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몰랐던 독립운동가들④ 남자현 지사
세상이 몰랐던 독립운동가들④ 남자현 지사
  • 조시현
  • 승인 2019.03.08 19:19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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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의 안윤옥의 모티브가 된 인물...'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리던 인물

지난 2015년에 개봉한 영화 ‘암살’에서 배우 전지현 씨는 여성 독립운동가로 활약하는 모습을 연기했다.

이 영화의 흥행 성공과 더불어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높아졌다.

당시 전지현 씨가 열연한 안옥윤 역의 모티브가 된 인물로 알려진 남자현 지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각 계층에서 여성 독립운동가 발굴에 나서기도 했다.

그동안 독립운동사에서 조연으로 치부돼온 여성 독립운동가 발굴이 활발해진 것은 이 때부터라고 보면 된다. 특히 지난해 정부가 인정 기준을 완화한 덕분에 작년 한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여성은 총 60명으로 전년도(11명)의 6배 수준으로 늘었다.

정부는 독립유공자 인정 기준에서 ‘수형(옥고) 3개월 이상’이라는 항목을 없애고, 학생의 경우 수형 사실이 없더라도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퇴학 등 징계를 당한 경우 포상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여성은 일기, 회고록, 수기 등 직·간접 자료에서 독립운동 내용이 인정되면 서훈하기로 했다. 당시 가부장제 사회에서 독립투쟁을 했어도 인정받지 못해 문서로 기록될 기회가 적었던 것을 참작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 찾아내는 게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남자현 지사의 경우도 영화화를 통해 그나마 조금 알려진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 자료 부실이 불러온 독립운동가에 대한 엉터리 고증
2015년 영화 ‘암살’의 흥행 이후 남자현 지사에 대한 관심은 커졌고 이에 지자체는 독립운동가 예우에 나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은 탓에 남 지사에 대한 고증은 엉터리 논란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남 지사에 대한 예우는 다시 잊혀지고 있다.

현재 인터넷 포털에 ‘남자현’을 검색하면 대부분 경북 영양 출생으로 나온다. 더욱이 경북 영양군은 지난 1999년에 생가를 복원해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남 지사의 후손은 경북 안동시 일직면 출신이라고 밝히고 있다. 시댁으로 알려진 안동시 일직면 귀미리의 의성 김씨 후손들도 남 지사는 송리에서 태어나 성장한 뒤 귀미리의 김영주 선생에게 시집온 것이 맞다고 말했다.  

출생지부터 정보가 제대로 돼 있지 않은 남 지사는 현재 유해조차 행방을 찾지 못해 국내에는 허묘만 조성돼 있다.

● 남자현 지사의 활동
남 지사는 1872년 유학자 남정한의 딸로 태어나 의성 김씨 집안의 김영주와 결혼했으나, 김영주는 1895년 을미사변 때 의병에 가담했다가 전사했다.

이후 평범한 전업주부로 아들을 키우다가 1919년 3.1 운동 이후 47세의 나이로 아들 가족과 함께 만주로 망명해서 김동삼의 서로군정서에 참여해 독립운동 세력의 지원 업무를 담당했다.

1926년엔 사이토 마코토 총독의 암살을 위해 서울에 잠입했으나, 거사 직전에 송학선 의사가 먼저 의거를 일으키는 바람에 경계가 강화돼 다시 만주로 돌아왔다.

1933년 주만주국 일본 대사 무토 노부요시의 암살을 기획해 거사 일이 되어 얼굴에 상처를 내고 거지로 분장하여 잠입했으나, 삼엄한 경계 속에 불심 검문에 걸려서 체포됐다.

일설에 의하면 체포되었을 당시 옷 속에 전사한 남편이 입었던 군복을 입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옥중에서 단식투쟁을 벌이다가 병보석으로 석방된 이후 닷새 만에 사망해 유해는 하얼빈에 있는 남강 외국인 묘지에 매장됐다. 이후 후손들이 1998년에 유해를 찾으려고 했으나, 이미 남강 외국인 묘지 자체가 사라진 뒤였다.

유해가 어디로 갔는지 행방이 묘연한 상태로 발굴조사를 도와달라는 후손들의 요청이 있지만 현재 후속대책은 없는 상태다.

