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독립, 신성불가침 아냐…촛불 대신 석궁 들기 원하나
사법부 독립, 신성불가침 아냐…촛불 대신 석궁 들기 원하나
  • 장정현(문파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2.05 23:4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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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은 현재의 사법부를 ‘정상 상태’가 아니라 판단하고 있다
▲ 지난 2일 김경수 지사 부당 구속과 사법농단 사태에 분노하는 사법농단세력 규탄 및 청산 촉구 국민연대는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집회를 열고 김 지사 1심 판결의 부당함을 호소했다.

▲ 김경수 경남도지사 1심 선고 후 법정구속을 비판하며 이들 재판부의 사퇴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이 진행중이다. 청원 바로가기

물증은 물론 제대로 된 ‘스모킹건’ 조차 하나 없이 내려진 유죄 선고도 모자라 대뜸 도정 평판이 좋은 현직 지사를 법정구속한 ‘김경수 재판’ 이후, 관련 판사를 해임하라는 국민청원이 압도적 지지를 받아 빠르게 20만을 돌파했고, 설 연휴를 앞둔 추운 날씨에도 사법농단세력 척결을 요구하는 집회가 법원 앞에서 열렸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움직임에 대해 “부적절하다”고 성토하는 여러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자한당의 조건반사적 히스테릭한 반응이야 말할 것도 없고(애초에 자한당 만큼은 사법부 독립의 독자도 말할 자격이 없지만), 비슷한 일에 으레 달라붙곤 했던 ‘떼법’이 어쩌고 ‘국민 정서법에 휘둘리면 안 된다’느니 하는 주장들은 이제 와선 식상한 레퍼토리의 반복에 불과하다.

언제부터인지 민중이 직접 나서서 이른바 ‘광장의 정치’를 실천하려 하면 매번 따라붙곤 하던 말들이기 때문이다.

시초를 따지기 어렵지만, 필자의 기억으로는 아마도 노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시위부터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랬던 과거 패턴을 보아 곧 ‘대중독재’ 운운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까?

그러면서 늘 나오는 게 법관에 대한 비판이 사법 독립성 침해라면서, 사법부의 독립이 마치 신성불가침한 성역인 양 전제하고 있다. 그나마 과거보다 나아진 점이라면 요즘은 이런 주장을 하는 지식인, 언론 등이 ‘익명’인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역사가 조금은 진보했달까?

이전 칼럼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87년 제정된 6공화국 헌법은 사법부의 애매하고 어설픈 독립성과 민주적 정당성, 그리고 그에 자연스레 수반되는 모호한 책임 소지와 실질적 견제가 미흡한 한계가 있다.(대법원과 동급인 헌법재판소도 마찬가지다.)

그간 대통령 탄핵은 두 번 발의되어 모두 가결되었고, 검찰 쪽으로도 가결된 적은 없지만 총장과 검사에 대한 탄핵안이 여러번 발의되었으나 법관 탄핵은 신영철 대법관 단 1회에 그치며 그나마도 폐기되었다.

엄연히 법적으로 보장된, 사법권을 견제하라고 만들어 둔 제도임에도 탄핵의 ‘탄’ 자만 꺼내도 그놈의 ‘사법부 독립 침해’ 운운하는 헛소리가 매번 따라붙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사법권이 그렇듯 하늘에서 ‘뚝’ 떨어진, 절대 침해받지 아니할 신성한 권리인가?

그렇지 않다는 점은 우리 일반 시민들보다 그들 법관이 더 잘 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은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주권재민’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그런데 사법부 최고 권력인 대법원장 및 대법원장의 인사권에 의해 임명된 판사들은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는, 대표적인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그래서 최소한의 민주적 정당성을 갖추기 위해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의 동의를 받는 절차를 거치는 것이다.

그럼에도 법조인 중에서는 이 최우선 원칙을 무시하고 무작정 사법부 독립을 부르짖는 이들이 많다. 예를 들면 참여정부 집권 초 있었던 ‘검사와의 대화’처럼.

