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1 14:32 (수)
군주제에서 권력구조의 문제 ④ 중국판 왕자의 난 ‘현무문의 변’
군주제에서 권력구조의 문제 ④ 중국판 왕자의 난 ‘현무문의 변’
  • 정재웅
  • 승인 2019.01.2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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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과 역적 사이 3편 - 천책상장(하늘이 내린 뛰어난 장군)의 선택
경제학 박사이자 페이스북에서는 ‘역사 덕후’로 알려진 정재웅 님이 ‘군주제에서 권력 구조의 문제’라는 주제로 연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매주 금요일 업로드 되니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군주제에서 적층적 혹은 이원적 권력 구조의 문제는 어떻게 보면 신하보다 군주의 친족이 그 권력을 차지했을 때 더 심각하게 불거진다.
 
신하의 경우, 물론 역성혁명의 위험성을 간과할 수는 없지만, 군주가 어지간히 폭군이거나 국가가 심각한 국가막장테크를 타지 않는 이상은 뒤집어질 가능성이 낮다. 하지만 군주의 친족이면서 권력 구조에 있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이건 뒤집어질 위험성이 크다.
 
신하가 일으키는 역성혁명은 어지간한 폭군이나 국가막장테크 상황이 아닌 이상 정당화되기 어렵지만, 같은 가문에서 군주가 바뀌는 것은 천명이 바뀌는 일이 아니기에 정당화가 더 쉽기 때문이다.
 
군주의 친족이 국가의 최고 권력을 쥐고 있는 경우는 다시 두 경우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친족이 왕으로 봉해졌는데 그 세력이 막강하여 조정에서 무시할 수 없는 경우이고, 둘째는 그 친족이 조정에 출사하거나 혹은 섭정 등으로 국정에 관여하는 경우다.
 
첫째의 대표적 예가 당 태종이 되는 진왕 이세민 혹은 명 성조 영락제가 되는 연왕 주체, 둘째 경우가 청 의친왕 아이신기오로 도르곤, 그리고 이 둘이 복합된 예가 조정 수양대군이다. 
 
▲ 수양대군(a.k.a. 세조) “관상가 양반, 어찌 내가 왕이 될 상인가?”
 
그렇다면 먼저 진왕 이세민과 연왕 주체의 경우부터 살펴보자. 
 
많은 경우, 역성혁명을 일으키는데 있어 가장 큰 공을 세우는 사람은 창업군주의 친족에서 나온다. 송 태조 조광윤의 건국에 있어서 가장 공이 큰 사람 중 하나는 진왕(晋王) 조광의였고, 조선 태조 이성계의 건국에 있어서는 정안공 이방원이었다.
 
이는 당과 명도 마찬가지다.
 
수의 안주총관(安州總管) 태원유수(太原留守) 당국공(唐國公) 이연이 역성형명으로 당을 건국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천책상장(天策上將, 하늘이 내린 뛰어난 장군) 진왕(秦王) 이세민이었고, 명 홍무제 주원장에게 있어서는 북원의 침략을 막고 북방을 안정시킨 연왕(燕王)이 주체다.
 
이처럼 뛰어난 능력을 가진 군주의 혈족은 황제가 강력한 권력과 권위를 갖고 제위에 있을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큰 공훈을 세웠다 하더라도 그건 결국 황제를 도운 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제위가 세습되는데, 그 제위 계승자가 이들에 필적하는 공훈이 없거나 혹은 나이가 어릴 때 발생한다.
 
▲ 당 태종 이세민의 초상화. 조진웅이 아닙니다.
 
우선 진왕 이세민의 경우를 살펴보자.
 
천책상장이라는 별호처럼 당 건국 과정과 이후 초기 안정에 있어 이세민이 세운 공로는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이세민은 관중으로 들어간 아버지 이연을 대신해 근거지인 태원을 지켰으며 유무주, 송금강, 왕세충, 두건덕 등 수 양제 말기 혼란을 틈타 거병한 군웅들을 모조리 제압했다. 이러한 업적으로 이세민은 620년 10월 조정으로부터 천책상장이라는 별호를 받는다. 
 
천책상장 진왕 이세민의 존재는 당 건국 과정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했지만, 건국 이후에는 아버지 고조 이연과 형 태자 이건성에 있어서는 껄끄럽게 되었다.
 
