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 랩소디의 ‘악당’ 폴 프렌터를 위한 변명
보헤미안 랩소디의 ‘악당’ 폴 프렌터를 위한 변명
  • 정병욱
  • 승인 2019.01.08 20:0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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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보다 더 소수자였던 폴, 재미 위해 순도 100퍼센트 악당으로 그려져 유감

지난해 10월 개봉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1월 중순이 되도록 여전히 차트 상위권을 지키는 이례적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누적관객 970만 여명으로 1천만 고지를 눈앞에 둔 영화는 최근 미국에서 골든 글로브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기도 했다.

국가별 흥행성적에서도 한국이 가장 높은 성적을 거뒀다는 이 영화는 이제 하나의 ‘현상’으로 평가되면서 영화와 영화의 등장인물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계속 회자되고 있는데, 뉴비씨 시민기자로 좋은 글을 쓰고 있는 정병욱 님은 영화의 ‘악역’인 폴 프렌터에 주목했다.

[편집자주]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레디 머큐리의 전 매니저 폴 프렌터는 대단한 악당으로 그려진다.

 

메리와 약혼한 프레디에게 강제로 키스를 시도하고, 항상 험상궂은 표정으로 퀸의 다른 멤버들을 째려본다. 퀸의 수석 매니저 격이었던 존 리드와 프레디의 사이를 이간질해 존 리드를 해고당하게 한다.

 

심지어는 퀸의 다른 멤버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솔로 활동을 부추기고 프레디를 독일로 끌고 가 방탕한 생활을 하게 한다. 프레디를 라이브 에이드 출연 제안에 관한 다른 멤버들의 연락으로부터 차단하는 것도 폴이다.

 

결국 독일을 찾아온 메리를 통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프레디로부터 해고와 이별통보를 받은 뒤 영국의 유명 타블로이드 더 선에 한 때 자신의 연인이자 고용인이었던 프레디 머큐리의 성적 지향을 아웃팅한다.

 

 

▲ 더 선에 보도된 프레디 머큐리 아웃팅 기사.
 

폴 프렌터는 프레디 머큐리가 별세하기 석 달 전인 1991년 8월 HIV 감염에 의한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격언 탓인지, 스토리의 극적 전개를 위해 폴 프렌터는 완전한 악마로 묘사되는 희생을 겪었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려진 것처럼 폴 프렌터가 그렇게 철저한 악인은 아니었다.

 

다른 퀸의 멤버들이 폴의 음악관을 싫어했던 것은 사실이다. 또 폴 역시 프레디 머큐리를 제외한 타 멤버들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폴은 존 리드와 프레디의 사이를 이간질하지도, 솔로 활동을 부추겨 퀸을 해체 상태에 이르게 하지도, 라이브 에이드 공연 제안을 일부러 알리지 않지도 않았다. 

 

존 리드는 수석 매니저로서의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퀸과 결별했으며, 퀸 멤버들의 솔로 활동은 로저 테일러와 브라이언 메이가 먼저 시작했었다. 다른 멤버들이 솔로 활동을 시작하자, 프레디 머큐리도 그 이후로 솔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 영화 속 프레디와 폴
 
▲ 실제 프레디와 폴
 

게다가 폴 프렌터는 라이브 에이드 출연 제안을 프레디 머큐리에게 은닉한 적도 없었다.

 

퀸이 라이브 에이드에 출연하게 된 것은 프레디 머큐리가 먼저 출연 제안을 받고, 다른 멤버들을 설득해 출연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폴 프렌터는 라이브 에이드 공연 이후인 1986년 다른 모종의 이유로 해고됐다.

 

폴 프렌터가 프레디로부터 해고를 당한 후 앙심을 품고 영국에서 가장 악랄한 타블로이드 언론인 <더 선>에 자신의 옛 보스이자 연인이었던 사람의 성적지향을 3만2000 파운드를 받고 아웃팅한 것은 변명할 수 없고 부인할 수 없는 커다랗고 악랄한 잘못임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시기가 인권 감수성의 개념이 온전히 정착되지 않았던, 심지어는 동성애가 질병으로 간주되었던 1980년대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날 퀴어 커뮤니티에서도 퀴어들간의 아웃팅이 꽤 심각한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 영화에서 배우 앨런 리치가 폴 프레터 역을 연기하는 모습.
 

