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청원 게시판을 사랑한 한경, 8명만 동의해도 인용했다
靑 청원 게시판을 사랑한 한경, 8명만 동의해도 인용했다
  • 김경탁
  • 승인 2019.04.05 18: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언련 모니터 “한국경제의 ‘주 52시간 극장’, 서민경제 걱정할 자격 없다”
1면부터 4·5·7면까지 걸쳐 실린 7건의 기획기사에서 발견된 송송송 구멍들
“당시 화제가 된 글”이라더니…한경이 화제로 만들려고 했다가 실패한 글

청와대는 지난 1일 ‘100명 사전동의 신설’을 골자로 하는 ‘국민청원 시즌2’를 시작했다. 

누가 어떤 내용을 올리던 모두 그대로 공개되던 청원을, 청원인에게 부여된 사전링크를 통해 100명의 사전동의를 받아야만 국민청원 게시판에 공개하도록 해 중복·비방·욕설 등 부적절한 청원의 노출을 줄이고, 국민의 목소리를 효율적으로 담아내도록 한 것이다.

이번 개편은 청와대가 온라인을 통해 수렴한 국민의견에 따른 것으로, 사전동의 절차 도입에 대해서는 63.2%가 찬성했고, 반대 의견은 36.7%였다.

사전 동의 절차 도입에 반대한 36.7%의 청원 게시판 이용자중, 이번 개편에 가장 슬퍼할 사람은 아무래도 대한민국 기자들이 아닐까 싶다. 그중에서도 한국경제신문(약칭 한경) 소속 기자들은 특히 더 슬퍼하겠구나하는 추측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자료가 5일 나왔다.

해당 기사의 인터넷 버전
해당 기사의 인터넷 버전

민주언론시민연합(약칭 민언련)은 이날 발표한 신문 모니터 보고서 [한국경제의 ‘주 52시간 극장’, 한국경제는 서민경제 걱정할 자격 없다]를 통해 한경이 청와대 청원 게시판을 어떤 식으로 사용했는지 적나라하게 분석했다.

민언련이 주목한 기사는 3월 29일자 지면에 실린 [지킬 수 없고, 지켜도 행복하지 않은 주 52시간](전설리‧김진수 기자), [52시간 지키려 116명 뽑았더니, 일 더하겠다며 113명 떠났다](전설리‧김낙훈 기자) 등 1면부터 4·5·7면에 걸쳐 실린 총 7건의 기획기사이다.

배경 설명을 먼저 하면, 지난해 3월 공포돼 7월부터 적용된 주당 52시간(하루 8시간씩 5일+연장근로 12시간)으로의 법정 노동시간 단축 제도는 올해 3월 31일까지의 계도기간이 끝났고, 1일부터 탄력근로제 도입 보고 없이 연장노동을 시킨 사업주가 처벌받게 되었다.

한경 기사가 나온 지난달 29일은 계도기간 종료를 이틀 앞둔 날이었다.

해당 기사의 지면 버전
해당 기사의 지면 버전

한경은 노동시간 단축의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 여러가지 ‘사례’를 들었다.

사례의 출처는 대부분 청와대 청원 게시판이었는데, 민언련은 “그 내용이 아주 가관이었다”며, “확인 결과 대부분의 청원이 10명 남짓 동의를 받았을 뿐이었다”고 밝혔다.

기사에서 한경은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끊임없이 ‘일하게 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온다. ‘지킬 수도 없고, 지켜도 행복하지 않은 법’이라는 하소연이다. 지난 1년간 게시판에 올라온 주 52시간 근로 관련 청원은 2300건이 넘는다”라며 7건의 청원 게시글을 인용했는데, 민언련이 해당 게시글들을 일일이 찾아내서 확인한 것이다.

특히 이 기사 중에 “1년 전 주 52시간 근로제에 대한 논란이 시작됐다. 당시 화제가 된 근로자 글의 제목은 ‘저녁이 있는 삶보다 저녁거리를 살 돈이 중요하다. 일을 더하게 해달라’였다”라는 내용은 작년 4월 1일에 올라와 11일 한경이 [“‘저녁 있는 삶’보다 저녁거리 살 돈이 중요…일 더하게 해주세요”]라고 이미 한번 인용한 적이 있는 청원글을  재탕한 것이었다.

특이한 점은, 이렇게 언론에 노출까지 된 청원글의 동의 인원은 고작 108명이었다는 것.

이에 대해 민언련은 “이 청원 글은 ‘당시 화제가 된 글’이 아니라 ‘한국경제가 화제로 만들려고 했다가 실패한 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고 꼬집었다.

한경이 인용한 청원 중 가장 많은 동의를 받은 것으로 확인된 대목은 [법무부 소속 보호관찰소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조두순’(전자발찌를 착용한 특정 범죄자)이 밤거리를 배회해도 출동할 수가 없다”며 제도를 개선해달라고 청원했다.]라는 부분이다.

5510명의 동의를 받아 유일하게 4자릿수를 채운 이 청원의 취지는 노동시간 단축 문제가 아니라 전자발찌 착용자들을 관리하기 위해 도입된 무도실무관 인력들에 대한 탈법적 노무관리와 무도실무관의 열악한 처우 문제였다.

