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1 14:32 (수)
군주제에서 권력 구조의 문제 ③ 조조와 제갈량의 경우
군주제에서 권력 구조의 문제 ③ 조조와 제갈량의 경우
  • 정재웅
  • 승인 2019.01.18 10:1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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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과 역적 사이 2편 - 동탁, 영구공석이던 ‘상국’ 부활시키다
경제학 박사이자 페이스북에서는 ‘역사 덕후’로 알려진 정재웅 님이 ‘군주제에서 권력 구조의 문제’라는 주제로 연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매주 금요일 업로드 되니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한의 초대 상국(相國)인 소하와 그 뒤를 이은 조참 이후 상국은 영구 공석이 되고, 상국의 수석보좌관에 해당하는 승상이 그 직무를 수행한다.
 
사실 승상(丞相)이라는 한자에서 승(丞)의 의미가 ‘돕는다’이기도 하다. 즉 승상은 상국의 직무를 도와주는 관직이라는 뜻.
 
상국은 한조 전체에 걸쳐 영구 공석이 됐지만, 후한 말엽에 부활한다.
 
문제는 그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인물이 동탁이라는 사실이다.
 
▲ 동탁의 이미지가 역사에 남는 대표적인 악인 그 자체여서 그런지 옛 서적의 삽화와 요즘 시대 게임 등에서의 이미지 사이에 갭이 가장 적다.
 
▲ 후한 말기 황제였던 소제(少帝)와 헌제(献帝)
 
소제를 폐하고 헌제를 세운 후 국정을 오로지한 동탁은 헌재를 협박하여 상국에 오른다.
 
연의에서는 승상 혹은 태사 정도로 불리지만, 실제 역사에서 동탁은 연의보다 훨씬 무시무시한 일을 저질렀다. 소하와 조참에 필적하는 능력도 공훈도 없으면서 상국에 올랐으며, 이후 그 권력을 이용하여 폭정을 행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타락한 정치군인인 동탁의 삶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테니 이 글에서는 일단 차치하자.
 
동탁의 최후는 우리가 익히 아는 것과 같다 : 여포에 의한 암살.
 
▲ "모, 모반이다" "응. 너가 역적"
 
동탁의 예가 보여주는 사실은 권력의 정당성은 그 획득 과정의 정당함에 행사의 정당함이 더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동탁은 그 권력의 획득 과정도 부당했을 뿐만 아니라 권력을 획득한 이후에도 스스로를 상국으로 높였을 뿐만 아니라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국정을 농단했다. 위진남북조 혼란의 근원 중 하나가 동탁의 전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동탁 사후 혼란기에 조조가 헌제를 자신의 근거지인 허창으로 데려오고 이어서 하북에 웅거한 원소를 멸망시키면서 바야흐로 협천자 영제후(挾天子 領諸侯 : 천자를 옆에 끼고 제후를 호령함)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 조조는 묘사하는 사람에 따라 가장 이미지가 달라지는 캐릭터이다.
 
원소를 멸망시키고 하북을 평정한 조조는 승상위에 오른다.
 
나중에 위공(魏公)이 되고 구석(九錫)을 하사받는가 하면 마침내 위왕에 이르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조정 내에서 조조의 관직은 어디까지나 상국이 아니라 승상이었다. 물론 일이 이 지경이 된 마당에 조조에게 한 조정은 의미가 없지만. 
 
조조는 승상이 된 이후 동탁과는 달리 국가 제도를 정비하고 오랜 전란으로 피폐해진 민생을 어느 정도 회복시키는데 성공한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둔전제를 비롯해 호조법이나 원호제가 모두 조조에 의해 시행된 정책들이다. 즉 조조는 권력 획득에 있어 정당성도 어느 정도 획득한 동시에 그 행사 역시 정당했다고 평할 수 있다.
 
다만 조조 경우에도 권력 구조의 이원화로 인한 문제는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즉 조조 자신에 대한 암살을 모의한 인물들을 숙청하는가 하면 이를 근거로 황제를 핍박하는 등 그 역시 동탁이 헌제에게 행했던 이상의 핍박을 가한 것이다.
 
명목상(De Jure) 천하의 주인은 한 헌제이지만, 실질적인(De Facto) 천하의 주인은 조조인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했다는 말이다.
 
 
이는 마치 비유하자면 일본 무가정권과 유사하다. 무가정권의 수장이나 주요 인물들이 조정의 관위를 수여받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그 관위와 상관없이 바쿠후의 수장인 쇼군과 그 부하들에 의해 정치가 이루어진 것과 이 당시 한의 상황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승상이 승상부를 개설할 권한이 있는 관직이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지만.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조조는 상국의 직무를 수행하는 관직으로서 승상의 어두운 부분을 적시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단순히 국정을 총괄하는 수석대신을 넘어 자신에게 집중된 권한을 이용해 국정을 오로지할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자신이 실질적인 천하의 주인이 되어 군주를 명목상 주인 자리로 밀어내는 일이 그것이다. 
 