한편 당시 남 지사는 죽으면서 아들에게 중국돈 248원 80전을 주면서, 200원은 독립을 하면 독립정부에 축하금으로 전달하라고 유언을 남겼다. 광복 다음 해인 1946년, 첫 3.1운동 기념식에서 남 지사가 남긴 돈 200원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에게 정식으로 전달됐다고 한다.

또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당시 독립운동 세력의 분열을 비판하기 위해, 그리고 한국의 독립을 위해 두 번이나 단지(손가락을 절단)한 것으로도 유명해서 붙은 별명이 ‘여자 안중근’이다. 그리고 청산리 대첩의 부상자들을 치료한 것을 계기로 붙은 별명이 ‘만주 독립군의 어머니’이다.

● 슬픈 가족사
이처럼 남 지사의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은 국내에 남아 있는 가족들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또 다른 이유는 남 지사의 인척 중에 남장(1900~?)이라는 독립운동가가 있다. 이 분은 공산당 계열에 서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월북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남장 선생은 1900년 안동에서 태어나 1925년 2월 안동에서 개최된 경북청년대회의 준비위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했으며 같은 해 8월에는 안동 지역 8개 청년회를 통합한 안동청년동맹 결성에 참여해 집행위원으로 선출됐다.

이후 고려공산청년회와 조선공산당, 신간회 등에 가입하여 사회주의 사상과 항일 정신을 전파하는 활동을 펼치다가 체포돼 징역 10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50년 6.25 전쟁 중 월북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 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2005년에 대통령표창이 추서됐다.

그러나 남 지사의 집안 역시 월북한 친척이 있다는 이유로 지난 세월 침묵을 강요받은 채 살아왔다.

독립운동으로 집안이 풍비박산나면서 남정한 집안은 직계 후손이 끊겼고 지손인 남재근 씨만이 생존해 있는 상황이다. 남자현 지사는 남재근 씨에게 재종조모가 된다.  

남재근 씨는 “그나마 제가 6.25 참전유공자라서 조금은 편하게 살아올 수 있었다”며 “지난 세월동안 집안은 여러모로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남자현 지사라는 어떻게 보면 역사적 인물인데, 그런 인물에 대한 기초적 정보들이 언론은 물론 학술지조차도 제대로 돼 있지 않다”며 “그리고 유해찾는 일을 이제라도 국가가 나서서 해 준다고 하니 하늘에 가서 할머니를 뵐 면목이 생긴 것 같다”고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 취재 뒷얘기
후손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남자현 지사에게 언니가 한 분 계셨는데, 경북 영양의 한양 조씨 집안(시인 조지훈의 집안)으로 시집을 가서 낳은 아들이 바로 조범석 씨라는 것이다.

조범석 씨의 아들인 조운해 씨(지난1일 작고)는 바로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원장을 지낸,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맏딸 이인희 씨의 남편이다. 즉 남자현의 언니는 삼성 ‘왕회장’ 맏딸의 시할머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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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의망치 2019-03-10 09:51:50
좋은 기사 잘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곤지암 2019-03-10 00:09:29
들렷다 가요~~~~~~~~~~

Aufhaus 2019-03-09 20:14:25
좋은 심층 취재 기사 감사합니다.. 남자현 의사도 잘 기억해두어야겠어요....

어우러기 2019-03-09 13:39:54
일생을 남편부터 시작해서 가족과 본인의 온 육체와 마음을 받쳐 독립을 위해 헌신한 분에게는 그에 걸맞는 명예가 반드시 주어져야 합니다.

지금까지 매국친일파 기득권 세력들에 의해 그 공의 일부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나 가슴 아프고 애통하네요. 거기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기록도 부실해서 그 노고를 다 알기 어렵다니 어찌 마음이 편할 수 있겠습니까? 정부에서 조금 더 노력해서 기록도 찾고 구전이라도 발굴해서 여성독립운동가들의 명예를 보다 소상히 밝힐 수 있도록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황수정 2019-03-08 19:58:34
허묘라니.....너무 가슴이 아프네요 ㅜㅜㅜ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