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디 머큐리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사람 노무현
프레디 머큐리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사람 노무현
  • 조기숙
  • 승인 2018.12.21 18:59
  • 댓글 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족 외 열정 느껴본 첫 번째는 노무현 대통령…프레디 머큐리가 두 번째
참여정부에서 홍보수석비서관을 지낸 조기숙 이화여자대학교 교수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2회차 관람한 후 프레디 머큐리와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겹쳐 보이는 지점들을 담담하게 기술한 글을 페이스북에 포스팅했다.
“영화는 볼수록 부족한 게 보이지만 음악에 중독돼 멈출 수가 없다”며, “보헤미안랩소디를 안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는 조기숙 교수는 이번 주말에 3회차 관람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필자의 허락을 얻어 포스팅 내용을 게재한다.
[편집자주]
 
 
보헤미안 랩소디를 본 후, 퀸의 음악을 듣거나 프레디를 떠올릴 때마다 자꾸 노무현 대통령이 겹쳐 보이며 눈물이 나오는 이유를 처음에는 잘 몰랐다. 하지만 프레디 머큐리의 마지막 시기에 대한 BBC 다큐를 보면서 그 이유를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1. 노무현과 프레디 머큐리는 동시대 사람이다. 노대통령은 1946년 9월 1일생, 프레디는 같은 해 9월 5일생으로 처녀자리로서 별자리도 같다.
 
현암사 출간 『366일 신비한 생일사전』을 펼쳐보았다.
 
「분석적이고 효율적인 처녀자리 태생들은 직업의식이 투철하다. 삶에서 질서를 원하고 체계적으로 일을 완수하고 싶어 한다.
 
처녀자리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기존 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끊임없이 검토하고 다듬어나간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완벽주의가 주위 사람들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확장되어 다른 사람들이 이들의 말을 거부하게 될 수 있다
 
반면 처녀자리 태생들은 자신의 결함을 지적당하는 건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 결함들을 이미 잘 알고 있고 스스로를 가장 가혹하게 평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결점을 인정하기 때문에 겸손하고 잘난 척하지 않으며 타인에게 봉사함으로써 자아 존중감을 확인한다.」
 
두 사람의 성격적 특성을 이렇게 잘 표현하기도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2. 두 사람은 시대의 엘리트나 언론권력과는 불화했지만, 대중으로부터 그 이전이나 그 이후 누구도 받기 어려운 강력한 사랑을 받았다는 점에서 닮았다.
 
프레디가 죽기 하루 전 날 비서를 통해 에이즈 투병 사실을 공식 인정했고, 이를 대서특필하며 비난을 쏟아 붓던 언론을 조롱하듯 24시간도 안 돼 숨을 거둔 점에서 그의 언론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그렇게 비난을 퍼붓던 언론은 단 하루도 안 돼 입장을 바꿔 그를 최고의 뮤지션으로 칭송하기에 바빴다.
 
서거마저도 비난했던 한국 언론보다는 영국 언론이 낫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프레디의 음악보다는 사생활에 관심이 더 많았다는 점에서 어느 나라나 언론은 대중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그의 음악을 폄훼했던 영국의 음악평론가들은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 혁신적인 프레디의 음악세계를 이해하지 못했다. 새로운 방식의 정치를 했던 노무현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의 언론권력과 유사하다.
 
 
3. 프레디의 음악이 영국의 엘리트 평론가로부터 저평가 받은 데에는 아버지가 인도출신이며, 그 중에서도 조로아스터교라는 소수 종교를 믿는 이민자라는 점이 한 이유라고 많은 이들은 주장한다.
 
노무현은 노동자 출신 고졸 변호사였기에 대통령이 되어서도 언론은 물론 야당 정치인으로부터 조롱을 당했다.
 
프레디가 우리 같은 부적응자를 위해 노래를 한다고 했듯이 노무현도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이 살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치를 했다.
 
▲ 1987년 7월 9일 부산역 광장에서 진행된 고 이한열 열사 추모제 및 직선제 댕취기념 부산시민대회에 참석하여 운집한 시민들 앞에서 노무현 변호사가 연설하고 있다.
 
