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1 14:32 (수)
무엇이 젊은 남성들을 분노케 했나 ① 젠더갈등과 역린지화
무엇이 젊은 남성들을 분노케 했나 ① 젠더갈등과 역린지화
  • 장정현(문파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1.28 03:0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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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대안 우파’ 출현 막으려면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한 단호한 태도 필요
【무릇 용이란 짐승은 길들여서 탈 수 있다. 
그렇지만 용의 목 아래에는 지름이 한 척 정도 되는 거꾸로 배열된 비늘, 즉 역린(逆鱗)이 있다. 
만일 사람이 그것을 건드리면 반드시 용은 그 사람을 죽이고 만다. 군주에게도 마찬가지로 역린이란 것이 있다. 
설득하는 자가 능히 군주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그 설득을 기대할 만하다.】
- 한비자 『세난(說難)편』 中

전국시대 법가 사상가인 한비자는 『세난편』에서 한자 뜻 그대로 군주에게 신하가 유세하는 ‘설’을 펼치는 일의 어려움을 논한다. 여기서 특히 경계해야 할 것을 비유한 ‘역린지화(逆鱗之禍)’의 고사를 두 글자로 줄인 ‘역린’은 널리 쓰이는 관용어가 되었다.

우리 역사의 조광조처럼 용(군주)의 등을 타고 강력한 권세를 휘두르다 그만 역린을 건드려 ‘훅’ 가버린 정치가는 동서고금 수두룩하다.

그런데 임금이 없는 현대 공화국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누가 군주인가? 바로 주권자 국민이다.

필자는 요즘 특히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뜨거운 이슈인 젠더 갈등 문제는 안타깝게도 정부의 스탠스가 투표권자인 20~30대 젊은 남성들의 역린을 건드린 측면이 있다고 판단해 ‘문파 칼럼니스트’를 자처하는 입장에서 곤혹스러움을 감수하고 이 글을 쓴다. 

돌이켜보면, 공교롭게도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즈음에 비슷한 일이 있었기에 강한 기시감(데자뷔)을 느끼며 이 글을 썼다.

▲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1월 17일 오전 충청북도 진천국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을 방문, 아이스하키 훈련장에서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취임 후 근 1년간 60~80%를 유지하며 철옹성 같던 대통령 지지율을, 그것도 주지지층으로 여겨지던 젊은 세대로부터 확 끌어내려 처음으로 50%대를 찍게 만든 사건, 바로 ‘평창올림픽 아이스하키 여자단일팀 논란’이었다.

필자가 이 사건에 현 젠더문제를 비추어 본바, 지금의 젠더갈등 문제의 본질은 정부, 여당의 몇몇 인사가 말하듯 ‘성평등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 중의 일시적 성장통’ 정도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평창올림픽은 전 정권의 막장 준비에 더해 최순실의 땅 투기 등 온갖 전횡이 겹쳐 ‘폭망하지만 않아도 성공’, ‘이국종 교수가 와도 이건 못 살려’ 식으로 암울한 전망이 대세였다.

심지어 우리 문파들마저 성공 가능성에 회의적이었으나 문프께선 올림픽을 이후 이어지는 남북 평화 외교의 계기로 삼는 치밀한 외교전략과 헌신적인 노력으로 스포츠 행사 자체로서도 저비용 고효용의 성공작이 되었다.

IOC조차 ‘엄지척’ 공식 인정하는 올림픽 정신인 ‘평화’의 가치를 제대로 구현해 ‘평양올림픽’이라는 수구꼴통들의 비아냥을 딛고 대통령께서 사전에 선언한 대로 평화올림픽으로 막 내리는 기적적 대역전 퍼포먼스를 펼쳐냈다.

▲ 2018년 2월 20일 강원도 강릉시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아이스하키 순위결정전(7-8) 코리아 대 스웨덴의 경기를 마치고 신소정을 끌어안고 있는 세라 머리 감독. 이를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은 박철호 북측 감독이다.