필자는 당시 대학생이었는데 생방송으로 보면서 검사들이 사법고시 이전에 고등학교 수준의 정치, 사회, 헌법 공부부터 다시 해야 한다 생각했다. 그때로부터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많은 법조인들의 인식은 별반 나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굳이 고등학교 사회 교과를 예시한 이유는 ‘하늘에서 떨어진 침해받지 아니할 권리’의 비유적 표현에서 연상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분이라면 이미 ‘왕권신수설’을 머릿속에 떠올렸을 것이다. 당시 왕실과 이데올로그들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왕권을 증명하기 위해 성서에 기록된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로부터 왕실로 이어지는 족보마저 편찬했다.

현대인의 눈에는 우스꽝스럽게 비치겠지만 당사자들로서는 무척이나 진지하게 말이다.

그러다 홉스, 로크, 루소 등의 사상가들이 그것을 원천 부정하고 주권의 근원이 인민들 사이에 맺어진 ‘사회계약’이라 주장했다.

현실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사회계약을 ‘진짜로’ 실행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디까지나 암묵적으로 ‘그랬다 치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보는 가상개념이다.

그렇다 해도 신이라는 초월적으로 인간에서 벗어난 요소를 배제했다는 점과 천상에서 부여받는 하향식이 아닌 인민들로부터 구성되는 상향식이라는 점에서 사회계약론은 단연 혁명적 사상이며 이로써 정치적으로 진정한 근대가 시작된다.

그 때문에 최초로 리바이어던에서 사회계약론을 제시한 홉스는 분명 절대왕권을 주장했는데도 왕당파들로부터 박해받게 된다. 다만 왕권신수설조차 폭정(tyranny)마저 정당화하지는 않았음을 일러둔다. 그래서 왕권신수설에서도 ‘저항권’의 개념이 도출된다. 
 
이어지는 논의를 진행하기 위해 소개할 독일 출신 법(철)학자이자 정치 사상가가 있다.

그의 이론은 나치를 정당화했고 자신도 반유대주의자로서 나치에 부역했기에 주의해서 걸러들어야 할 필요가 있으나 그런데도 정치와 법의 본질을 꿰뚫는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줘 후대의 많은 학자에게 영감을 주었다.(필자도 마찬가지인지라 앞으로도 종종 인용할 일이 있을 것이다.) 그의 이름은 칼 슈미트라 한다.

슈미트는 자신의 대표 저서 중 하나인 『정치 신학』에서 이르길 주권자의 정의를 ‘예외상황을 결정하는 자’로 규정했다.

이 역시 날카로운 통찰이다. 평상시 법질서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에서는 진정 강력한 권력, 주권자의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모두가 제각기 법과 질서에 따라 주어진 권한을 행사하는 것뿐이다. 심지어 대통령조차도.

그러나 거기서 누군가가 ‘비상상황’을 선포하고, 기존의 법질서를 일시적으로나마 무효로 하거나 대체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진정한 주권자라 부를 수밖에. 마치 인간의 진실된 모습은 극한상황에서야 비로소 드러난다는 말처럼.(슈미트의 법철학은 그래서 ‘법 결단주의’라 불리며, 이를 밀어붙여 총통에게 그처럼 법을 좌지우지할 권력이 있다 주장하다 2차대전 후 전범으로 심판받았다.)

그런데 우리 헌법에서 정의하는 대로 ‘주권자’는 국민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국민 다수의 총의가 집약된 일반의지가 곧 주권이다.

그러니 묻는다. 국민들이 사법부의 현 상황을 정상 상태라 판단하고 있는가?

김경수 재판 이후 순식간에 20만을 돌파한 국민청원, 추위와 설 연휴를 앞두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천 명이 운집한 사법 농단 규탄 집회, 약 70% 가량의 절대다수가 찬성한 양승태 구속 및 사법농단연루 의혹 판사 탄핵안 모두가 현 상황을 국민들이 ‘예외상황’으로 판단하고 있음을, 그저 김경수 지사의 열성 지지자들에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재판에 앞서 ‘증거’의 유무가 아니라 ‘법관이 누구냐’를 걱정해야 하는 극도의 사법 불신 상황, 이게 바로 예외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이 예외상황에서 김경수라는 개인은 정치인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법정구속이라는 형태로 박탈당했다. 말했듯 아무런 물증이나 스모킹건 없이 말이다.

