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세이(院政, 원정) 1편 : 고산조가 간신히 정비한 율령제를 그 아들이 흔들다
인세이(院政, 원정) 1편 : 고산조가 간신히 정비한 율령제를 그 아들이 흔들다
  • 정재웅
  • 승인 2019.04.19 18: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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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제에서 권력구조의 문제 13편 - 인세이의 문제 개략

경제학 박사이자 페이스북에서는 ‘역사 덕후’로 알려진 정재웅 님이 ‘군주제에서 권력 구조의 문제’라는 주제로 연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매주 금요일 업로드 되니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1072년, 후지와라 가문의 세도정치를 마감하는, ‘엔큐의 선정(延久の善政)’을 펼친 고산조 덴노(後三條 天皇)가 세상을 떠났고, 덴노위는 갓 스무 살이 된 사다히토(貞仁)에게 돌아갔으니, 이가 곧 시라카와 덴노(白河 天皇)다.

시라카와 덴노는 1086년, 불과 8살밖에 안된 아들 다루히토 친왕(善仁 親王)에게 양위하고 조우고(上皇, 상황)가 되었다.

시라카와 천황은 일본의 제 72대 덴노로, 아들인 제73대 호리카와 천황 때부터 제74대 도바 천황, 제75대 스토쿠 천황에 이르기까지 3대 43년간 원정(인세이)을 펼쳤다.
시라카와 천황은 일본의 제 72대 덴노로, 아들인 제73대 호리카와 천황 때부터 제74대 도바 천황, 제75대 스토쿠 천황에 이르기까지 3대 43년간 원정(인세이)을 펼쳤다.

하지만 조우고가 되었다고 해서 시라카와 덴노가 권력을 손에서 놓은 것은 아니었다.

조우고가 된 시라카와는 인노고쇼(院御所)인 교토 동북부 시라카와 호쿠덴(白河北殿)에 머물며 덴노를 허수아비로 돌려세우고 자신이 실권자가 된 인세이(院政, 원정)를 펼쳤기 때문이다.

고산조 덴노가 엔큐의 선정을 통해 간신히 정비한 율령제를 그 아들인 시라카와가 뿌리 채 흔드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사실 동북아시아뿐만 아니라 역사에서 어린 군주의 즉위 이후 섭정은 폭넓게 나타나는 형태다.

조선사에 나타나는 소위 원상(院相)은 국왕이 질병이나 혹은 기타 다른 유고 사유로 인해 정산적인 집무가 불가능할 때 재상들에게 국정을 총괄하도록 한 제도인데, 이 역시 섭정과 유사하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조선은 실제 집무가 불가능해도 국왕의 부재는 최대한 피하려 했으며 섭정 역시 왕세자의 대리청정 혹은 대비의 수렴청정 형태로 이루어졌다는 면이다.

그렇다고 해도 원상 자체는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이어진다. 이는 군주제에서 연소한 군주의 권력 승계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로 신하의 섭정 혹은 황제와 가까운 친족의 섭정이 있었음을 우리는 이미 제갈량이나 아이신기오로 도르곤의 예를 통해 보았다.

군주제에서 권력 구조의 문제 ③ 조조와 제갈량의 경우

군주제에서 권력구조의 문제 ⑦ 철모자왕

군주의 부친이 실권자가 되어 섭정을 행하는 형태도 우리에게 완전히 낯선 일은 아니다. 한국사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대원군이자 실권을 가진 대원군이었던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예를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군주제에서 권력 구조의 문제① 태종과 흥선대원군의 경우

흥선대원군 이하응
흥선대원군 이하응

그렇다면 시라카와 조우고가 펼친 인세이는 이러한 섭정과 무엇이 다른 것일까. 

