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와라 가문 1편 - 일본에서 율령제의 성립
후지와라 가문 1편 - 일본에서 율령제의 성립
  • 정재웅
  • 승인 2019.02.22 07: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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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제에서 권력구조의 문제 ⑧ 사실상 무의미한 ‘관직제도’가 가장 오래 유지된 배경

경제학 박사이자 페이스북에서는 ‘역사 덕후’로 알려진 정재웅 님이 ‘군주제에서 권력 구조의 문제’라는 주제로 연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매주 금요일 업로드 되니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동북아시아 정치제도에서 일본은 상당히 특이한 경우다.

사실 근대 이전 동북아시아 3국의 정치제도는 모두 중국의 제도를 그 근간으로 하되 자신들의 형편에 맞게 바꾸었기 때문에 모두 공통적인 측면과 이질적인 측면을 지니지만, 이러한 모습 중에서도 특히 일본은 이질적인 측면이 두드러진다.

그 이유는 일본이 가장 오랫동안 율령제 관직을 유지한 동시에 그 율령제 관직이 의미가 없는 정치제도를 만들었다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율령제란 무엇인가.

자료=교학사 교과서 『동아시아사』 2장 동아시아 세계의 성립
자료=교학사 교과서 『동아시아사』 2장 동아시아 세계의 성립

율령제는 중국 수, 당 시대에 완성된 국가적 성문법 체계다. 보통 율령격식(律令格式)으로 지칭하는데, 여기서 율(律)은 형법, 령(令)은 공사 제반의 제도에 관한 규정, 격(格)은 율령을 수정 증보한 명령, 곧 칙령(勅令)의 편집, 식(式)은 율령의 시행 세칙이다.

한국사에서는 한반도에서 고대국가의 성립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율령제의 도입을 언급한다. 

즉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식 율령제의 도입은 국가로서 통치 제도가 확립됨을 의미한다. 실제로 한반도 고대국가의 경우도 율령제를 도입하며 관등과 관복을 제정하는 등 통치 제도가 확립되었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이 율령제는 우리 생각 이상으로 민간까지 스며들었는데, 중국의 도교, 한국의 무속, 일본의 음양도에 나오는 주문인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 율령과 같이 서둘러 행하라)”를 통해서도 드러나는데, 이는 천상과 저승의 구조가 마치 지상처럼 율령제에 근간한 관료제로 이루어졌다는 민간의 인식을 보여주는 증거다.

 

추억의 퇴마영화 캐릭터 ‘영환도사’가 사용한 강시 부적에도 있는 문구가 “급급여율령”이다.
추억의 퇴마영화 캐릭터 ‘영환도사’가 사용한 강시 부적에도 “급급여율령”이라는 문구가 있다.

물론 수, 당 시기에 이렇게 완성된 율령격식은 그 엄격한 형식을 그대로 고수하지 않고, 이후 왕조의 변천에 따라 형편에 맞게 변경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어찌되었든 동북아시아 통치 체제의 기본 형태는 율령제고, 이 율령제는 상술한 것처럼 최고 통치권자로서 황제 혹은 왕을 정점으로 하는 관료제로 이루어져 있다.

다시 말하자면 율령제는 국가를 통치하는 최고의 권한이 군주에게 있음을 전제로 확립된 제도다. 과거를 통해 등용된 관료는 군주의 신하이지 수족으로 어디까지나 군주의 국가 통치를 보조하는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종종 신하의 권력이 강해져서 군주를 좌지우지하거나 더 나아가 역성혁명을 일으키는 경우도 발생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신하의 권력은 군주의 신임에서 나왔고, 그렇기에 강대한 신권을 두고 벌어지는 군주제에서 권력구조의 문제가 끊임없이 불거졌음을 우리는 이미 살펴보았다.

하지만 일본은 상당히 특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 정치제도의 특이성을 살펴보기에 앞서 율령제가 도입된 배경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율령제의 도입부터 군주제에서 권력구조의 문제가 연관되기 때문이다.

역사서를 통해 교차검증이 가능한 일본 최초의 국가는 야마토 정권이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등에 야마타이국이라는 이명으로 그 존재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 창세신화의 주신 아마테라스가 손자인 니니기미코토에게 볍씨와 삼종신기를 주며 지상으로 내려가라고 명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그림. 일본의 천황가문은 니니기미코토의 자손이라는 컨셉이라고 한다.
일본 창세신화의 주신 아마테라스가 손자인 니니기미코토에게 볍씨와 삼종신기를 주며 지상으로 내려가라고 명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그림. 일본의 천황가문은 니니기미코토의 자손이라는 컨셉이라고 한다.