영화에서 짤막하게 언급되었듯 폴은 벨파스트 출신의 엄격한 가톨릭 가정에서 자란 게이다. 가족들에게도 버림받았다. 심지어 아버지로부터 ‘아들이 죽는 게 아들의 성적 지향을 인정하는 것보다 낫다’는 막말을 들었던 가엾은 인물이다.

 

프레디는 어마어마한 돈을, 풍부한 명예를 가졌고, 또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폴은 돈도, 명예도, 종국에는 사랑도 받지 못했다. 프레디 머큐리도 소수자였지만, 폴 프렌터는 프레디보다도 더 소수자였던 것이다.

 

가족들에게도 버림받고, 연인이자 고용인에게도 해고당한 뒤, 에이즈 합병증으로 쓸쓸하게 생을 마친 이 안타깝고 가엾은 삶을 살다간 벨파스트 출신 게이를 단순히 영화의 재미만을 위해 순도 100퍼센트의 악당으로 그린 보헤미안 랩소디.

 

그래서, 나는 비록 영화의 훌륭한 음악적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조금은 유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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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드마 2019-01-11 19:00:18
4차 관람 후, 지난 번 조기숙 교수님 글에 댓글 썼지요.
그 이후 두 번 더 관람 했고, 지난 댓글에 이어지는 댓글이 되겠습니다.

'흥행 성공'을 위해서
'퀸'의 멤버가 생존해 있으니 더더욱 '퀸'의 명예를 위해서
제작진은
어디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를 치밀히 토의했을 터이고
'가족' ( 생물학적 가족과 음악적 가족)으로 맞췄다는 게
참 영리했었고, 뭉클한 여운을 깊이 남겨줬어요.

영리함과 깊은 여운에서
저에게 [보헤미안 랩소디]는
20세기 인물과 사건에 머무르지 않는 '21세기' 현재진행형 영화.

지금까지
가장 인상적인 점은 두 가지 - 동성애와 12세 관람가 / 인종차별 - 입니다.. (음악은 일단 제외함)

1. 동성애와 12세 관람가

폴...
실제인물과 실제사건 들을
영화에선 실제보다 과장적으로, 극적으로 묘사할 수밖에 없죠.

영화의 선악 대립구도에서 유일하게(?) 악으로 묘사된 인물이지만
지금도 동성애에 관련한 세간의 시선을 생각하면
그 당시 카톨릭 가정의 게이로서 연민이 일어납니다.

게이 관련 영화, 요즘은 한물 간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12세 관람가'에 깜놀했습니다.

우리나라가 동성애에 관대한가??

하지만
n차 관람에서 가족 동반 관객은 한번도 마주치지 않았고
'게이들의 두 번 나오는 키스 장면'에서 짤막한 비명을 간혹 듣기는 했습니다.
(비명소리는 여성. 어르신인 듯했음. 아무도 그 비명에 웃거나 하지 않았음.)

동성애에서 (동성혼까지)
종교적으로, 법적으로 현재진행형 논점을 일깨워준 영화.

2. 인종차별

프레디 머큐리
머큐리?? 그리스로마신화 속 神인데. 참 독특한 姓이구나 그 정도.
법적으로 개명한 이름임을 영화에서 처음 알았었죠. ㅠㅠ

히드로 공항에서도
폴이 TV 속 말에서도
"파키"라는 인종차별적 발언이 나옵니다.

그러나
라이브 에이드, WE are the champions 장면에서
남녀노소 인종에 상관없이 서로 어깨동무하며 노래합니다.

(백발과 하얀수염의 노인이 감격에 겨워 눈물 울컥하는 장면이 떠오름..)

.........

사랑에도 차별이 있는 세상.
인종에도 차별이 있는 세상.

사람 사는 세상
'함께 잘 살자'를 들려주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프레디 머큐리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사람'은 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