개막 전 단일팀 논란으로 시끄러웠다지만 이렇게 훌륭한 성과를 달성한 이상, 이제 와서 당시 쟁점들을 다시 끄집어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다만 기성세대들의 시각으로는 당연한, 혹은 별거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단일팀 논란이 젊은 세대 사이에서 활활 타오름으로써 ‘공정성’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야말로 그들의 ‘역린’임을 보여줬다.

동시에 유감스럽게도 세대 차이 탓인지 정부 고위급 인사들의 인식이 젊은이들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함도 드러냈다.

필자가 굳이 정권에 ‘쓴소리’가 될 법한 글을 쓰게 된 데에는 여러 여론조사에서 밝혀졌듯 사태가 이미 찻잔 속 태풍 수준을 아득히 벗어났으며, 정부와 여당은 문제가 가볍지 않다는 것 정도는 인식한 듯 싶지만 진단과 처방에 있어서는 여전히 안이한 모습이라고 판단해서다.

거기에 페미니즘이 통째로 성역화된 게 아닐까 싶은 진보 정당과 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문파 스피커들조차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문제를 키우지 않기 위해 전략적으로 감추려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밥그릇 싸움수준으로 치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해 12월 21일 저녁 서울 대학로 공공그라운드에서 열린 ‘유시민 작가와의 만남-나는 왜 역사를 공부하는가’ 행사에서 발언하는 모습.

결국 어용 지식인을 자처하는 유시민 작가마저 알릴레오 오픈 전에 이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물론 그의 진단대로 젊은 세대들이 처한 취업난을 비롯한 온갖 각박한 현실에 의해 갈등이 보다 첨예화 되는 측면은 분명 있으며, 따라서 그 부분이 나아지면 적어도 갈등이 상당히 완화되기는 할 것이다. 그래선지 청와대와 정부도 아직은 문제해결의 방향을 그쪽으로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밝힌 바와 같이 공정성에 대한 갈망은 젊은 세대들이 공유하는 ‘정의관’으로서 이들 가치·세계관의 핵심, 기저를 이룬다. 그렇기에 설령 자신이 직접적, 실질적으로 피해를 보는 일이 없어도 공정성이 훼손됐다고 판단하면 격렬한 분노를 표출한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저 생활에 여유가 생겼다고 없어질 문제가 아니다. 장작불에 기름을 붓지 않는다 한들, 화력은 약해지겠지만 땔감 자체는 여전히 남아 있기에 언제든 불씨만 있으면 다시 불타오르는 것과 같이.

애초에 고래로부터 여러 현인들이 지적했고, 가까이는 지난 민주당 대선경선에서 문프께서 안희정의 ‘선의론’에 기반한 ‘대연정론’을 “분노가 빠졌다”며 비판했던 것처럼 정의감과 분노는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

때문에 젠더갈등 문제를 밥그릇 문제로 인식하고 처리하면 일부는 그걸로 만족할지 몰라도, 자긍심이 훼손됐다 느끼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욱 감정적으로 분노케 만든다. 정책의 결과 ‘밥그릇’이 풍족해지는데도!!! 이래서 ‘역린’인 것이다. 

이 문제를 쉽사리 넘겨선 안 될 이유는 위에서 논한 바와 같이 그 자체로 불공정함, 즉 ‘불의’이기에 정권의 집권 정당성을 훼손하는 즉각적 시정대상인 점이 가장 크다.

▲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중앙홀에서 열린 제19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하고 있다.

문프의 취임사를 기억하는가?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리버럴의 정의관을 함축적으로 잘 요약한 명연설이었고, 그래서 많은 사람의 뇌리에 깊숙이 각인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필자가 현 젠더 갈등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판단하는, ‘반인륜적 혐오’를 유포하는 메갈/워마드 류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한 정부의 미온적 태도는 존 롤스 식으로 표현하면 ‘공정으로서의 정의(Justice as Fairness)’에 심대한 손상을 준다.

