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몰랐던 독립운동가들⑤ - 김락 지사
세상이 몰랐던 독립운동가들⑤ - 김락 지사
  • 조시현
  • 승인 2019.03.12 19:38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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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시댁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누구보다 치열하고 혹독한 삶을 살았던 여인
남아있는 기록이 없어 잊혀질 뻔 했던 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를 33명이나 배출한 경북 안동의 천전리(내앞마을) 출신의 유일한 여성 독립운동가가 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유일하게 서훈을 받은 독립운동가인 셈이다.

3편에서 다뤘던 월송 김형식 선생의 막내고모 김락 지사이다.

김 지사의 아버지는 김진린(金鎭麟) 선생으로 조선시대 당시 도사를 지냈다고 해 마을에서는 이 집을 도사댁이라고 부른다.

김진린은 7남매를 뒀는데 김대락·김효락·김소락·김정락 4명의 아들과 김우락·김순락·김락 3명의 딸이다.(보통 돌림자를 쓰지 않는 딸들에게도 ‘락(洛)’의 돌림자를 쓴 점은 특이하다. 취재 과정에서 내앞마을의 한 후손은 ‘락(洛)’이라는 글자가 황하 강을 의미하는데, 4형제분의 운명은 이미 태어날 때 그리 정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4형제 모두 만주로 이주해 독립운동을 했기 때문이다.)

김 지사의 큰언니 김우락은 석주 이상룡에게 시집을 가 역시 독립운동을 했다.(남편과 아들, 손자 등 시댁 식구들과 함께 만주로 이주해 가족들을 돌봤다. 비록 김우락 여사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서훈을 받지 못했지만 독립운동을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김락은 독립운동을 하는 친정을 떠나 역시 독립운동을 하는 집안인 안동 예안의 진성 이씨 가문으로 시집을 갔다.

퇴계 이황의 후손인 기암 이중업과 결혼한 김 지사는 독립운동에 뛰어들 수 밖에 없는 운명을 만난 것이다.

● 최다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가문
앞서 전술한 바와 같이 경북 안동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다. 이를 가문 별로 보면 진성 이씨(대부분 퇴계 이황의 후손들이다)가 52명, 두 번째인 의성 김씨에서 47명의 독립유공자가 나왔다.

김 지사는 의성 김씨 가문에서 태어나 진성 이씨로 시집을 왔으니, 그의 주변인 시댁과 친정을 합치면 독립운동가가 100명 가까이나 되는 셈이다.

김 지사는 1896년 시아버지인 향산 이만도가 예안면 의병장을 맡으면서 삶이 크게 변했다.

이후 1910년 8월 망국 때 시아버지는 단식으로 순절했으며, 이후 남편과 아들들은 모두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11년에는 친정 오빠 김대락과 형부 이상룡도 독립군 기지 건설을 위해 만주로 망명한 데 이어 맏아들 이동흠은 1917년 무렵 광복회에 들어가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는 데 힘썼다.

광복회는 1915년 박상진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비밀 결사단체로 1918년 이 단체의 활동이 드러나 이동흠은 체포돼 5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특히 남편인 이중업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19년 파리에서 강화회의가 열리자 영남 지역의 유림들과 힘을 모아 독립청원서(일명 파리장서(長書))를 보냈으나 세계적 주목을 받는 데 실패하였다.

이후 일제의 감시가 심해졌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은 남편은 다시 1921년 중국에 2차 독립청원운동을 위한 작업을 주도하던 중 운명했다.

둘째 아들 이종흠도 1926년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다 체포돼 1년의 옥고를 치렀다.

김 지사는 이 같은 가족의 고통과 비극을 견디지 못해 두 번이나 자결까지 시도했다. 그러나 이후 11년간 계속해서 두 아들의 독립운동에 동참하다 1929년 운명했다.

● 우연히 발견한 기록
이처럼 김 지사의 친정과 시댁의 식구들은 모두 독립운동에 매진했다.

그러나 독립운동에 관한 대부분의 기록은 외부활동을 한 남자들 위주로 돼 있어 김 지사에 대한 기록은 없고 구전으로만 전해졌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김 지사도 57세에 예안의 3·1만세시위에 참가했다가 체포돼 두 눈을 잃는 극심한 고문을 받았다고 한다.

이처럼 일제시대를 겪으며 누구보다 혹독한 삶을 살았지만 김 지사에 대한 남아있는 기록이 없어 자세한 것은 알려진 바가 없다. 사진 하나 남아있지 않은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그러던 중 2000년 여름 안동의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던 김희곤 경북독립운동기념관장(당시 안동대 교수)은 일제 경찰의 기록물인 「고등경찰요사」를 읽다가 ‘안동 양반 이중업의 아들 이동흠이 내 어머니가 3·1운동 때 일제 수비대에 끌려가 두 눈을 잃고 11년 동안 고생하다 돌아가셨으니 일제에 대한 적개심을 결코 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는 기록을 발견해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그 이후 2001년 김락 지사는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김 지사의 친인척 중 정부가 추서한 독립운동가는 무려 25명이나 된다. 그러나 정작 김 지사는 사진 한 장 변변히 남기지 못한 채 여전히 한 남자의 아내로, 며느리로, 어머니로, 누이로 기억되고 있다.

이제라도 우리는 그가 그의 가족과 함께 항일투쟁에 열과 성을 다한 여성독립운동가였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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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사 2019-03-13 15:10:19
김락지사의 사진한장 없다니
슬픈일이네요 ㅠ

Aprilsnow 2019-03-13 08:16:01
고문으로 두 눈을 잃으시다니....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곤지암 2019-03-12 19:54:24
1빠로 들렸다 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