▲ Queen - We Will Rock You (Rock Montreal) 유튜브 영상 캡쳐
 
2002년 BBC의 보도에 따르면, 영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싱글앨범에 대한 투표에서 3만명  이상이 참가한 100개의 여론조사를 모두 통산했을 때, 존 레논의 이매진과 비틀스의 헤이주드를 제치고 퀸의 보헤미안랩소디가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에서 퀸이 언론과 평론가의 낮은 평가에 비해 얼마나 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노무현 대통령도 전직 대통령 중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 1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좋아하는 사람의 비율이 점점 더 높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4. 노무현과 프레디는 같은 기간 동안 음악가와 정치가로 활동했다. 정치인 노무현은 1988년 데뷔 후 2009년 서거 때까지 21년의 정치인생을 보냈고, 프레디는 1970년 데뷔 후 1991년 눈을 감을 때까지 21년간 뮤지션으로 활동했다.
 
이 기간 동안 두 사람이 부침을 겪은 것도 비슷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기간 언론의 마타도어에 의해 지지도가 떨어지면서 지지자로부터도 오해를 받을 만큼 어려움을 겪었다.
 
퀸도 각자 싱글 앨범을 내거나 브라이언 메이가 천체물리학 박사과정에 들어가면서 소강기를 맞이하는데 프레디의 사생활에 대한 추문이 연일 보도되면서 프레디는 침체기에 빠졌다.
 
두 사람이 부침을 겪고 부활했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노 대통령은 봉하에 퇴임 후 소탈한 모습으로 국민과 소통하며 과거의 인기를 되찾아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프레디는 라이브에이드에서 “그들이 우리의 쇼를 훔쳤다”고 주관자인 밥 갤도프와 존 레논이 외쳤듯이 1985년 라이브 에이드 공연 이후 과거의 인기를 되찾고 부활했다.
 
▲ 2008년 어린이날 봉하마을
 
하지만 두 사람의 행복은 1년 남짓 지속되었을 뿐이다.
 
노 대통령은 2009년 초 검찰의 조사가 시작되면서 사저에 유폐되었고, 프레디는 라이브 에이드 이후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해 유럽투어를 시작한지 1년 남짓한 1986년 7월 27일 부다페스트 공연을 끝으로 다시는 라이브 무대에 서지 못했다. 그는 이 즈음에 에이즈 진단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5. 두 사람은 현장에서 빛을 발한 언어의 마술사였다. 프레디는 총 704회의 라이브 공연을 했을 만큼 라이브에서 더욱 빛나는 가창력에 상징은유를 가사에 많이 사용한 언어의 마술사였다.
 
보헤미안랩소디가 동성애에 대한 고백이라고 해석하는 사람이 많은 반면, 나는 그 노래를 처음 들을 때 자신의 미래를 직관한 노래가 아닐까 생각하며 전율을 느꼈다. 이처럼 그의 노래는 수많은 해석을 낳을 만큼 상징적이다.
 
노무현은 현장 연설을 잘하는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비유의 달인이라고 할 만큼 글쓰기 말하기에 능했다.
 
두 사람은 무대에서는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완벽주의자로서 가슴을 후벼 파는 포효하는 노래와 연설로 감동을 주었지만 사적으로 만나면 한 없이 수줍어하고 겸손했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무엇보다 두 사람을 가까이 했던 사람들의 공통된 증언은 타인을 지위나 신분에 무관하게 평등하게 인간적으로 대했다는 점이다.
 
▲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불멸의 레전드, 노무현과 프레디 머큐리
 
6. 두 사람은 시민참여 정신을 존중하고 실천했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퀸의 라이브는 많은 팬들과 함께 떼창을 부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노무현은 자신의 정부를 참여정부라 부를 만큼 시민들의 참여에 의해 대통령이 되었고 시민권력을 제도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퀸은 라이브공연에 사용하기 위한 장비를 여러 대의 거대한 트레일러에 실어 나른 것으로 유명한데 적자가 나더라도 완벽한 공연을 하는 것이 퀸의 목표였고 이틀 연속 공연을 한 경우에도 한 번도 같은 방식으로 하지 않았다.
 
마이클 잭슨이 3일간 똑같은 공연을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할 만큼 팬에 대한 그런 서비스는 예의가 아니라고 프레디는 생각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렇게 해서 국민이 화가 풀릴 수 있다면 대통령이 욕을 먹고 계란 투척을 받아도 얼마든지 감내하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민주적이라는 면에서도 닮았는데 프레디는 자신은 그룹의 리더가 아니라 리드싱어일 뿐이라며 퀸의 모든 결정은 민주적으로 한다고 말했다. 퀸이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명맥을 이어오는 힘일지도 모른다.
 
노 대통령은 안희정 전 지사에게 부하가 아니라 동업자라고 부를 만큼 수평적인 리더십으로 유명하다. 아직까지 수많은 친노 시민과 정치인들이 한국정치의 명맥을 이어가는 이유도 바로 이 민주적 리더십의 힘이 아니었을까.
 