해당 청원자는 “주 52시간으로 근로기준법이 개정되었으나, 상부에서 ‘예산이 부족하다, 기재부에서 예산을 주지 않는다’ 등의 이유로 인력충원을 하지 않고 있다”면서 “야간에 언제 발생할지 모를 출동과 사건을 대비하기 때문에 대기시간으로 인정받았던 시간들을 무급휴게시간으로 전환하여 모든 업무가 중단되게 되었다”고 호소했다.

이 청원 내용에 대해 민언련은 “대법원 판례(2016다243078)에 따르면 언제 발생할지 모를 출동과 사건을 대비하기 위해 대기해야 하는 시간을 무급휴게시간으로 전환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해당 청원이 주 52시간제에 대한 호소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물론 이 기사에 인용된 사례들이 청원 게시물 밖에 없는 것은 아니다.

중견기업인 동관제조업체 A사, 중견 해외플랜트 건설사인 B사, 중견 자동화설비 제조업체인 C사 등의 대표 및 임원들과 월급이 300만원대에서 200만원 대로 줄어들어 알바를 구하고 있다는 생산직 노동자 2명의 발언이 기사에 나온다. 기업도 힘들고 노동자도 힘들다는 것이다.

특히 한경은 주 52시간 근로제와 임금 변화를 설명한다며 주 52시간 적용 시 감소하는 임금을 표로 만들어 보였는데, 민언련은 “시급 기준으로 계산을 해 보면 이 표는 사실 엉망진창이었다”며 “최저임금 위반 사례는 신고부터 하는 게 어떨지”라고 힐난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한경이 제시한 표에 등장하는 주52시간 근로제 적용 A사의 2019년 3월 월급은 215만원으로 68시간을 근무하던 2017년 12월의 252만원에 비해 37만원 줄어들었는데, 최저임금으로 계산하면 2019년 3월 월급은 최소 239만4천원이 넘어야 한다.

A사가 최저임금을 위반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경제 기사에서 제시한 임금 변화 표
△한국경제 기사에서 제시한 임금 변화 표

사실, A사가 실존하는 회사인지 여부도 의문이기는 하다.

민언련에 따르면 이 숫자는 한경이 1년 전인 2018년 4월 11일 보도한 [“‘저녁 있는 삶’보다 저녁거리 살 돈이 중요…일 더하게 해주세요”]라는 기사에서 제시된 값과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해당 표에는 2020년부터 주 52시간 근로제를 도입하는 B사의 사례도 나오는데, 민언련은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B사는 2018년 말 근로시간 68시간 노동자에게 375만원의 월급을 지급했고, 이는 시간당 9589원이다. 이 회사가 2020년 1월에 52시간 근로하는 노동자에게 줄 것으로 추정된다는 월급은 291만원으로, 시급은 1만146원이다.

2년 사이의 시급 인상률을 계산해 보면 연간 2.4%로, GDP상승률과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거의 자연인상률에 가깝다.

이에 대해 민언련은 “만약 모든 기업이 B사처럼 임금을 올린다면 인건비가 줄어드니 기업들은 주 52시간을 적극 환영해야 하는 것 아닐까”라면서, “하지만 한국경제는 ‘52시간 근무제가 인건비를 상승시킨다’고 하고 있다. 앞뒤가 맞지 않다”고 꼬집었다.

한경은 같은 날 [“수출 물량 줄일 수밖에…” 기업 경쟁력까지 꺾일 위기]라는 다른 기사에 베트남 공장 이전을 생각한다는 기업인의 인터뷰를 실었다.

“업무 특성상 1년 중 절반은 바쁘고 절반은 좀 여유로운데 내년 주 52시간 근로체제에서 법을 지키기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차라리 공장을 해외에 두는 게 속 편해 이전을 추진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민언련은 “주 호치민 대한민국 총영사관에서 제공하는 베트남 노동법 번역본에 따르면, 베트남의 초과 노동시간 제한은 일 12시간, 월간 30시간, 최대 연간 200시간이고 정부가 허용하는 경우 최대 연간 300시간”이라고 지적했다.

환산하면 주당 5.8시간이고, 월별로 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한다고 해도 최대 주당 6.9시간이며, 이를 어길 경우 형사처벌을 받는다. 베트남은 48시간제를 하고 있으므로, 최대 ‘주 55시간제’인 셈이고, 단서조항으로 “국가는 주 40시간 근무를 실행할 것을 권장한다”고 한다.

민언련은 “베트남이 해외기업 유치에 힘을 쓰는 상황이라서 이런저런 편의를 봐준다지만 베트남 노동법을 봤을 때, 공장을 이전해도 별로 ‘속이 편해질 것’ 같지는 않다”고 꼬집었다.

한편 민언련에 따르면 2019년 1월 1일부터 4월 1일까지 최저임금이 키워드인 한경 기사는 총 384건에 이르며, 내용도 하나같이 최저임금 ‘부작용’ 강조뿐이었다.

민언련은 “한경은 지속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거의 공포에 가까운 반응을 보여 왔다”며, “종합해 보면, 저임금&저생산성&장시간 노동을 하던 ‘그 시절’이 좋았다는 자신들만의 주장일 뿐, 아무리 경기가 좋지 않더라도 이런 주장에 찬성할 노동자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얼미터 2018년 6월 11일 발표 여론조사
리얼미터 2018년 6월 11일 발표 여론조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