 
제갈량은 명확하게 조조와 반대되는 경우다. 입촉하고 조조와의 한중 쟁탈전에서 승리하여 한중왕에 오르기 이전까지 유비의 한 조정에서 지위는 좌장군 의성정후 예주목이다.
 
좌장군은 대장군 바로 아래 관위인 사방장군(전후좌우) 중 하나이자 그 중 수석으로 역시 개부의 권한이 있다. 그렇기에 제갈량이 유비의 막하로 출사한 이후 그의 지위는 좌장군부의 잡호장군인 군사장군이다. 제갈량을 군사라 부르는 것도 이에 기인했다.
 
한 초기에는 본래 왕국에 국무를 총괄하는 국상(國相) 1인을 두도록 하였으나 오초칠국의 난을 거치며 폐지되고 역시 승상 제도로 대체되었다. 이에 따라 한중왕 유비는 제갈량을 승상으로 삼는다.
 
연의를 통해 삼국지를 접하기에 우리는 유비를 나약한 울보로, 제갈량을 신묘한 전략가로 생각하지만, 실제 유비는 조조에 필적하는 효웅이었고, 제갈량은 전략가라기보다는 소하와 같은 행정가였으며, 실질적인 군무는 사실상 법정의 소관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제갈량의 군사적 재능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만.
 
▲ 촉한의 소열황제 유비도 호오가 많이 갈리는 캐릭터.
 
 
한중왕의 승상이 된 제갈량은 유비가 촉한의 황제에 등극한 이후에는 승상에 더해 녹상서사(錄尙書事)와 가절(假節)이 추가된다.
 
녹상서사는 궁정, 즉 내조의 모든 문서를 처리하는, 승상에 필적하는 자리고, 가절은 녹봉 2000석 이하 관리의 생사여탈권을 가짐을 의미한다. 즉 제갈량은 실질적으로 조정의 내조(녹상서사)와 외조(승상)를 총괄하며 황제 유비에 이은 촉한의 2인자가 된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유비는 이릉대전에서의 참패로 영안 백제성에서 숨을 거두고, 숨을 거두는 그 순간에 제갈량을 상국으로 높이는 한편 태자 유선이 황제의 그릇이 되면 그를 잘 보필하고, 그렇지 못하다면 제갈량이 황제위에 오르라는 영안탁고(永安託孤)를 남긴다.
 
▲ 유비는 이릉대전에서의 참패로 영안 백제성에서 숨을 거둔다.
 
이 시점에서 제갈량은 권력과 권위 모두에 있어 촉한의 제일인자가 된다.
 
촉한의 제일인자가 된 제갈량은 완벽하게 조조와 반대의 길을 걷는다. 어린 유선을 보필하고, 양잠업과 비단 생산을 장려하여 촉의 비단은 위나 오에서도 비싼 값을 주고 사가는 명품이 되었고, 도강언을 보수하고 정비해 농업생산력을 크게 증강시켰다. 그리고 남만 정벌을 통해 후방을 안정시키고 여섯 차례에 이르는 북벌을 이끌다가 오장원에서 쓰러진다.
 
제갈량은 촉한의 실질적인(De Facto) 최고 권력자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목상(De Jure) 최고 권력자인 유선을 끝까지 존중하였으며 말 그대로 국궁진췌 사이후이(鞠躬盡力 死而後已 : 정성을 바쳐 나라를 위해 일하고 죽은 후에야 그만둠)의 삶을 살았다.
 
유비가 그에게 준 은혜는 지나치게 짧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준 권력과 권위는 그 이전과 이후 모두 보기 힘든 것이다.
 
▲ 영화 적벽대전에서의 제갈량.
 
이처럼 충신과 역적 사이 아슬아슬한 갈림길에서 그 충성을 지켰기에 제갈량이 현재까지 숭앙받는 것이 아닐까 한다.
 
즉 군주를 허수아비로 돌리고 자신이 실질적 권력을 쥔 상태에서 신하에게는 두 선택지가 있다 : 찬탈이나 그에 준하는 자신의 권력과 권위 형성 혹은 완벽한 충성.
 
많은 경우 충신과 역적 사이에 있는 사람들은 전자를 선택한다. 권력의 속성 자체가 그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후자를 선택한 소하 혹은 제갈량이 더 크게 보이는 것이기도 하지만.
 
군주제 하에서 신하 1인에게 집중된 권력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신하가 아니라 군주의 친족이 최고 권력을 쥐었을 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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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드마 2019-01-21 20:20:30
정치적 '권력투쟁'의 역사이야기는
과거완료형 현실이 아니라
현재진행형 현실이기에
늘 흥미진진합니다.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관점은
더더욱 흥미롭구요. ^^

너내꺼 2019-01-19 13:26:08
삼국지겜을 좋아하는 덕후로써 친숙한 짤과 내용.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