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에 부는 과거의 망령
오스트리아에 부는 과거의 망령
  • 노진탁
  • 승인 2019.04.15 10:3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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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중부유럽 이야기③-오스트리아

한국인의 의식 저변에 일본이라는 나라가 무시할 수 없는 비중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슬로베니아인들에게는 오스트리아가 그렇다. 가혹한 통치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무려 600년 이상 오스트리아 제국으로부터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다. 슬로베니아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은근히 오스트리아를 의식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국이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위해 일본에 대한 단순한 반감을 넘어 일본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처럼 슬로베니아 또한 오스트리아를 바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랫동안 중부유럽의 맹주로 군림했고 현재에도 중부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인 오스트리아를 살펴보고자 한다.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오스트리아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면서 한국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합스부르크가가 신성로마제국의 제위를 오랫동안 독식하면서 오스트리아는 오랫동안 독일에서 가장 강력한 지역이었다. 합스부르크가는 프랑스 부르봉 왕가와 유럽에서 쌍벽을 이루며 대륙을 호령했다. 하지만 프로이센과의 전쟁 이후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분리되었고 제국 내 분열을 막기 위해 두 번째로 가장 많은 민족 구성을 차지하는 헝가리와 대타협을 맺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탄생시킨다. 당시 제국은 현재의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 일부,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던 중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며 제국의 분열과 나치의 점령을 겪었고, 패전 이후에는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에 의해 사분할 되었다.

연합군 군정기 시절의 오스트리아
연합군 군정기 시절의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가 분단을 피하고 정상 국가로서 국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영세 중립국이 되는 것이었다. 결국 오스트리아는 영세중립국을 선포한다. 한 때 이베리아 반도에까지 세력을 뻗쳤던 오스트리아는 이렇게 소국으로서 중립을 지켜야 하는 상황으로 전락한다. 그러나 1955년 독립 이후 지난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오스트리아는 국제 사회의 모범 국가로 훌륭하게 변모했다.

중립국이라는 것이 선포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국내법으로 규정한다 하더라도 국제 사회에서 인정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고 강대국들의 개별 승인이 이어져야 한다. 더 나아가 중립국의 입지가 다져지지 않으면 소용돌이 치는 국제 정세 속에 휘둘리기 십상이다. 오스트리아가 영세 중립국의 입지를 다지며 국제 사회의 모범 국가로 변모하게 된 주요한 장면 두 가지를 소개하고 싶다.

첫 번째는 제2차 미소정상회담이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개최된 것이다. 1961년 빈에 위치한 임페리얼 호텔에서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과 흐루쇼프 서기장이 만났다. 지금이야 70년 적대관계를 가져온 미국의 대통령과 북한의 지도자가 만나는 게 굉장히 놀라운 일이지만 초강대국의 양 지도자가 만났던 일은 그 무게감부터가 다르다. 무려 미국과 소련의 양 지도자가 수도 빈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것은 오스트리아가 영세중립국으로 입지를 다지는 데에 큰 힘을 실어줬을 것임이 분명하다.

제2차 미소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던 임페리얼 호텔
제2차 미소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던 임페리얼 호텔

두 번째는 ‘비엔나 국제 센터 Vienna International Center’다. 이 센터는 다수의 국제기구 본부가 입주해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북한 또는 이란과 관련해 국제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IAEA(국제원자력기구), 노동 이슈의 중심인 ILO(국제노동기구)를 비롯해 중요한 UN 산하 기구들이 밀집해있다. 이렇듯 각종 국제기구가 입주해있는 이 센터는 오스트리아가 중립국의 입지를 다지는 데에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일례로 핵무기 확산을 막고 원자력의 평화적 사용을 장려하는 IAEA의 역할을 제외해놓고 보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세계 각국의 원자력발전소는 수시로 IAEA의 감시를 받고,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될 경우 IAEA의 저지를 받는다. 강대국의 핵무기 보유를 막지는 못했다는 비판이 있긴 하지만 더 이상의 폭주를 막아왔다는 점에 2005년에 IAEA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은 그 자격이 충분했다고 본다.

다수의 국제기구가 입주해 있는 비엔나 국제 센터
다수의 국제기구가 입주해 있는 비엔나 국제 센터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오스트리아는 지난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국제 사회의 모범 국가로 변모해왔다. 제국의 향수를 잊지 못하는 세대, 강제 병합을 당했음에도 나치에 부역한 세력이 남아있었지만 시대 정신은 이미 작지만 국제 질서에 기여하는 쪽으로 넘어왔다.

그런 오스트리아가 다른 중부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정치 흐름이 심상치 않다. 지난 2월 한국을 방문한 바 있는 오스트리아 쿠르츠 총리의 집권 과정은 난민 이슈와 끈끈하게 얽혀 있다. 중도우파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당 출신인 쿠르츠 총리는 의원내각제 국가인 오스트리아의 특성상 제1당이 되었음에도 과반이 되지 못해 연정을 해야했다. 하필 그 연정 파트너가 중도좌파 정당이 아니라 친나치 정당이라고 비난 받는 자유당이었다.

쿠르츠 총리는 외무장관 재임 당시 난민 이슈를 직면했고, 강력한 반난민-자국민 우선주의 정책 공약으로 각광 받았고 결국 집권에 성공한다. 제국에 향수를 느끼며 반슬라브주의 정서를 가진 낡은 세대, 나치에 부역했던 세력이 각국에서 쏟아져온 이주민들에 대해 반감을 가진 젊은 층과 만나 다시 부활한 것이다. 세계 최연소 국가수반으로 주목 받는 쿠르츠 총리는 이러한 면모로 인해 ‘오스트리아의 트럼프’라고 불리기도 하며 헝가리의 오르반 총리와 함께 중부유럽 극우 정치의 아이콘으로 평가 받는다.

지난 2월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은 오스트리아 쿠르츠 총리
지난 2월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은 오스트리아 쿠르츠 총리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 있다. 유럽 만큼은 아니지만 이주 노동자의 증가가 불가피한 대한민국에게도 남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에게 도래할 미래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주제이며 이것이 우리가 유럽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다.

극우 정당이 난민 이슈를 통해 재집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주 노동자를 강력하게 규제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현재 유럽이 부닥친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우리에게 닥칠 미래를 잘 준비해 나가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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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doo kwon 2019-04-15 21:03:22
오스트리아 좋은데 포지션이 애매한 것 같습니다. 유럽은 겉은 안정적인 것 같은데 속은 이상하게 많이 꼬여 있는 듯.

신선해 2019-04-15 13:18:57
와, 세계사에 해박하신듯
잘 읽었습니다~

나그네 2019-04-15 11:31:09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