앞서 글에서 여러 차례 서술한 바 있듯이 군주제에서 국가의 최고 권위와 권력, 그리고 의사결정권한은 오로지 군주 한 사람에게만 귀속된다. 군주제에 있어 주권자이자 통치자는 군주 본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군주제의 속성을 고려하면 군주제에서 권력의 분점 혹은 적층적 구조는 군주의 통치 자체를 뒤흔드는 혹은 취약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만약 군주가 능력이 부족하여 권력이 분점된다면 이는 군주를 갈아치울 명분이 된다.
※메로빙거 왕조를 몰아내거 카롤링거 왕조를 세운 단신왕 피핀 3세(Pepin the Short) 혹은 조카인 건문제 주윤문을 몰아내고 황제에 오른 명 성조 영락제 주체가 대표적 사례

그게 아니라 신하 혹은 연소한 군주의 노회한 친족의 존재로 인해 권력 구조가 적층적이 될 경우 이를 명확하게 하기 위한 군주의 의사결정으로 인해 저 인물들이 숙청되는 일이 발생(청 황숙부섭정왕 아이신기오로 도르곤이 대표적 예)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군주제에서 권력은 군주 1인에게 오로지되는 것이 군주의 역량과 관련 없이 가장 안정적인 권력구조가 되는데, 그 이유는 군주제에서 권력의 정통성과 권력 행사의 정통성은 군주라는 자리 자체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편집자 주 : 오로지하다=혼자 독차지하다)

이에 대해서는 아마도 나중에 구체적인 모형화를 통해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시라카와 조우고의 인세이는 역사를 통해 몇 차례 나타나지 않는, 군주보다 더 강한 권위와 권력과 정통성을 가진 군주의 부친이 국왕이 아닌 실권자가 되었다는 데 있다.

상술한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경우는 분명 부인할 수 없이 군주인 고종보다 더 강한 권위와 권력을 가진 인물이 군주의 친부인 대표적 예다.

하지만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군주를 능가하는 정통성은 지니지 못했다. 

이 초상화는 실제 조선 태종의 어진이 아니라 태종 이방원의 얼굴을 상상해서 그린 것이다. 2013년 새롭게 만들어져 효령대군(세종대왕의 둘째 형) 기념관에 전시되어있다. 
이 초상화는 실제 조선 태종의 어진이 아니라 태종 이방원의 얼굴을 상상해서 그린 것이다. 2013년 새롭게 만들어져 효령대군(세종대왕의 둘째 형) 기념관에 전시되어있다. 

차라리 시라카와 조우고의 인세이와 가장 근접한 케이스는 세종에게 양위하고 상왕이 되었지만, “주상이 아직 미숙하니 군국의 중대사는 저와 의논해서 결정하도록 하세요”라고 하며 군사 관련 최종 의사결정권을 보유한 태종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도 태종은 상왕으로 있으면서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인 기해동정을 주도하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세종과 태종의 적층적인 권력 분점은 태종이 상왕이 된지 4년 만에 세상을 떠남으로써 일단락되고, 이후 국정은 세종이 주도한다.

사실 이 경험이 세종에게 있어서도 나쁘지 않은데, 부친의 섭정을 경험하며 세종 자신의 경험치를 쌓았고 이는 세종의 이후 국정운영 및 북방개척의 자산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하지만, 시라카와 조우고의 인세이는 일본의 율령제에 있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였다.

시라카와 조우고 본인이 증손자의 덴노위 계승을 결정할 정도로 장수하며 덴노와 조정을 무력화시키고 조우고와 인(院)의 권위와 권력을 강화하였기 때문이다.

즉 분명 군주제에서 최고의 권위와 권력과 의사결정권한은 군주와 그의 조정에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명목상(De Jure) 권력인 정통성과 실질적(De Facto) 권력인 제도, 조세 징수권과 행정력, 그리고 무력이 모두 조우고가 주도하는 인이 우위에 있었기에 덴노와 조정이 하수아비로 전락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인세이는 헤이안 시대 일본을 종결시키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이후 부게(武家)의 대두로 이어져 일본에서 바쿠후(ばくふ)가 조정을 대신해 국정을 오로지하는 일로 연결된다.

일본의 메이지 이신(明治維新, 메이지 유신)이 바쿠후를 몰아내고 덴노 중심 국가로 복고된 것임을 생각하면 시라카와 조우고가 펼친 인세이가 일본사에 있어 얼마나 큰 족적을 남겼는지 알 수 있다. 

군주제에 있어 권력은 아무리 군주의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군주 1인에게 집중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는 단기적이든 장기적이든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역사가 특히나 경로의존성에 의해 그 궤적이 결정됨을 생각해보면 이는 더 명약관화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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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숙 2019-04-20 07:48:06
덕분에 일본역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