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제에서 권력구조의 문제 ⑤ ‘공신 숙청’의 모범 홍무제
군주제에서 권력구조의 문제 ⑤ ‘공신 숙청’의 모범 홍무제
  • 정재웅
  • 승인 2019.01.31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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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과 역적 사이 4편 - 3만 명 이상을 숙청한 ‘호유용의 옥’
경제학 박사이자 페이스북에서는 ‘역사 덕후’로 알려진 정재웅 님이 ‘군주제에서 권력 구조의 문제’라는 주제로 연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매주 금요일 업로드 되니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 명 태조 어진. 주원장은 명나라의 초대 황제(재위:1368~1398)로, 홍무제(洪武帝)라고도 불린다.
 
명 태조 홍무제 주원장은 중국 역사에서 유일무이하게 고아에 거지라는 천하에서 가장 비천한 신분에서 황제라는 지고의 자리로 오른 인물이다.
 
물론 한 고조 유방과 촉한 선주 유비도 낮은 신분이기는 했지만, 적어도 고조는 패국 풍읍 사상의 정장이라는 말단 공무원 신분이었고, 유비도 비록 돗자리 장수로 생계를 이어갔을지언정 글은 읽고 쓸 줄 알았다. 반면 주원장은 고아에 거지 신분을 면하기 위해 절에 들어가기 전까지 일자무식이었다.
 
주원장은 탁발승을 하면서 중국 각지를 유랑하며 자신을 포함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의 비참한 실상을 절절하게 느꼈고, 산천과 지리와 풍속에 익숙해져 안목이 넓어졌고, 무엇보다 글을 익힐 수 있었다.
 
이렇게 탁발승의 삶을 살던 주원장은 곽자흥 휘하의 홍건적에 가담한다.
 
처음에는 일개 병졸에서 시작하였지만 곧 승승장구하여 곽자흥 군의 2인자 위치에까지 등극하는 한편 곽자흥의 양녀와 결혼하여 그의 사위가 되었다.
 
이후 1355년 곽자흥이 죽자 그의 지위를 계승하여 홍건적의 수령이 되었고, 1356년에 난징을 점령하면서 중국 남부 지방에 할거하던 군벌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후 서달, 상우춘, 유기, 이선장 등 뛰어난 신하들을 등용하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1368년 원의 수도인 대도(현재의 베이징)를 점령했고, 1382년 윈난의 양왕을 섬멸하면서 중국 전토를 통일한다.
 
이런 주원장은, 그렇지만 당대부터 현재까지 ‘공신 숙청의 모범’으로 통한다. 재위 기간 전체를 통틀어 공신과 그 가족을 합쳐 10만 혹은 그 이상에 달하는 사람을 죽인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주원장이 천하를 통일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워 위국공(魏國公)에 봉해진 서달과 그 자신이 관직에 욕심이 없었던 유기 정도를 제외하면 주원장은 공신 대부분을 숙청한다. 
 
주원장의 중국쟁패 과정에서 뛰어난 행정 지원 능력을 발휘하여 서달, 유기와 함께 3대 개국공신으로 불렸고, 명의 초대 승상에 올라 행정 체계를 확립한 이선장은 주원장이 경계한 회서파 귀족의 수장이었는데, 평온하게 은퇴는 했지만 주원장이 3만이 넘는 사람을 잔인하게 숙청한 ‘호유용의 옥’과 연류되어 그 일족이 모두 숙청된다.
 
 
호유용은 개국 공신의 한 사람으로, 이선장이 승상일 때 그를 도왔으며 이선장을 비롯한 개국공신 1세대가 은퇴하자 좌승상 자리에 올라 주원장을 보좌했다.
 
그 과정에서 개국공신 1세대를 숙청하는데 능력을 발휘했는데, 결국 나중에 그 자신도 황제를 기만하고 권세를 휘둘렀으며 심지어 북원 및 왜와 결탁하여 반역을 도모했다는 죄목으로 본인이 처형됨은 물론 연루된 사람들의 가족까지 모두 합쳐 3만 이상이 숙청되니, 이게 상술한 ‘호유용의 옥’이다.
 
이 사건은 나중에 한 번 더 재활용되는데, 장남 주표가 젊은 나이에 죽자 손자인 주윤문을 제위 계승자로 임명하는 과정에서 혹여 어린 손자가 제위에 올랐을 때 방해가 될까 공신을 재차 숙청하는 과정에서 ‘호유용의 옥’에 대한 조사가 미비함을 핑계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호유용의 옥’ 이후 명에서는 선대부터 내려오던 승상과 각 부의 성을 폐지하고 황제 독재 체제를 강화하였으며, 이를 보좌하는 기관으로 내각을, 내각의 수장으로 내각대학사를 설치한다. 물론 대부분의 제도가 그렇듯이 내각과 내각대학사 역시 나중에는 각부의 성과 승상 제도로 변질되지만.
 
주원장의 이러한 숙청은 한 고조 유방과 더불어 공신 숙청의 모범으로 불린다.
 
▲ 드라마 '정도전'에 등장한 명 태조 주원장
 
여담으로 이렇게 공신을 숙청한 주원장은 주윤문으로의 제위 계승에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는데, 넷째 아들인 주체를 포함한 황자들을 각지의 번왕으로 책봉하여 내려보낸 일이다.
 
물론 이 번왕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주원장은 아들들을 책봉하여 내려보내는 자리에서 “너희들을 번왕으로 책봉하여 내려보냄은 그만큼 신뢰하기 때문이지만, 신하들이 너희들의 발호를 경계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마음 깊이 새겨두고 나중에 맏이의 핏줄을 계승한 황실과 협력하여라”는 훈시를 내린다.
 
이에 더해 나이도 많고 비교적 황위에 가장 가까운 둘째 주상, 셋째 주강, 넷째 주체까지의 봉지는 시안-타이위안-베이징 순으로 붙어 있게 하여 한쪽이 엉뚱한 생각을 품으면 다른 둘이 견제할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문제는 주상과 주강이 먼저 죽었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 번왕 제도는 정난의 변을 통해 조카인 주윤문을 축출한 넷째 연왕 주체가 황제로 즉위하면서 문제가 부각되면서 결국 그에 의해 봉지가 없는 친왕(親王) 제도로 대체된다.
 
군주제에서 권력은 군주 한 사람을 제외하면 다른 누구에게 집중되어도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이게 바로 군주제의 문제 중 하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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