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몰랐던 독립운동가들⑫ 에필로그
세상이 몰랐던 독립운동가들⑫ 에필로그
  • 조시현
  • 승인 2019.04.12 18:4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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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 독립운동의 성지가 된 이유

올해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정확히 100년이 되는 해다.

대한민국이 한 세기의 역사를 지니게 된 셈이다. 그러나 지난 한 세기를 지나오면서 과연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는 국호에 어울리는 그런 나라가 됐는지를 생각해보면 섣불리 대답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 가운데 신원이 회복되지 못해 아직도 국가로부터 서훈을 받지 못한 분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다.

대부분 일제시대 사회주의 계열(아나키스트 포함)에서 독립운동을 했거나, 친·인척 중 월북한 사람이 있는 경우가 그렇다.

앞서 살펴본 경북 안동 지역의 독립운동가들도 마찬가지이다. 안동에서만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분들이 대략 20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독립운동의 성지라고 불리우고 있지만, 실상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해내고 그들을 기리는 모습은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아직도 이념으로 그들을 나누고 평가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왜 유독 안동에 이렇게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배출되고, 또 사회주의 계열의 운동을 하게 됐는지를 이유에 대해 한 번 알아보려 한다.

● 영남 학파의 뿌리를 둔 인맥
경북 안동의 정신적인 뿌리는 퇴계 이황임을 부정할 수 없다. 현재도 안동에서 종가라 불리우는 곳은 대부분 퇴계 선생 집안 또는 퇴계 선생 제자들의 집안이다.

이들 집안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시작됐고, 또 전개됐다.

흔히 유림은 보수적이라고 말하지만, 이들 집안은 달랐다. 다른 유림과는 달리 당시의 선진 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주의, 아나키스트 사상, 노동조합 운동 사상 등을 쉽게 받아들여 이를 현실에서 펼치고자 했다.

김희곤 경북독립운동기념관 관장은 일제 강점기 시절 새롭게 등장한 이들 세력을 ‘혁신 유림’이라고 명칭하자고 주장했다.

김 관장은 “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펼쳐진 독립운동사를 살펴보면 ‘유림이 보수적이다’라는 평가는 지극히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의병항쟁의 지도자는 말할 것도 없고, 계몽운동이나 3·1운동, 청년운동에서부터 심지어 공산주의운동에 이르기까지 대다수의 지도자가 바로 퇴계 학통을 잇는 집안 출신의 지식인이었다”며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힘이 바로 안동에 강하게 자리잡은 선비 정신임을 국민들에게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유림들 스스로가 보수의 굴레를 벗고 그 속에서 혁신의 길을 열어 나가며 독립운동 속에서 근대화를 추진한 것”이라며 “‘식민지 통치 덕분에 근대화가 이뤄졌다’는 일제 식민지 논리가 틀린 것임을 증명해주는 역사적 사례가 바로 안동의 독립운동사”라고 강조했다.

김 관장은 “문제는 이러한 잘못된 보수지향성은 반드시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며 “의병항쟁에서 계몽운동으로의 전환이나 유림 출신들이 주역을 이룬 사회·공산주의운동은 바로 이러한 것이 잘못된 것임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하나의 문제점은 독립운동을 한 분들, 즉 민족적이고 국가적인 분들인데, 그 분들을 문중 중심의 인물로 오히려 깎아내리고 있는 것”이라며 “독립운동을 한 그 분들은 어느 한 가문 또는 안동 지방만의 소유가 아니라, 우리 국가와 민족이 공동으로 소유하는 재산과도 같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사실 그렇게 된 것에는 그동안 중앙 정부가 외면한 것이 크다”라며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는 그 분들의 숭고한 뜻을 계승하고, 그것을 인류의 양심 차원에서 세계화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 독립운동가들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
앞서 11편의 글을 통해 살펴봤지만, 대부분 널리 알려지지 않은 분들이 많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색깔론’이다. 대부분 사회·공산주의운동을 했거나 해방 이후 월북한 경우이다.

그리고 남아 있는 이들에게는 가혹한 ‘연좌제’가 적용됐다.

6형제 모두 독립운동을 했으나 동생 3명이 월북해 버렸던 이육사 시인의 따님인 이옥비 여사는 “오랫동안 집안의 내력은 불문(不問)에 부쳐졌었다”며 “좌우 이념 대립이 심한 이 시대를 살게 된 게 불행”이라고 한탄한 바 있다.

역시 월북한 독립운동가 막난 권오설 선생의 후손인 권대용 씨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받친 것을 두고 좋고, 나쁘다고 나눌 수 없는 거잖아요? 근데 우리는 아직도 좋고, 나쁘다고 나눠 평가하잖아요”라고 인터뷰 내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이건 진정한 해방이 된 것이 아니다. 친일파만 해방된 거라고 본다. 독립운동한 사람한테는 해방된 것이 아니다”며 “빨갱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고향이지만 고향에 살 수 없었다”고 연신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경북 구미 출신으로 만주로 이주해 독립운동을 했던 김해 허씨 문중의 후손들은 거의 대부분 귀국조차 못하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 그들 중 몇몇은 국적 회복을 신청했는데 퇴짜를 맞은 경우도 있다고 후손은 밝혔다.

이런 상황을 접해보면 여전히 우리 사회가 이들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독립운동가들이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기록이 전해지지 않은 점이 있다.

앞서 살펴봤던 독립운동가들은 대부분이 문중 단위로 국내의 재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이주했다. 그러다보니 국내에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또 독립운동의 특성 상 비밀리에 활동할 수 밖에 없는 제약이 뒤따랐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들 문중들끼리 혼인으로 연결될 수 밖에 없었고, 기록은 한정적으로 전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김희곤 관장은 “여전히 발굴하지 못한 분들이 너무나도 많다”며 “이들을 찾아내고 기념할 수 있도록 학계 뿐만 아니라 정부 및 지자체도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 독립운동가 발굴에 나서는 정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 대통령은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 복원을 천명했다. 마침 올해가 임청각이 세워진 지 500년이 되는 해이다.

임청각 종손인 이창수 씨는 “이제서야 정부에서 임청각 복원을 하겠다고 나서주니 정말 고마울 뿐”이라며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독립은 ‘일제가 망친 석주 할아버지의 생가, 옛 모습 찾는 날이 진정한 독립의 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지난 2018년 8월 15일 광복절에서 정부는 석주 선생의 손주며느리인 허은 여사(1907∼1997)에게 독립운동을 인정해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또한 정부는 지난해 독립유공자 포상 기준을 개선한 결과 새롭게 포상한 독립유공자 177명 중 여성 65명(36.7%)에게 서훈을 추서했다.

아울러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한 정부는 독립유공자들에 대해 재조사 방침을 밝혔다.

광복 이후 7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이라도 독립운동을 했던 선현들을 재조명할 수 있게 돼 정말 다행스럽다.

김희곤 관장은 “정부의 이러한 노력은 앞으로 새로이 전개될 문화에 대해 진취적 기상으로 대처해 나가는 계기를 마련하는 매우 의미있는 시작”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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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그래 2019-04-16 07:37:08
많은것을 알게되었고 다른자료도 접할수있는 참으로 감사한 글 들이었습니다
늘 건승하시고 또 다른 기획의 글을 기다리겠습니다
항상 행복이 함께 하시길~

김지숙 2019-04-12 19:47:40
안동이 그런 곳이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