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체험학습 사전 안전점검 의무화’는 탁상행정
‘현장체험학습 사전 안전점검 의무화’는 탁상행정
  • 전대원
  • 승인 2018.12.24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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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사고 원인 분석 없이 엉뚱한 해결책…사고 예방 안 되면서 부작용만 초래

 

 

‘강릉 팬션 사고’로 현장체험학습 위축되어선 안된다

 

학교장 허가 현장체험학습을 떠났던 학생들이 강릉 펜션 사고로 세상을 뜬 이후에 교육부의 대처를 두고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사고가 난 이후 ‘학생 방치’라는 단어를 썼는데, 아무래도 학교장 허가 현장체험학습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된다.

 

실제로 사고 이후에 전국에 있는 고등학교에는 수능 이후에 학교장 허가 현장체험학습 건수와 안전 점검을 했는지 여부를 조사해서 보고하라는 공문이 하달되었다.

 

학년 말 학생부 입력 작업으로 바빴던 교무실은 갑자기 내려온 지시를 수행하느라 담임들의 업무는 모두 정지되고 일일이 전화를 걸어 어떤 숙박 시설에서 묵었는지 조사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현장체험학습은 과거 수학여행이나 소풍 등의 행사 등이 포함된 개념이고, 여기에는 가정에서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여행도 폭넓게 포함해 시행되고 있다.

 

학교 주관으로 떠나는 여행만이 아니고, 가족 행사로 진행되는 여러 체험활동에 대해서도 교육활동의 일환으로 보고 학교장이 허가한 경우에 출석 인정 결석으로 인정하고 있다.

 

처음에 제도가 도입되었을 때는 담임교사가 건마다 학교장에게 결재를 받고 시행되었는데, 점차로 제도가 정착되면서 학년부장 전결로 처리되는 학교가 많아졌다. 학년부장이 전결 처리를 해도 실제로는 학생의 상황을 잘 아는 담임교사가 실질적 허가권자라 할 수 있다.

 

지금은 말이 허가이지 시험 기간이나 성적 이의 신청 기간이 아니면 부모님이 신청만으로 현장체험학습은 진행된다고 보면 된다.

 

이 같은 제도는 교육 활동의 개념을 폭넓게 인정하는 제도로서 과거 학생 출결에 대한 경직적 자세를 갖고 있던 학교 문화가 개방적으로 변화였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필자가 기억나는 현장체험학습 중에는 엄마와 딸이 함께 처음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신청서를 낸 경우가 있다.

 

심리적으로 힘들어하던 딸의 모습을 보면서 엄마가 마련한 여행 계획이었다. 학교장 허가 현장체험학습이란 제도가 없었을 때에는 생각하기 힘든 여행이었겠지만, 이 제도로 인하여 모녀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형이나 오빠의 입영을 따라가기 위해 신청서를 낼 때도 많이 있다. 국가의 부름을 받아 먼 길을 떠나는 형제를 배웅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큰 공부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역사를 좋아하던 학생 하나는 역사 기행을 떠나겠다고 신청서를 내기도 하였다. 그 역사 기행은 나중에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대학입시를 치를 때 주요 내용으로 들어갔다. 역사학과 교수들이 그걸 긍정적으로 평가했을 것임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이렇게 현장체험학습을 갔다가 돌아오게 되면 결과보고서를 받는다. 아무리 부모 책임 하에 떠나는 여행이라 하더라도 출석 인정을 받는 교육 활동의 일환이기 때문에 교육적 효과를 점검하는 절차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번 강릉 팬션 사고는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사고 뒷수습의 모양새가 체험학습을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현재 보도로 나오는 내용들을 들어보면 안전점검을 확인하는 절차를 추가할 것이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런 식으로 안전점검을 학교 의무 사항으로 만들어 놓는 행정 규제는 현장체험학습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세월호 사건 이후 학교에는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상태이다.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태도는 매우 바람직하지만, 예기치 않은 부작용도 있었다. 공공시설에 견학을 가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함에도 안전점검을 반드시 실시하라는 지시가 있는 바람에 교육의 행정력 낭비만 심화되었던 것이다.

