부해졌다. 대규모 토목공사들이 연이어 시작되었고, 기원전 447년 페리클레스는 훼손된 이후 오래도록 방치되어 있던 아크로폴리스 위에 다시금 신전을 짓자는 제안을 한다.

그렇게해서 지어지기 시작한 것이 파르테논 신전과 신전의 영내로 진입하기 위해서 통과해야 하는 거대한 대문(프로필라이아, Propylaia)이다. 토마스 마틴(Thomas Martin)은 이 두 개의 거대 건축물 건설비용으로 전체 동맹국에서 걷는 공여금의 7년치 분량이 투입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즉 파르테논 신전을 중심으로 하는 아크로폴리스의 건축물들은 당대 그리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성한 폴리스였던 아테네가 아주 작정하고 국가적 역량을 최대한 기울여 만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런 프로젝트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파르테논 신전 건축에 당대 그리스 세계의 건축-예술적 정수가 투입되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파르테논 신전과 프로필라이아 복원도 (P. Connolly 그림)
파르테논 신전과 프로필라이아 복원도 (P. Connolly 그림)
프로필라이아
프로필라이아

2만톤의 아티카 산 대리석이 사용된 이 신전은 규모 자체도 매우 거대하다. 파르테논 신전은 길이가 약 70미터, 폭이 약 3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다. 이 규모는, 서기 2세기에 완공된 '올림피에이온'(길이 108미터-폭 41미터)을 제외하고는 그리스 전체에서 가장 큰 것이다.

신전의 정면은, 일반적인 신전들이 6개의 기둥으로 만들어지는 것과 달리 도리아식 기둥 8개로 만들어졌고, 측면에는 역시나 일반적 신전들의 13개를 훨씬 더 넘어서는 17개의 기둥이 사용되었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다 본 올림피에이온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다 본 올림피에이온

그런데 파르테논 신전이 매우 높은 수준의 건축물이라 널리 평가 받는 것은 단순히 거대한 규모 때문만은 아니다.

이 신전 건축에는 시각적 효과를 고려한 교묘한 건축 기법이 적용되기도 했다. 아마도 많이들 들어보셨겠지만, 파르테논의 건축 과정에 사용된 기법들은 신전의 라인에 미묘한 굴곡을 주어서 오히려 인간의 눈에는 완전한 직선으로 보이게끔 만들었다던가, 기둥을 엔타시스(entasis, 배흘림) 형식으로 만들고 측면의 기둥들은 살짝 안쪽으로 기울어지게끔 만들어 시각적 안정성을 더했다던가 하는 것들이다.

장식적인 측면에서도 파르테논 신전은 그리스 신전들 가운데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신전의 프리즈(frieze)에는 말을 타고 있는 남자들과 여러가지 물건을 들고 걸어가는 여자들의 행렬이 조각되어 있고, 이들의 행렬 맨 앞에는 신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특이하게도 파르테논 신전은 도리아식 오더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리즈 부분은 이오니아식 건물에서 주로 사용되는, 트리글리프(triglyphs)와 메토프(metope)의 구분이 없는 연속적 프리즈 형태가 도입되었다. 이는 매우 파격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파르테논 신전의 프리즈 개념도
파르테논 신전의 프리즈 개념도
(출처 : 영국 박물관 블로그 https://blog.britishmuseum.org)

그런데 파르테논의 프리즈 장식은 비단 장식적인 측면에서만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이 장식 속에는 보통 시민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이처럼 신전의 전통적인 기능을 넘어서서 시민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 신전을 장식한 것은 아테네가 거의 유일하다. 그런 만큼 시민들에 관한 묘사로 이루어진 파르테논 신전 장식은 아테네라는 정치체 혹은 공동체가 갖는 특유의 정체성이 매우 잘 반영된 건축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따라서, 파르테논 신전은, 최소한 기원전 5세기 혹은 그 이후로도 몇백년 정도로 시간적 범주를 한정한다면, 지중해 북안 지역, 즉 현대의 유럽에 해당되는 지역에서 가장 수준 높은 건축물들 가운데 하나라고 할만 하다.

고대 그리스가 서구 사회에 끼친 영향과 그 서구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전 세계에 끼친 영향을 감안한다면, 고대 그리스 최고의 건축적 업적이 여전히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아크로폴리스 아래에서 바라본 파르테논 신전
아크로폴리스 아래에서 바라본 파르테논 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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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doo kwon 2019-05-07 15:04:35
객관적이고 좋은 내용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