사실 야마토 정권은 일본서기 등에 의하면 아마테라스 오미카미(アマテラス / 天照大神)의 손자인 니니기노미코토의 천손강림 설화와 연관되기에 실제 고대국가보다는 부족국가의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야마토 정권은 이후 아스카-나라 시대로 연결되는데, 이 아스카-나라 시기부터 일본이 본격적인 고대국가의 틀을 형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동북아시아에서 고대국가의 형성을 불교의 수용과 율령제의 도입으로 판별하는데, 이 둘 모두 이 시기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1958년 발행된 1만엔권 지폐. 이 지폐에 새겨진 쇼토쿠 태자는 일본 국민들 사이에 ‘지폐의 얼굴’로 인식되어있다고 한다. 
1958년 발행된 1만엔권 지폐. 이 지폐에 새겨진 쇼토쿠 태자는 일본 국민들 사이에 ‘지폐의 얼굴’로 인식되어있다고 한다. 

불교의 수용은 쇼토쿠 태자(聖徳太子)에 의해 주도적으로 이루어진다. 쇼토쿠 태자는 요메이 덴노의 차남으로 살아있을 때는 도요사토미미 미코(豊聡耳 皇子)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쇼토쿠 태자라는 이름은 사후에 추증된 이름이다.

이 쇼토쿠 태자는 고모인 스이코 덴노의 섭정으로 집권하게 되는데, 이에는 스이코 덴노의 힘이 아니라 덴노의 외숙부이자 쇼토쿠 태자의 외종조부인, 당대의 권신 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의 힘이 작용했다.

소가씨의 지원을 등에 업은 쇼토쿠 태자는 불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했으며, 호족의 연합에 불과한 아스카 정권의 중앙집권을 강화하기 위해 17조의 헌법과 관위 12계를 제정했다.

쇼토쿠 태자가 제정한 17조 헌법과 12계 관위는 이후 645년의 다이카 개신(大化改新) 및 701년의 다이호 율령(大宝律令)을 거쳐 완벽한 율령제로 확립된다.

 

자료=교학사 교과서 『동아시아사』 2장 동아시아 세계의 성립
자료=교학사 교과서 『동아시아사』 2장 동아시아 세계의 성립

이상이 일본에서 율령제 확립의 큰 줄기다.

일본의 율령제는,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작부터 군주제에서 권력구조의 문제가 연관된다.

야마토 정권과 그에서 이어지는 아스카 정권이 호족 연합 정권 성격이 강하다는 사실은 위에서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호족 연합 정권인 아스카 정권에서도 특히 강대한 권력을 휘둘렀던 가문이 쇼토쿠 태자의 외가인 소가 가문이다.

소가 가문은 소가노 우마코, 소가노 에미시, 소가노 이루카 삼대에 걸쳐 강대한 권세를 누리는데, 소가노 우마코는 스슌 덴노를 옹립했다가 암살시키기도 하는 등 신하로서 누릴 수 있는 최대의 권세를 누렸다.

소가노 이루카는 쇼토쿠 태자의 왕자들을 멸하는가 하면 새로운 덴노를 옹립하려는 음모를 꾸미기도 했다.

이에 나중에 덴지 덴노(天智 天皇)가 되는 나카노호오에(中大兄)가 나카토미노 카마코노무라지(中臣鎌子連)와 연합하여 645년 6월에 소가씨 일족을 숙청하니 이게 을사의 변(乙巳の変)이며, 이 사건을 통해 권력을 잡은 나카노호에 왕자가 추진한 왕권 강화 정책이 상술한 다이카 개신이다.

 

‘을사의 변’ 사건을 묘사한 에도시대 화첩
‘을사의 변’ 사건을 묘사한 에도시대 화첩

이 을사의 변에서 큰 공을 세운 나카토미노 카마코노무라지는 덴지 덴노에게 중용되었고, 669년 그가 죽자 덴지 덴노는 후지와라(藤原)라는 성씨를 하사하고 추증하니, 이가 바로 후지와라노 가마타리(藤原鎌足)다.

소가 가문을 능가하는 권위와 권력으로 이후 일본을 좌지우지하는 가문이 드디어 그 이름을 드러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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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숙 2019-03-15 12:12:17
잘 읽었습니다.
단지 싫어서 일본의 역사를 외면했는데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이들어 역사.세계사.정치.경제에
뉴비씨가 관심갖게 해주네요.
역사.경제.정치 이런것들이
우리의 삶과 밀접 하다는 것을 왜 나이들어 알게 되는지...
감사합니다.
관심갖고 계속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