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5일은 영웅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날…나는 브루투스를 기린다
3월 15일은 영웅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날…나는 브루투스를 기린다
  • 곽민수
  • 승인 2019.03.15 12: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주주의자들에게 ‘영웅’은 진지한 경계 대상 되어야

근래에 트위터에는 아예 접속도 하지 않지만, 그곳에서 내가 사용하던 닉네임은 ‘브루투스의 검’이었다.

정치면 정치, 군사면 군사, 모든 면에서 압도적으로 탁월했고, 그 탁월함 때문에 결국 500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공화정 로마*를 파탄에 빠뜨린 ‘위대한 영웅’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암살을 주도했던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를 기리기 위한 닉네임이었다.

(*일반적으로 공화정 로마는 마지막 로마 왕이었던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가 축출당한 기원전 509년부터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 칭호를 받은 기원전 27년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서구권에서 문화작품에 가장 많이 재사용되는 소재로 드라마나 영화로 여러 차례 만들어졌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서구권에서 문화작품에 가장 많이 재사용되는 소재로 드라마나 영화로 여러 차례 만들어졌다.
카이사르는 주화에 처음으로 자신의 흉상을 새긴 인물이기도 하다.
카이사르는 주화에 처음으로 자신의 흉상을 새긴 인물이기도 하다.

20대의 나는 탁월한 영웅 카이사르를 동경했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심취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시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엘리트주의자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엘리트주의자가 ‘뛰어난 영웅적 지도자’에 대해 로망을 갖는 것은 당연했고, 카이사르는 그 ‘뛰어난 영웅적 지도자’의 전형이었다.

그러나 점차 엘리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키워감에 따라, 언젠가부터 내가 더 관심을 갖는 대상은, 영웅이었던 카이사르가 아니라, 그 영웅의 탄생을 저지하고자 하였던 진성 공화주의자 브루투스가 되어 있었다.

브루투스의 검은, 비록 귀족정이라고는 하나 다수의 정치적 주체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평민들에게도 일정부분 정치적 권리를 부여했던 공화정을 위해서 사용되었다.

그는 공화정에 위협이 되는 ‘위대한 영웅’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검을 휘둘렀던 것이다.

이탈리아 화가 빈센조 카무치니(Vincenzo Camuccini)가 그린 ‘카이사르의 죽음’(1798년 작)
이탈리아 화가 빈센조 카무치니(Vincenzo Camuccini)가 그린 ‘카이사르의 죽음’(1798년 작)

이런 브루투스는 민주공화정을 하나의 공리로 받아들이고 있는 나에게  분명히 큰 귀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를 동경하고, 누군가를 신뢰하고,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과정 속에서 자주 잊혀지는 것도 같지만, 민주공화정이 공리가 된 이 시대의 정치적 주체는 다름 아닌 우리들 자신, 즉 시민 개개인이다.

다시 말해, 이 시대에는 내가, 그리고 당신이 스스로 사유하고 실천하는 것이 곧 역사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변혁은 탁월한 영웅에 의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 개개인의 실천을 통해서 하나하나 차근차근 이루어져 나가는 것이다.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이룰 수 있는 영웅 같은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오히려 우리들 민주주의자들에게 영웅은 언제나 진지한 경계의 대상이 되어야만 한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 브루투스의 검에 의해 영웅 카이사르가 암살되었다. 오늘 나는 브루투스를 기린다.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의 대리석 두상. 기원전 30-15년 경. Museo nazionale romano di Palazzo Massimo(국립 로마박물관) 소장.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의 대리석 두상. 기원전 30-15년 경. Museo nazionale romano di Palazzo Massimo(국립 로마박물관) 소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