 
7. 노무현과 프레디의 외모는 상남자였을지 몰라도 감각은 매우 섬세하고 여성적이었다.
 
돌아가시기 직전 참모들과 함께 <진보의 미래>란 책을 쓰기 위해 인트라넷에서 소통을 했었는데 다른 남성참모들은 침묵하는 반면, 노대통령과 나는 수시로 댓글을 주고받았다.
 
나의 쓰잘 데 없는 글에도 늘 댓글을 달아주시는 대통령을 보며 참으로 여성적이라는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프레디 또한 퀸의 로고, 앨범과 무대의상을 모두 스스로 디자인할 만큼 세심했고 공연을 했던 국가와 도시에 대한 연구에 기초해 그들과 가장 잘 소통할 수 있는 상징을 입거나 쓰고 무대에 올라 팬들을 열광시켰다. 내 입장이 아니라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섬세함이 내게는 매우 여성적으로 느껴졌다.
 
노 대통령은 국립묘지를 거부하고 집 가까이 작은 비석 하나만 남기라는 유언으로 그 분이 얼마나 많은 걸 세심하게 고려했는지 알 수 있다. 프레디 또한 자신의 무덤을 알리지 말라는 유언으로 아직도 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많은 팬들의 가슴 속에 살아있다. 감성의 여운까지도 배려했던 두 사람의 세심함과 예민함이 느껴져 더 가슴이 아리다.
 
 
 
8. 두 사람은 가장 힘든 일을 겪을 때 언론으로부터 무자비한 대접을 받았다.
 
노 대통령은 검찰이 가족과 측근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하면서 자택에 유폐되었는데 백여명의 기자와 카메라가 낮밤을 지키고 있어서 창문의 커튼을 열 수도 없었다. 대통령이 식당 창으로 바라보는 사자바위를 얼마나 좋아했었는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더욱 가슴이 쓰릴 것이다.
 
프레디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소문이 돌면서 2백 명의 기자가 프레디의 저택을 둘러싸고, 화장실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바람에 화장실도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죽음을 대하는 의연한 태도에서는 존경심이 절로 우러나오지 않을 수 없다.
 
프레디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순간까지 노래를 녹음해 유작을 남겼다. 목소리는 가늘고 힘이 없었지만 청아한 노래를 팬들에게 선물했다.
 
노 대통령은 스스로 죽음으로 가는 길에 허리를 굽혀 잡초를 뽑았다. 노 대통령은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고, 프레디는 한 번도 아프다고 징징대거나 누구를 원망하고 불평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9. 두 사람은 뭔가에 대한 집착이 강했고 그 집착이 두 사람의 창조의 원동력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노 대통령은 평생 지역주의를 깨기 위해 노력했고, 프레디는 노랫말에 I still love you가 가장 많이 나올 만큼 영원한 사랑에 집착했다.
 
애묘가였던 프레디는 고양이와 대화하고 늘 스킨십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역주의를 깨기 위한 노무현의 필사적인 노력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주었다면, 사랑에 대한 집착이 프레디의 노래를 간절하고 아름답게 만들었던 것 같다.
 
프레디가 사랑에 집착하게 된 이유는 8살 때부터 태어난 잔지바르에서 배로 60일이 걸리는 뭄바이의 영국 기숙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때문이라고 한다.
 
방학이 되어도 뭄바이에 있는 이모나 고모집을 전전했지 집에 돌아갈 수가 없었던 프레디는 엄마를 무척이나 그리워했다고 한다. 죽기 직전까지 에이즈 투병사실을 밝힐 수 없었던 이유도 보수적인 종교를 믿는 가족들을 걱정해서라고 한다.
 
사람은 태어난 환경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기에 거기에서 오는 사랑과 지역주의타파라는 집착을 창조의 원동력으로 승화시켰다.
 
 
 
10. 두 사람이 더욱 위대해 보이는 것은 선지자처럼 어렴풋이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다는 점이다.
 
노 대통령은 링컨을 가장 존경하는 분이라며 그가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미국이 통일되지도,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우리 정치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내가 뭐라도 할 수 있다면 나를 던지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걸 차마 죽음으로 연결시키지 못했던 건 나의 아둔함 때문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노대통령은 당신의 운명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에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는 생각이 든다.
 
보헤미안랩소디는 마치 프레디의 운명을 예견한 듯한 통창력이 있는 노랫말이다.
 
