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함께 싸운 이들에 대한 배신…김지하를 떠올렸다
김소연, 함께 싸운 이들에 대한 배신…김지하를 떠올렸다
  • 박종현
  • 승인 2019.03.06 13: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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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과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것은 다르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것과는 다른 ‘변절’의 서막
바른미래당은 지난 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김소연 대전시의원 입당식을 개최했다.
바른미래당은 지난 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김소연 대전시의원 입당식을 개최했다.

김소연 대전시의원이 바미당에 입당을 하고, 그 사유로 민주당의 정의롭지 못함을 꼬집어 말했다.

김소연 시의원은 박범계 의원과 서로 고소를 하며 정치적 원수가 되었고 그로 인해서 민주당내 인사들에게 뭇매를 맞으면서 자신의 입지가 좁아지다 못해 없어지자 극단의 조치를 한 것이다.

김 시의원은 그동안 자신을 지켜주고 함께 싸워줬던 문파와 자신을 지지해 주었던 대전지역 지지자들을 포함해 전국에서 그녀의 어려움을 공감해 주었던 분들에 대한 배신을 한 사람으로 낙인찍혀 버렸다.

그녀에게 선택지가 꼭 바미당이어야 했을까?

주정뱅이거나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가 싫어서 집을 나간 자식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어도 그런 아버지가 싫다고 식구들 전체를 남으로 돌리는 행위는 정당화 될 수 없다.

김소연 시의원이 처한 상황에서 상식적이지 않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에 대해 사유를 찾는 일에 충분히 고려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무협영화에서 절대고수인 악당과 싸우다가 패하자 사술을 부리는 사파무공이라도 익혀서 절대고수를 이기겠다는 승리를 향한 탐욕에 눈이 먼 주인공과도 같다.

김소연 시의원의 바미당 입당은 결국 박범계 의원이 김 시의원을 고소한 것에 명분을 제공한 일이며 김 시의원을 지지하고 함께 싸워주던 사람들이 손가락질 당하는 일을 야기한 장본인이 된 것이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이고 그것 때문에 욕을 먹는 것이다. 그녀는 무소속으로 남았어야했다. 무소속으로 버티며 더 큰 그림을 그렸어야했다.

지난해 12월 6일 뉴비씨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김소연 시의원 인터뷰 화면.
지난해 12월 6일 뉴비씨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김소연 시의원 인터뷰 화면.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하겠다고 말씀하신 노무현대통령을 존경한다고 말하며 노무현대통령의 뜻을 이해하지는 못한 것이다.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지키기 위해 싸웠어야했다.

애초에 싸움의 발단이 민주당내 정치놀음으로 돈이 오가는 것을 지적하며 시작된 싸움이기에 그녀에게 뚜렷한 명분은 있었다.

방법이 서툴지언정 확실한 명분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데 바미당 입당은 명분을 버리더라도 싸움에서 이기겠다는 노선으로 갈아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녀의 선택이 무조건적인 흑화로 보기엔 아쉬움이 많다.

여기서 과거 김지하 시인을 감히 비교하려한다. 김지하 시인은 오적필화사건 등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었을 만큼 운동권의 큰 축이었다.

그는 사형선고를 받고 옥살이를 하며 당당하게 자신의 신념을 지켜왔었다. 그러다 전세계적인 구명활동으로 목숨을 건지고 풀려나자 자신이 수감되어있을 때 자신의 동지들이 자신이 사형당하기를 바랐던 것을 알게 되었고 크나큰 배신감과 충격으로 신념을 버리고 정체성을 바꿨다. 당시 운동권의 중요한 축이었던 종교에 대한 배신감까지도 커서 독실한 천주교신자에서 증산교로 개종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너무나 유명한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칼럼을 써서 소위 운동권과 진보진영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노태우정권 당시 말도 안 되는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으로 대표되는 것처럼 수많은 대학생들이 생명을 스스로 버려가며 저항하던 것을 향해 “의미 없는 짓을 멈추라”는 김지하 시인의 경고였던 것이다.

이 경고는 진보진영에 거대한 반향을 일으키며 명분을 앗아가는 일이었고 김지하가 변절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었다. 그가 2012년 대선 때 박근혜를 지지하는 어이없는 일까지도 했으니 분명한 변절이 맞다.

그러나 그의 인생을 앞서 말한 대로 살펴봤을 때 그가 왜 그런 칼럼을 썼었는가에 대한 이유는 감정적으로는 이해가 간다. 그리고 김소연 시의원의 경우처럼 이해가 갈 뿐, 명분이 없는 분명히 잘못된 선택이었다.

김지하 시인에게 당시 동지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로부터 받았을 배신감은 감히 상상이 불가하다. 그러나 그 배신감의 표출로 진보진영 전체를 악의 집단으로 규정하고 근원적으로 부정한 집단의 품으로 간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서가 안 된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있고난 후 김지하는 박근혜의 연임을 주장했을 만큼 정체성이 완전히 망가져있었다. 부정을 위한 부정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모습이었다.

부디 김소연 시의원이 그 정도까지 흑화 하지만은 않기를 바란다.

아직 젊고 패기 넘치는 신념이 있을 때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길이라는 것을 깨닫길 바라고 돌아올 수 있을 때 돌아왔으면 한다. 물론 이번 행동에 대한 책임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은 두 번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쉽게 용서 받을 수도 없는 일이다.

부디 이 정도까지 흑화하지만은 않기를 바란다.
부디 이 정도까지 흑화하지만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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