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동 할머니의 죽음 앞에…“너희들의 피는 무슨 색이냐?”
김복동 할머니의 죽음 앞에…“너희들의 피는 무슨 색이냐?”
  • 장정현(문파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2.12 0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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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쭙잖은 현실주의, 한일공조를 말하는 이들에게 고한다.
▲ 문재인 대통령이 1월 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중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를 병문안 하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2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특실에 마련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故김복동 할머니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설 연휴를 앞두고 꽃다운 시절을 일제 군국주의에 짓밟히고, 아흔이 넘도록 종군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성폭력 문제 등 각종 인권 문제에 앞장서 투쟁하시던 인권운동가 김복동 할머니께서 별세하셨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께서는 직접 빈소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김복동 할머니께서 별세하신 결과 남은 위안부 생존 할머니들은 고작 23분 남았고, 일본 아베 정권은 그저 그분들 명이 다해 당사자가 사라지면 골치 아픈 위안부 문제로부터 자연스럽게 벗어날 거라 계산하고 있는 게 뻔히 보이는 판국이다.

이런 판국에 평소 국적이 어딘지 헷갈리는 행보를 반복해온 결과 최근 ‘나베 신조’라는 별칭을 얻은 자한당 원내대표께서는 고인께 커다란 상처를 새긴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관계로 책임을 피할 수 없는데다가 은근슬쩍 옹호한 업보 때문에 조문 중 그럭저럭 눈치를 잘 살폈음에도 결국 빈소에서 조화가 ‘팽’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김 할머니의 별세 직전에 있었던 일본의 ‘자위대 초계기 저공비행 위협사건’과 그에 대한 나 원내대표의 자민당 한국지부장 같은 대응을 생각하면 적절한 인과응보라 할 수 있다.

해당 사건의 본질이 누가 봐도 뻔히 보이는 아베의 내부 단속 및 지지율 제고를 위한 억지춘향식 시비였고, 안 그래도 오래전부터 자위대 창립행사 참석 등으로 민족 정체성을 의심받던 처지인데도 일본 입장을 옹호했으니 그 용감함만큼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사실 나경원 대표는 공당의 원내대표로서 그나마 눈치껏 절제한 것이고, 대한민국 곳곳에서는 나 대표보다 훨씬 노골적으로 한일관계 악화를 우려하며 ‘한일공조’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있다. 게다가 거기까지만 하면 다행이고, 개중에는 아예 한일관계 파탄의 1차 책임을 문프 탓으로 돌리는 이마저 있다.

이들의 논지는 대략 이러하다. 전통적 수구 반북(공)주의자들은 북한 제재를 위해, 그리고 그보단 조금은 낫다 싶은, 합리적 현실주의자를 자처하는 부류는 중국 패권을 견제하기 위해 한미일 삼각 공조가 필요하니 일본과도 오랜 원한을 잊고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얼마 남지 않은 위안부 생존 할머니들의 아픔은 ‘적절히’ 무시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할머니들을 달래는 역할도 우리 정부 몫이다. 이러한 비인도적, 반인권적 행동을 냉엄한 국제정세 아래서 안보와 국익이라는 더 커다란 목적을 위해 불가피하다며 정당화한다.

그러면서 이런 쿨내 풀풀 나는 주장을 ‘현실주의’의 이름으로 미화하는 어설픈 자칭 현실주의자들은 현 정권의 대일 외교 노선이 그저 반일정서에 사로잡힌 ‘감정적’ 외교 정책이라 비판한다.

그러나 단언하는데 ‘자뻑’에 취한 쓸데없는 걱정이며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필자는 정치 외교를 전공했다. 학부 시절에는 전쟁사 등에 관심 있는 밀리터리매니아 기질이 있어서 국제정치 분야에 관심이 컸으나, 역설적이게도 막상 군 복무 하다 보니 보다 근본적 문제에 관심이 기울어 대학원에서는 정치사상을 전공했다.

그래서 국제정치 쪽은 조예가 얕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이른바 ‘현실주의’에 대해서는 그럭저럭 읊을 수 있다. 이를테면 한스 J 모겐소의 고전적 현실주의, 케네스 월츠의 방어적 신현실주의, 존 미어샤이머의 공격적 현실주의 등등.

왜냐하면 국제정치학은 탄생부터 현실주의로 시작했으며, 과장 조금 섞어 말하자면 현실주의와 현실주의가 아닌 것들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현실주의가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령 현실주의에 반하는 입장을 가진 학자조차 그것을 반박하기 위해서라도 앞서 열거한 현실주의 대가들의 주요 논문과 저서 정도는 줄줄 읊게 된다.

국제관계학 비전공자인 필자가 이럴진대 문프께 외교정책을 조언하는 전문가 그룹이나 외교·안보 참모 및 관료들이 어떨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예를 들어 툭하면 조선일보가 소환해 말꼬투리 잡고 시비 거는 문정인 특보 정도의 ‘고수’라면, 어느 날 갑자기 예고 없이 찾아가 요청해도 현실주의 강의 정도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즉석에서 해치울 거라고 장담한다. 다시 말해 그들이 주장하는 얄팍한 계산 정도는 정부 고위직 관계자라면 다들 하고 있다는 말이다.

다음으로 그들이 ‘한일공조’의 명분이라 말하는 북·중 견제 필요성을 보자면, 지금 와서 반북 견제책 따위는 시대착오에 불과하니 논평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해 생략하고 자칭 합리적 현실주의자들이 걱정하는 중국 패권 견제책에 집중하자.

일단 한미관계가 역대급으로 좋다. 거기에 현 정부 대표적 외교정책, 예를 들면 베트남을 축으로 한 신남방정책이 그저 경제 목적만으로 추진하는 거라 생각하면 순진한 거 아닌가?

그 밖에도 김정은과 북한을 사상 첫 미북 정상회담으로 이끌고 미사일 탄두 중량 해제 및 핵잠 도입 등 알아서 중국견제 잘하고 계신다.

그런데도 립서비스로 중국몽 좀 띄워졌기로서니 나무위키 따위에다 친중이니 어쩌니 잉여력 충만한 혹세무민 하는 꼴을 보면 비웃음만 나올 뿐이다.

▲ “나무위키는 누구나 기여할 수 있는 위키입니다.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된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외교 전략의 기초는 T.루스벨트 말마따나 미소 지으면서 뒤로는 커다란 몽둥이를 챙기는, 말하자면 소리장도와 면종복배인 것을.

그러니 부디 좀 문프를 대내외 숱한 반대를 무릅쓰고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가했다가 동북아 왕따를 자초한 503 수준으로 보지 말란 말이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강조할 점은 제발 좀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란 말이다.

그래서 필자가 뉴비씨에 최초로 기고한 칼럼에서 진보좌파들에게 이념과 노선 이전에 우선 인간의 얼굴부터 갖추라 한 일갈을 똑같이 반복한다.

현실주의고 나발이고 일단은 인간의 얼굴부터 갖추고 떠들라고.

김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어설픈 현실주의를 설파하는 이들이여, 너희들이 그분의 자식이었어도 감히 그런 말 할 텐가?

그럼에도 여전히 주장을 굽히지 않겠다면 이렇게 되물을 수밖에 없다. 너희들의 피는 무슨 색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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