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세이(院政, 원정) 2편 : 시라카와 법황의 강대한 권세
인세이(院政, 원정) 2편 : 시라카와 법황의 강대한 권세
  • 정재웅
  • 승인 2019.04.26 18:3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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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제에서 권력구조의 문제 ⑭ 외척 배제하려다 더 흔들린 덴노 권력
카이사르 “아무리 나쁜 결과로 끝난 일이라도 시작한 동기는 선의였다”

경제학 박사이자 페이스북에서는 ‘역사 덕후’로 알려진 정재웅 님이 ‘군주제에서 권력 구조의 문제’라는 주제로 연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매주 금요일 업로드 되니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2012년 1월부터 12월까지 NHK에서 방송된 대하드라마 ‘타이라노 키요모리(平淸盛)’에 등장하는 시라카와 법황(이토 시로 분) 
2012년 1월부터 12월까지 NHK에서 방송된 대하드라마 ‘타이라노 키요모리(平淸盛)’에 등장하는 시라카와 법황(이토 시로 분) 

인세이(院政, 원정) 1편 : 고산조가 간신히 정비한 율령제를 그 아들이 흔들다

시라카와 덴노(白河 天皇)는 1072년 스무살의 나이로 덴노에 즉위하나 아직 한창 때인 서른 네 살이었던 1086년, 불과 8살밖에 안된 아들 다루히토 친왕(善仁 親王, 즉위 후 호리카와 덴노)에게 양위하고 조우고(上皇, 상황)가 되었다. 

전술한 바 있듯이 역사를 살펴보면 군주가 자신의 생전에 양위하는 경우는 여럿 있다.

당 현종은 안록산과 사사명의 난이라는, 제국이 붕괴할 수도 있는 미증유의 재난에 직면하여 태자(곧 당 숙종)에게 양위하고 상황이 된 적이 있고, 조선 정종은 태종에게, 태종은 세종에게 양위하고 상왕이 된 적이 있다.

물론 정종은 실권이 없었고, 태종의 경우 내정은 모두 세종에게 맡기고 가장 중요한 군권을 챙겼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처럼 군주가 살아있으면서 양위한 경우는 상당히 많이 나타나는데, 이 경우 모두 실권을 새 군주에게 넘기거나 혹은 최소한의 군권만 옛 군주가 보유했다.

이러한 경우들과 일본 인세이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조우고가 실권을 놓지 않고 계속 휘둘렀다는데 있다.

대부분의 제도가 그렇듯이 일본의 인세이도 그 앞 제도에 의한 경로의존성을 갖는다.

즉 덴노위의 계승이 장자 상속으로 고착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강대한 외척인 후지와라 가문이 덴노의 즉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후지와라 가문을 외가로 둔 덴노는 자연스럽게 다시 후지와라 가문의 여성을 아내로 맞이하며 다시 후지와라 가문과 강력한 유착관계(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를 형성했다.

이에 더해 세속 군주이자 제사장 역할까지 겸했던 덴노의 특성상 덴노는 국정뿐만 아니라 각종 의례로 주관해야 했기에 행동의 제약과 의례의 복잡함이 수반되었다.

인세이는 이러한 덴노직의 특성에 따른 경로의존성의 결과다.

즉 후지와라 가문의 영향력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덴노위 계승을 확정하려면 덴노 본인이 살아있을 때 후계자에게 덴노를 물려주어야 했으며, 의례의 번잡함에 영향을 받지 않고 국정을 관할하기 위해서도 역시 덴노위를 후계자에게 물려주어야 했다.

문제는 과연 퇴위한 조우고가 실권을 가질 수 있느냐인데, 당시 율령에서 ‘조우고의 권한과 처우는 덴노와 동일하게 한다’는 조항이 있기에 이는 장애가 되지 않았다.

시라카와 덴노는 이러한 목적에서 후지와라 가문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제위 계승의 장애물이자 경쟁자인 동생들을 배제한 상태에서 후계를 안정화시킬 목적으로 인세이를 시행했다.

1086년 불과 여덟 살의 나이로 덴노에 즉위한 호리카와 덴노(掘河 天皇)가 만 20세라는 젊은 나이에 죽었다. 이에 불과 네 살밖에 되지 않은 호리카와 덴노의 아들 무네히토가 즉위하여 도바 덴노(鳥羽 天皇)가 되니 덴노의 할아버지 시라카와 조우고의 권력은 더욱 강력해졌다.

조금 과장되게 말해 이 시기부터 덴노는 말만 덴노일 뿐 실제 국정은 모두 시라카와 조우고가 좌지우지하는 기묘한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

사실 호리카와 덴노라고 멍하니 손을 놓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비록 고산조 덴노가 상당히 약화시켰다고는 해도 후지와라 가문의 힘은 아직 강력했고, 셋칸의 영향이 조정에 강하게 남아있어 시라카와 조우고는 이들을 능가하는 정보력과 권력기반이 부재했다.