 

지하철이나 시내버스 등에 대해 교사가 할 수 있는 안전점검이 무엇이 있겠나? 더구나 공공시설 같은 경우에는 그 시설 책임자의 안전점검이 필요한 것이지, 그곳으로 학생을 인솔해가는 교사가 안전을 점검할 방법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무작정 수능 이후 학사 일정의 정상화를 지시하는 것도 무리가 많은 주장이다.

 

이미 학생들은 수능이 끝나면 모든 공부가 끝난다고 생각하는 입시 문화 풍토에서 12년 간의 교육을 받아왔다. 과연 수능 끝나고 고3 학생들이 교실에 앉아서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앉아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하는 것부터가 매우 비현실적이다. 

 

무엇보다, 수능은 11월 중순에 실시되면서 출제 범위는 교과서 전 범위로 하는 것부터 ‘학사일정의 정상 운영’이라는 지시가 매우 모순적임을 드러낸다. 이미 고등학교 전 과정에서 배워야 할 것을 11월 이전에 끝내게 만들어놓고서, 수능 이후 수업은 정상적으로 진행하라는 것이 앞뒤가 안 맞는 지시인 것이다.

 

따라서 수능 이후에 고3학생들이 학교장 허가 체험학습을 떠나는 것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이런 시간을 통해서 못 가본 여행도 함께 떠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교육 활동으로 보아야 한다.

 

여행을 떠난 학생들에게 인솔자가 없었다고 ‘방치’라고 하려는지 모르지만, 고3이면 스스로 책임지며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충분한 나이이다.

 

이번 사고 역시 아무리 살펴봐도 인솔자가 없어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진보 세력들은 고3에게 시민적 권리인 투표권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인솔자가 없으면 여행도 못 떠나는 존재들에게 그보다 더 고차원의 권리인 시민권은 어떻게 인정이 가능할까?

 

학부모가 신청해서 떠나는 여행에 대하여 안전점검의 의무를 학교에 부과하는 건 대표적인 탁상행정이다.

 

숙박시설의 안전 같은 것을 각별히 강조할 수는 있겠으나, 그것이 얼마나 사고 예방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교사가 일일이 모든 학교장 허가 체험학습의 현장을 좇아갈 수도 없을 것이고, 부모도 숙박시설 점검을 한다는 것도 불가능한 이야기다.

 

 

▲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사고 이튿날인 19일 오전 강릉시청 재난안전상황실에서 열린 강릉 펜션 사고 수습 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그냥 다른 거 생각할 것 없이 우리 모두가 다들 떠나고 있는 가족 여행을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미리 가서 현장 점검하고 숙박시설 안전을 살핀 이후에 가족 여행을 떠난다는 이야기는 그 어디서도 들어본 바 없다.

 

우리는 입으로는 ‘늘 학교 밖의 넓은 세상을 보라’고 하면서, 위험이 닥치면 다시 학교 안으로 아이들을 가둬두려 한다. 물론 학교 밖은 위험이 많지만, 우리가 언제까지 품안에서 학생들을 키울 수 있을까?

 

기성세대는 고3학생들의 여행을 막으려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여행을 가는 장소들을 안전하게 만들어야 할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그 책무는 교육기관인 학교가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족 여행을 떠나는 부모가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안전점검을 의무화한다면, 도대체 그 점검은 누가 할 수 있단 말인가?

 

안 그래도 공부하느라 여행 한번 제대로 못 떠나는 것이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의 현실이다. 이번 사태를 해결한답시고 학교로 아이들을 가두려는 시도는 입시로 고생한 학생들에게 더 미안한 일을 만드는 것이다.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정확하게 원인을 분석해야지, 엉뚱한 곳에서 해결책을 구하면 사고예방은 예방대로 안 되면서 부작용만 초래한다.

 

당장 입시 제도와 문화를 뜯어 고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수능 이후 현장체험학습이라도 편안히 갈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교육부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만약 유은혜 장관에게 어떤 책무가 있다면 그건 교육부 장관으로서가 아니라 사회부총리로서의 역할이 될 것이다.

 

 

▲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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