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의 ‘시장’은 행패를 제지하지 않는 ‘저자거리’ 뜻하나
전경련의 ‘시장’은 행패를 제지하지 않는 ‘저자거리’ 뜻하나
  • 김경탁
  • 승인 2019.03.27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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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대한항공 사내이사 재선임 부결되자 “유감” 입장 발표
주주자본주의에 ‘무죄추정 원칙’ 적용? 부끄러움은 누구의 몫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7일 대한민국에 자본시장이 열린 이후 최초로 주주의 손에 의해 사내이사 자리에서 밀려난 재벌그룹 총수가 되었다. 이에 대해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은 유감의 뜻을 밝히면서 색깔론 몰이를 시도하고 나섰다.

대한항공은 이날 제57기 정기 주주총회를 열어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 등 4개 의안을 표결에 부쳤다. 주총에는 의결권 있는 주식의 73.84%(9484만4611주 중 7004만946주)가 표결에 참여했다.

조 회장 사내이사 연임안은 찬성 64.09%, 반대 35.91%로 찬성이 훨씬 높게 나왔지만 회사 정관에 ‘사내이사 선임은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필요한 66.66% 이상을 확보해지 못해 부결됐다.

하지만 불과 2.5% 가량이 부족해 재선임이 부결된 것일 뿐, 조 회장 재선임에 찬성한 우호지분 비율이 과반을 훌쩍 넘기는 것으로 나타나 조씨 일가의 대한항공 및 계열사에 대한 경영권·지배권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 

연임안 반대 지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11.56%를 갖고 있는 국민연금이었다.

국민연금은 전날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에서 격론을 벌인 끝에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의 침해의 이력이 있다고 판단”했다면서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사진의 핵심 키워드는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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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얼마나 없었으면 자택 경비도 회사 경비로 하셨다는 불우이웃 조양호 씨
돈이 얼마나 없었으면 자택 경비도 회사 경비로 하셨다는 불우이웃 조양호 씨

국민연금이 밝힌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의 침해의 이력’에서 가장 큰 부분은 조 회장 본인이 대한항공 납품업체들로부터 항공기 장비·기내면세품을 사들이며 중간에 업체를 끼워 넣어 중개수수료를 챙긴 혐의로 기소돼 재판 받고 있는 총 27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이다.

이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조 회장의 가족들이 최근 몇 년 사이 벌여온 엽기 행각들로 인해 실추된 대한항공의 명예와 기업가치 훼손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어서 국민들 사이에서 대한항공 이름에서 ‘대한’을 빼고 태극마크도 못쓰게 해야한다는 요구가 빗발쳤다.

주식을 갖고 있는 주주들 입장에서는 조양호 회장을 비롯한 그 가족들이 회사 이미지에 미치는 악영향과 조 회장 본인이 재판을 받고 있는 거액의 횡령·배임 혐의를 종합적으로 볼 때 조 회장 본인(더 나아가 조 회장 일가)의 퇴진이 주주가치에 긍정적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와 관련해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주총 5일 전인 22일 국내외 대한항공 주주들로부터 조양호 회장 연임에 반대한다는 의사가 표시된 위임장이 사무실로 답지하고 있다며 이를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이번 주총에 앞서 대한항공 사측이 회사 주식을 갖고 있는 임직원들에게 위임장을 쓰라고 강요했다는 소식, 대한항공 관계자가 집이나 회사 등으로 찾아가 위임장을 써달라고 매달리기에 거절했다는 소액주주들의 에피소드가 계속 전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재계의 대표를 자임하는 전경련에게는 ‘주주가치’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었나 보다.

전경련은 이날 소식이 전해지자 즉각 “조양호 회장에 대한 사내이사 재선임안 부결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며 국민연금의 연임 반대를 “그동안 조 회장이 대한항공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노력해 왔다는 점은 고려하지 않은 결정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전경련은 “주주들의 이익과 주주가치를 감안해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야 하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논란을 이유로 연임 반대 결정을 내린 데 대해 우려스럽게 생각한다”며 “사법부가 판결을 내리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해야 한다는 대원칙에도 반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당장 내 돈을 투자한 회사의 이미지가 실추돼서 주가가 떨어지는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켜서 끝까지 지켜봤어야한다는 그야말로 고결하고 너무나도 PC한 주장에 말문이 막혀온다. 

앞서 권위주의 정부 시절 재벌들로부터 비자금을 걷어 바치는 창구와 재벌의 민원 해소 창구 역할을 겸했던, 또한 이명박근혜정부 시절에는 정체불명의 이상한 최순실 재단들에 기금을 모아주는 하수인이었던 조직이라는 점은 빼고 보더라도 말이다.

조양호 회장 왼쪽이 부하직원 갑질 폭행의 이명희(부인)이고 오른쪽이 땅콩회항의 조현아(장녀)
조양호 회장 왼쪽이 부하직원 갑질 폭행의 이명희(부인)이고 오른쪽이 땅콩회항의 조현아(장녀)

전경련의 입장문이 특히 괘씸한 부분은 그 다음에 이어지는 대목이다.

“국민연금이 민간기업의 경영권을 좌지우지하게 된다는 연금사회주의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있는 만큼 보다 신중했어야 하는데 아쉽다.”

‘연금사회주의’라는 말이 현대 경영학의 대부로 추앙받는 피터 드러커가 미국의 주주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을 찬양하면서 주창했던 개념이었다는 원래의 뜻과 맥락을 감안해서 한 말은 아닐 것이다.

그 개념이나 용어가 무슨 뜻이든 상관없이 단지 그 안에 있는 ‘사회주의’라는 네 글자가 ‘빨갱이’를 대체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에 ‘시장’의 우려 운운하면서 연금사회주의라는 단어를 쓴 것이다.

전경련이 보는 ‘시장’은 거기에 참여한 모든 구성원의 권리와 재산이 보호되는 말 그대로의 시장이 아닌 힘 있는 자가 자기 마음대로 행패를 부려도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 ‘저자거리’를 뜻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한편 전경련은 이 입장문의 마지막을 “대한항공이 이번 사태를 빠르게 수습하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길 바란다. 나아가 우리 기업들이 장기안정적 투자를 할 수 있도록 기업경영권이 더 이상 흔들리는 일이 없기를 기대한다”는 말로 장식했다.

전경련의 바람대로 기업경영권이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기사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조양호 회장의 연임에 찬성한 우호지분의 비율은 과반을 훌쩍 넘고 반대의견을 압도적으로 능가하는 64%에 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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