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惡)은 부역자를 보호해주지 않는다
악(惡)은 부역자를 보호해주지 않는다
  • 정병욱
  • 승인 2019.04.04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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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당신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교학사, 자한당, 이재명, 안철수 모두 한결같이 '꼬리 자르기'

교학사는 자사의 수험서에 노무현 대통령 합성사진이 게재되어 논란이 일자 그 책임을 편집자에게 전가했다. 편집자가 실수로 꼬리자르기를 시도했다.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교정과 편집작업에 참여하고, 숱한 전문가들이 감수를 하는 과정은 빼놓고 편집자만의 잘못이라는 변명은 누가봐도 궁색하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서해수호의 날을 추모하며 대전 현충원 소재 천안함 용사 46명의 묘역을 참배한 날,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총리가 보낸 화환 명패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지적했듯이 엄청난 결례이자 국격 훼손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의 화환은 단순히 대통령 개인의 상징이 아니라 국가 이름으로 보내는 국가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은 황교안 대표를 배려해 문 대통령의 명패를 치우는 과정에서 실수로 생긴 일이라고 해명했다. 더구나 대전시당 당직자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평소 황교안 대표가 박근혜 정부 시절 KTX 승강장까지 관용차를 끌고 들어간 일이나 대통령 권한대행 명패와 기념시계를 별도로 제작해 '과잉 의전' 논란을 일으킨 전례를 고려하면 이 역시 궁색한 변명으로 들린다. 자한당은 중대한 국격 훼손 문제를 당직자의 과잉 충성이 빚어낸 촌극 정도로 치부하고 꼬리를 잘랐다.

친형 강제입원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 중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공판 초기에는 완전 무죄를 주장했던 이 지사는 자신의 주장에 반대되는 증인들의 진술이 속속들이 터져나오며 불리하게 돌아가자 보건소장과 비서들이 독단적으로 결정한 일이라며 꼬리자르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재명 지사의 말대로라면 보건소장과 비서 등은 자신들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시장의 친형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한 아주 대담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이 지사의 주장을 듣고 있는 보건소장과 비서들로서는 굉장히 황당한 일일 것이다. 심지어 이 지사는 비서실장 명의의 휴대폰으로 전송된 각종 욕설 문자메시지도 모두 비서실장이 독단적으로 보낸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장남 준용씨를 마타도어하기 위해 파슨스 디자인 스쿨 동료를 사칭해 조작 인터뷰를 꾸민 국민의당도 꼬리자르기의 진수를 선보인 바 있다. 사건의 모든 전말이 드러나자 국민의당은 당직자인 이유미씨가 단독으로 꾸민 음모라고 자체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형사처벌도 이유미씨를 비롯한 하급 당직자들만 받았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이유미씨가 안철수 후보와 밀접한 사이라는 점, 그리고 조작된 인터뷰가 공중파에 단독으로 나간 일을 감안하면 당직자들의 일탈이라는 변명은 역시 궁색했다. 이같은 해명에 의구심을 품고 "머리자르기가 아니냐?"고 반박한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를 향해서는 적반하장격으로 국회 보이콧을 선언하며 반발하기도 했다.

국민으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을 우스꽝스럽게 악의적으로 합성한 사진을 책에 실은 만행을 저지른 출판사나, 현직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화환이 거슬린다고 명패를 땅바닥에 던져 국격을 추락시킨 정당이나, 자신의 시정을 비판하는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키기 위해 직권을 남용한 광역단체장이나,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인터뷰까지 조작하는 반칙을 가한 정치인 모두 진상이 드러났을 때 아랫 사람에게 덮어씌우는 방법으로 도망갔다. 각각의 죄의 경중과 크기는 다르지만 이들의 행동은 본질적으로 같다.

히틀러 치하에서 유대인들을 홀로코스트로 수송하는 중책을 맡았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은 도피 생활 끝에 체포된 후, 그것은 모두 히틀러의 명령이었고 자신은 명령을 받들었을 뿐이니 무죄라고 주장했다. 이에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저서에서, 비록 아이히만이 명령에 따라 수동적으로 행동했을 뿐이라 할 지라도 행위를 하기 전에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인식했어야 할 의무가 있었다고 말했다. '생각하지 않은 죄'로 아이히만은 유죄에 처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아이히만은 텔아비브 전범 재판에서 사형에 처해졌고, 1962년 사형이 집행됐다.

사람들은 다양한 선택의 순간에 직면한다. 때때로 그것들은 자의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때때로는 누군가의 명령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또 누군가에 의해 법에 어긋나거나 원칙에 반대되는 불의한 지시를 받을 때도 있고, 그 지시를 행위에 옮겨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악의 부역자가 되기를 요구받았을 때,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도 동시에 존재한다. 아렌트의 말처럼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다. 진실이 드러났을 때 악은 부역자인 당신을 보호해주지 않는다. 그 대신 교학사처럼, 자한당처럼, 이재명처럼, 안철수처럼 당신에게 모든 잘못을 뒤집어씌운 채 자신들은 정의의 구현으로부터 빠져나가려 한다. 그래서 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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