당연히 앞으로도 증거법정주의, 무죄 추정원칙 따위는 법관의 재량에 따라 무시할 수 있다는 신호가 나왔고 이에 수많은 시민들이 위협을 느꼈다. 근현대 자유주의의 토대를 쌓은 사상가 존 로크에 의하면, 이런 경우 시민이 자연인으로서 갖는 ‘저항권’의 행사가 정당화된다. 
 
물론 가급적 사태가 원만하게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서 주권자 국민이 현 상황을 예외상황으로 인식했음에도 김경수 재판 상고심과 대법원장의 차기 법관 인사, 검찰의 사법 농단 수사 진척 상황 등 아직 남은 제도적 장치가 있기에 현재로서는 비판과 집회에 그칠 뿐이다.

마치 지난 박근혜 탄핵 선고 전, 문프께서 만약 탄핵이 기각되면 어찌할 거냐는 물음에 거기서부터는 자신을 포함한 정치인의 손에서 떠나는 것이며 그다음은 시민들 하기 나름이라는, 저항권 발동을 암시하는 답변을 하셨던 것과도 같다.(역시 문프께서는 당시에도 사태의 본질을 꿰뚫고 계셨다.)

그러니 상기하라. 대통령의 계엄령조차 전쟁 같은 외환이나 내란에 대한 것이지, 헌정 기본질서 그 자체에 대한 예외상황을 규정할 권리는 오직 주권자 국민에게 있음을.

결국 국민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권력 따위는 아무것도 없으며 그런 주장 자체가 헌정질서를 부인하는 국기문란 행위다.

따라서 사법권 독립은 행정권으로부터의 독립으로 한정 해석해야 하며, 게다가 이를 어긴 것은 사법부 자신이다.(국회가 탄핵권을 보유한 데서 드러나듯,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이기도 하므로 입법권은 별개로 생각해야 한다.)

어디 양승태가 과거 군사통치 시절처럼 독재자의 강권에 못 이겨 마지못해 그리했나?

때문에 얼마 전 김명수 대법원장이 밝힌 현 상황에 대한 입장은 안이하다. 내용이야 대법원장 입장에서 충분히 피력할만한 지극히 원론적 견지였다. 단, 지금이 정상상황이었다면 말이다. 

▲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해 10월 10일 대법원에서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 인사말을 통해 사법부 변화를 약속하고 있는 모습.

문제는 현 상황이 전 대법원장마저 구속되고 사법 농단 연루 의혹을 받는 판사가 백여 명에 달하는데도 해당 판사들이 여전히 재판에서 손을 놓지 않는 사상 초유의 예외상황이라는 점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부 최종 책임자로서 현재 상태가 그런 원론적 입장 표명으로 넘어갈 정도로 한가한 상황이 아님을 인식해주길 바란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원인은 양승태와 전 정권의 책임이나, 조속히 사태를 수습할 책임은 현 대법원장인 당신에게 있는바, 거기에 많은 국민들이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당신이 처한 상황이 헌정사 초유의 사태를 맞아 극히 어려운 처지임은 가늠하고 있기에 아직은 기다려 보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필자 포함 지켜보는 시민들 마음속 모래시계에 남은 모래알이 그리 많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민주당은 사법 농단 연루 의혹 법관 탄핵안을 조속히 발의하라.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삼권 분립,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실천하는 것이고, 사법농 단에 연루되지 않은 양심적 법관들로부터 청원 받은 것이므로 거리낄 이유도 없다.

그러니 사법부여, 국회에 의해 탄핵안이 발의되는 것을 진정 치욕으로 느낀다면 스스로 조속히 내부 적폐를 청산하고 국민 앞에 겸손해져라. 집회하는 시민들 손에 촛불 대신 석궁이 들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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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웬리 2019-02-14 00:53:41
제가 영화는 잘 안보는지라 몰랐습니다. 말씀하신 '모범시민' 알아봐야겠네요. 그리고 기사에 첨부된 삽화나 사진은 제가 지정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체로 편집장님께서 문맥을 고려해 적절한 짤을 찾아 수고하시고 있습니다.

홍문화 2019-02-12 16:24:58
기사 내용 좋습니다. 다만 영화 부러진 화살 외에 미국엉화 [모범시민] 도 같이 소개하면 더 좋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