그나마도 늦게나마 정부가 문제를 인식한 나머지 그쪽과 거리를 두게 되어 미온적 상태가 된 거지, 초기에는 적극적으로 그들 의견을 들으려 했고 심지어 일각에서는 옹호하는 목소리도 여럿 있었다. 메갈 후원을 인증하고 혜화역 시위의 실상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숟가락부터 얹으려 한 것이다.

이를 소통을 위한 노력으로 긍정적으로 볼 여지가 없지는 않지만, 남성들은 거기서 일베에 대한 그것과 상반되는 대조적 괴리감과 불공평함을 느꼈다. 그들 상당수가 일베들을 배척해왔으며 심지어 적극적으로 맞서 싸웠던 자들이었기에 더욱.

물론 원래 여혐이었던, 최근 떴다가 결국 자기 업보를 못 이겨 몰락한 윾튜브 따위나 추종하는 일베 혹은 박가분의 표현을 빌리자면 ‘프로토-일베’ 따위는 이 글에서 논하고자 하는 대상이 아니다.(정부로서는 그들도, 박사모도 같은 국민이니 짊어지고 가야겠지만)

누차 말하지만, ‘공정으로서의 정의’관은 리버럴들이 묵시적으로라도 공유하는 정의관으로서 현재 젠더문제 때문에 정부에 실망했거나 급기야 등 돌린 사람들 상당수는 원래 정권의 탄탄한 지지층이었던 리버럴 혹은 잠재적 리버럴들이다. 필자가 괜히 현대 리버럴리즘의 대부격인 롤스를 인용한 게 아니다.

또한 리버럴적 가치관에서 비롯된 문제의식에서 불거진 터라, 이 문제만큼은 문파들조차 정부를 실드치기 어렵다. 비록 지지여부는 엇갈렸을지언정 큰 틀에서 유사한 가치관을 공유하기에 이성적, 직관적으로 비판 논리에 공감하기에 그렇다. 

따라서 현 정부는 그들을 다시 지지층에 복원시켜야 할 의무와 필요가 있다. 원래 집토끼에 가까웠다는 점도 그렇고 문프의 진정성을 확신하는 필자로서는 청와대가 젠더갈등으로 남녀 갈라치기를 하고 있다는 항간의 주장은 헛소리로 치부한다.

▲ 이것이 너희가 바라는 세상이냐

하지만 의도가 어쨌든 결과는 ‘갈라치기’ 형태로 굳어지고 있다는 점이 심각하다.

젊은 세대 남녀 지지율 차이가 상당히 벌어졌고 잠재적 유권자인 10대 남자들 사이에서도 정부, 여당에 대한 반감이 거세어져 미숙한 이들을 타겟으로 윾튜브등의 안티 페미 혐오성 매체들이 활개치고 있다.

보수우파 야당들의 상태가 워낙 나쁘니 당분간은 괜찮겠지만, 현 상황이 악화하면 미국에서 출현한 ‘대안 우파(Alt-Right)’와 그에 힘입은 트럼프의 당선이 이 땅에서도 재현될까 두렵다.

그나마 최근 정부가 문제가 심상치 않음을 알고 래디컬 페미니즘과는 거리를 두고 있으며, 젊은 남성들과도 소통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게 다행이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서두에 인용한 한비자의 구절에 답이 있다. 젊은 남성들을 설득하려면 그들의 역린이 무엇인지부터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자극하는 일이 없도록 신중하게 접근하라.

그리고 일베에 대한 스탠스처럼 메갈, 워마드 같은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지금처럼 미온적으로 선 긋는 수준에서 벗어나 단호한 태도를 드러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필자는 그것만으로도 이탈된 지지층의 반 정도는 돌아오리라 확신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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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웬리 2019-02-01 05:27:31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우러기 2019-01-30 17:28:44
흠터레스팅... 성평등 페미니즘과 배치되지 않으면서도 성별간 적의를 줄일 수 있는 실천적 대안과 지향점이 나오려면 이런 시선도 잘 고려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