이 상황에서 호리카와 덴노는 간바쿠인 후지와라노 모로미치(藤原師通)와 상의하며 국정을 운영하며 시라카와 조우고를 상당부분 국정에서 배제시키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1099년 간바쿠 후지와라노 모로미치가 사망하면서 시라카와 조우고에게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모로미치의 아들인 후지와라노 타다자네(藤原忠實)는 당시 나이가 어려서 아버지만큼의 정치력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호리카와 덴노는 이제 조우고에게 자문을 구하며 정치를 해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1107년 호리카와 덴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네 살에 불과한 태자 무네히토 친왕(宗仁 親王)이 도바 덴노로 즉위하니 후지와라 가문과 덴노의 조정 모두 약해진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조우고에게 권력이 집중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시라카와 조우고는 자연스럽게 강력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인노고쇼(院御所)인 교토 동북부 시라카와 호쿠덴(白河北殿)에 기거하며 자신의 수족으로 외척인 후지와라 가문이나 대귀족 대신 중하류 귀족들, 지방 고쿠시(國司) 출신, 그리고 부게 세력을 기용하였다.

이러한 조우고의 수족은 인에서 근신(近臣)으로서 업무를 수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조정에도 파견되어 조우고의 권력을 등에 업고 막강한 권항을 행세했다. 또한 조우고는 인젠(院宣)이나 인쵸쿠다시부미(院廳下文) 같은 문서를 통해 조정에 때로는 명령을 내리며 압박하곤 했다.

이에 더해 조우고는 자신의 경호 및 직권 무력으로 호쿠멘노부시(北面の武士, 북면의 무사)를 설치하여 각지의 겐지와 헤이지를 비롯한 여러 무사 씨족들을 기용하였다. 즉 조우고는 행정과 무력을 모두 손아귀에 쥐고 조정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이후 불교에 귀의하여 출가하여 유칸(融観)이란 법명을 받았기에 시라카와 조우고는 종종 시라카와 법황(法皇)으로 불리기도 한다.

법황이 된 시라카와는 불교계와 유착을 강화하는가 하면 후지와라 가문에서 젊은 셋쇼를 직접 임명했다가 축출하는 등 후지와라 셋칸케를 견제하였다.

또한 방계 황족들을 강제로 승려로 만들며 힘을 약화시켜 자신의 자손들이 후지와라 가문을 비롯한 대귀족을 외척으로 만들지 않고서도 덴노가 될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시라카와 법황은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세가지 있다며 교토 인근 가모가와의 물, 쌍륙 놀이에서 주사위, 승병의 문제를  천하삼불여의(天下三不如意)라고 말했다.
시라카와 법황은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세가지 있다며 교토 인근 가모가와의 물, 쌍륙 놀이에서 주사위, 승병의 문제를 천하삼불여의(天下三不如意)라고 말했다.

이 당시 시라카와 법황이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셋, 즉 천하삼불여의(天下三不如意)에 대해 말했는데, 이 셋은 곧 교토 인근 가모가와(賀茂川)의 물, 쌍륙 놀이에서 주사위, 승병의 문제다.

다시 말해 자연현상, 확률, 그리고 종교의 위세를 제외한 세상사는 모두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당시 시라카와 조우고가 얼마나 강대한 권세를 누렸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라카와 조우고의 강력한 권세는 고산조 덴노가 엔큐의 선정을 통해 간신히 확립한 율령제와 덴노 중심 통치의 근간을 다시 뒤흔드는 행위다.

율령제에 근거하지 않은 조우고가 셋칸을 대신하여 권세를 오로지했고, 그 과정에서 덴노와 조정은 유명무실해졌으며, 부게(武家무가)가 권력의 전면으로 대두하기 시작해 이후 무가정권의 기초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공화정 로마를 마무리하고 제정 로마를 시작한 인물로 평가받는 독재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아무리 나쁜 결과로 끝난 일이라 하더라도 애초에 그 일을 시작한 동기는 선의였다”는 말을 남긴 바 있는데, 시라카와 조우고가 이 경우다.

강대한 후지와라 가문의 권력을 약화시키고, 방계의 덴노위에 대한 도전을 막고, 자신의 후손들에 의한 덴노위 계승과 덴노 권력의 강화를 위해 시작한 인세이는 결국 덴노 자체와 조정을 허수아비로 약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부게를 중용하여 이후 무가정권이 시작되는 기반을 형성하였다.

율령제에 근거한 덴노와 조정의 통치는 후지와라 가문에 이어 다시금 시라카와 조우고에 의해 흔들리게 된 것이다. 혼란은 이제 시작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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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lysses Jung 2019-04-26 19:09:36
나무위키 글 거의 그대로 베껴다 썼구만
이렇게 할 바엔 그냥 위키 링크 가져다 거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