“I don’t want to die.... It doesn’t really matter to me. Anyway wind blows.”라는 가사에서는 노대통령의 유서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는 대목을 떠올리게 되고 불교의 색즉시공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두 사람으로 인해 그 이전과 이후는 뚜렷이 대비될 수밖에 없을 만큼 새로운 모범을 만들어냈다.
 
두 사람은 단지 뛰어난 정치가나 가수가 아니라 죽어서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불멸의 사랑을 받는 레전드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난 게 아니었을까!
 
내가 태어나서 가족 외의 사람에게 열정을 느껴본 건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 프레디 머큐리가 두 번째인 것 같다.
 
대중음악과 무관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 프레디의 삶이 궁금해 바쁜 와중에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느낀 소감이다.
 
이 글이 너무 억지스럽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냥 두 사람을 사랑하는 어떤 이의 생각이라고 가볍게 읽어주면 좋겠다.
 
▲ 2005년 4월 16일, 터키를 공식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의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에르도안 터키 총리와 선상(船上) 회동 자리에서의 모습.
 
 
PS. 프레디와 노무현의 평행이론을 아래처럼 보내준 분이 계시다.
 
노무현은 1973년에 첫 아이 노건호를 낳았고
프레디 머큐리는 1973년에 퀸 1집 앨범을 내놓음.
 
노무현은 1975년 사법고시 합격해서 성공가도를 달리게 되며
프레디 머큐리는 1975년 보헤미안 랩소디로 성공가도를 달리게 됨
 
두 분의 사주가 비슷해서 그렇지 않을까 싶네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8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좌좀박멸 2020-02-13 01:19:18
미친 좌좀 개소리 보소 ㅋㅋ 보헤미안 랩소디 뜨니까 거기다가 뇌물현 얹는거 봐라 ㅋㅋㅋ 뇌물처먹고 걸려서 쪽팔려 뒤진 인간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빨아제끼냐? 그렇게 존경스러우면 너도 따라 가던가 ㅂㅅ

정신나갔나 2018-12-23 15:58:50
뇌물 처먹고 수사 중단 시키려고 자살한 범죄자랑
희대의 아티스트랑 비교를해? 퀸 모욕하지마라

노묵훈 2018-12-22 22:41:03
프레디 노큐리... 그는 대체...

노무 2018-12-22 16:21:21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설쓰냐ㅋㅋㅋ

고종현 2018-12-22 14:43:44
현 문XX 정부를 겪으며 서민과 중소기업들은 심란하고 고통스럽습니다. 어느 때보다 더 노무현 대통령이 그리워지는 시기입니다.

김동 2018-12-22 14:41:18
노짱... 그립습니다ㅠㅠ

팔메라 2018-12-22 11:48:53
소설가로 등단 하지 그래유.......
39란 노래는 아시려나?

파드마 2018-12-21 23:32:04
머큐리와 퀸에 대한 책을 읽지도 않았고
머큐리에 대한 정보는 성정체성 정도이며
퀸의 음악은 '보헤미안 랩소디'만 알고 있을 뿐이었죠.

네~ 영화에 몰입하는 포인트,
교수님처럼 노무현 대통령님과 프레디의 교집합을 엮을 수도 있겠지요.

저의 경우, 영화의 내재적 의미에 몰입합니다.
소위 영화평론가의 평은 아예 읽지 않습니다.
블로거들의 리뷰 또한 그렇구요.
영화랑 만나는 나의 시선을 존중하는 거죠.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가 다큐가 아니니
당연히
사건을 재구성하고, 음악을 재구성하고, 인물들을 해석하여
'프레디 머큐리' 캐릭터를 영화로써 재창조합니다.

그 재창조에 이끌려 5차 관람을 했는데
볼 때마다 또다시 감동과 여운으로 멍~~해졌어요.
놓쳤던 디테일을 새롭게 발견하기도 하고.

그렇게 빠져든 요인들이 여럿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대사 하나하나에서 영화는
프레디 머큐리를 따뜻히, 소중히, 귀하게, 섬세히 배려하고 있음이었어요.
...........

보헤미안 랩소디 노래,
마지막 라이브 에이드 장면.

피아노 소리랑 너무도 어울리게
홀로
"Mama~"를 부르는 모습이
또다시 마음 아팠구요..ㅎ

가장 인상적인 노래는 엔딩 크레딧을 휘감아 도는
The Show Must Go On~!!

프레디 머큐리의 미성이 마치 '조수미'처럼 영롱하다는 느낌에 깜놀했는데
영롱한 목소리로 부르는 그의

'The Show Must Go On'은
그가 우리에게 노래로써 들려주는

어쩌면....유언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