이연에게 있어서는 황제인 자신을 능가하는 세력을 가진 인물이었기 때문이고, 태자 이건성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제위 계승에 있어 가장 걸리적거리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진왕 이세민은 건국 과정에서의 공로와는 별개로 건국 이후에는 백안시된다. 잠재적 위험인물이기 때문이다. 
 
▲ 당 태종 이세민은 안시성 전투 등 고구려와의 악연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로, 자치통감에 따르면 “다시는 요하를 넘지 말라” 또는 “요동을 공격하는 것을 그만두어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고조 이연은 건국 이후 진왕 이세민과 사사건건 충돌하면서 비빈들에게 “둘째는 사람이 달라졌다”, “내가 알던 옛날 그 아이가 아니다”라는 말을 했고, 태자 이건성은 막내인 제왕(濟王) 이원길과 연합하여 진왕 이세민을 공격했다.
 
그 과정에서 진왕 이세민이 진압한 유흑달이 돌궐과 연합하여 다시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를 태자 이건성이 진압한다. 이세민의 공훈이 위태로워진 것이다. 
 
운명의 626년, 당의 변방에서 돌궐이 침략했다. 이에 태자 이건성은 제왕 이원길을 통병원사(統兵元師)로 추천하여 침략을 막을 것을 아버지 고조에게 주청한다.
 
하지만 이 계획의 목적은 다른데 있었으니, 돌궐의 침략을 막는 것을 핑계로 진왕부의 사람들인 울지경덕, 진경 등을 종군시키고 군율을 핑계로 참하여 진왕 이세민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것이었다.
 
이 계획이 어쩌다가 진왕부로 흘러들어갔고, 이세민의 처남인 장손무기를 필두로 한 진왕부는 거병하여 태자 이건성과 제왕 이원길을 제거하기로 결정한다. 
 
진왕 이세민은 아버지 이연을 만나 형과 동생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말하며 격렬하게 항의하고, 이에 놀란 이연은 다음날 아침 일찍 셋을 대질시키기로 한다. 
 
그리고 운명의 7월 2일, ‘현무문의 변’으로 이세민은 형인 태자 이건성과 동생 제왕 이원길을 제거하여 명실상부한 당의 제일인자가 된다.
 
▲ ‘현무문의 변’(玄武門之變)은 626년에 발생한 당 고조 이연의 후계자를 두고 장남 이건성(李建成)과 차남 이세민의 다툼이다. 이에 승리한 차남 이세민이 제2대 황제인 당 태종으로 즉위하였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른 마당에 고조 이연의 권력과 권위는 무의미했다. 놀란 고조는 3일 뒤 이세민에게 천하의 병권을 넘겨주며 태자로 삼았고, 두 달 뒤에는 제위를 양위하고 상황으로 물러났다.
 
수당이행기의 급변에 있어 천책상장 진왕 이세민이 세운 공적은 정말 대단했다. 이는 이세민에게 권위와 권력을 더해주었는데, 문제는 그가 유일한 인물이 아니었다는데 있다. 고조의 관중 공략에 있어 태자 이건성이 세운 공도 작은 게 아니었으며, 심지어 제왕 이원길의 공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진양거병부터 당 건국에 이르기까지 주요 공신의 상당수는 진왕부에 속해있지 않아도 이세민의 측근이었으며, 그 세력은 조정에서는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물론 이는 태자 이건성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그 인물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이건성의 최고 책사인 위징이 정관(貞觀)의 정치에 있어 최고 공신이 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왕조 교체기의 격랑기에는 공훈을 세우는 사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언제나 문제는 그 공훈에 적합한 대우를 해주는 것과 적장자 상속이라는 유교의 전통을 충돌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해결하는 일이고, 이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실패한다.
 
왕조 교체기의 격랑에서 공훈을 올린 사실 자체가 그 인물의 군주로서의 그릇과 능력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군주제 하에서 권력구조의 문제에 있어 군주의 친족이 막강한 권력과 권위를 차지했을 경우, 이 권력과 권위는 친족 본인의 공훈과 능력에서 오기에 더 큰 위협과 문제가 된다. 
 
이러한 군주의 친족으로 인한 권력과 권위 분점의 문제는 당 태종 이세민의 경우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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