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일 하기 좋은 대한민국’은 젠더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일 하기 좋은 대한민국’은 젠더 문제가 아니다
  • 주유미
  • 승인 2018.12.19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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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간이고 쓸개고 내놓으며 할 일’인가…그것은 누가 그렇게 정했나


페이스북의 연합뉴스 페이지에서 “한국 성 평등 149개국 중 115위 중국·일본 보다 뒤져” 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었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페이스북 댓글을 죽 보다가 문득 멈추게 하는 댓글을 보았다.


스스로를 3D 업종에 있다고 하며, 여자들을 고용하지 않는 게 아니라 여자들이 일하려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신체적 차이에 대한 반박을 의식해서인지 사무직 예를 들면서 “여자들은 간이고 쓸개고 다 버리고 일하지 않는다, 새벽까지 술상무하지 않는다”라고 하며 이는 남녀 차이가 아니고 능력 (즉 여성이 대체로 부족한 능력) 차이라고 하였다.


 

이와 관련된 생각은 이미 10여 년 전, 지금보다 근무환경이 더 좋지 않았던 시대이긴 하지만 아무튼 내가 남초 사무실에서 일할 때 하루에도 열두 번씩 했던 생각이었다.


아무리 관행이고 다들 그렇게 해 와서 자연스럽지만 그렇게 일하면 안 될 거 같은 것들.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을 연차가 올라가 뭘 아는 직원이 된다거나 철이 든 직원으로 여기는 것들.


암튼 그러한 일에 남자들이 더 적응을 잘 하는 현상을 보며 들었던 생각들이었다.


접대는 말할 것도 없고 내밀한 이야기 실질적인 이야기를 담배 피우며 한다거나 하는 것. 흡연이 남성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함께 담배를 피우며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는 행위는 여성 문화에선 낯설다.



그때의 화제는 완전히 공적인 것도, 완전히 사적인 것도 아녔다. 서로의 근황을 나누거나 사적인 부분에서의 공통점을 찾은 후 그런 토대에서 공적인 분야의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는 담배를 끄고 돌아와 공적인 영역의 일을 마치는 것이다.


내게는 절대 가격을 맞춰 줄 수 없다고 하더니 내 상사에게는 담배 한 대 피우고 나서 내가 원하는 가격에 맞추겠다 약속하고선 그냥 가 버린 영업담당자. 상사는 그가 도장 찍고 난 계약서를 의기양양하게 던졌다. 담배를 배울까 생각도 했지만 중요한 건 담배가 아니었다. 


나아가 그렇게 근황 이야기를 나누거나 친분을 쌓으며 쓰는 시간 때문에 야근을 하고 접대로 무리해서 오전 근무를 못 하는 것을 봐 주고 하는 문화는 어떠한가.


나도 근무시간엔 따라서 느슨해지고 (전산 외주업체랑 통화는 실제로 저녁 7시에 가능하고 막 그랬다. 그거 말고도 찾아오는 영업담당자들 돌려 보내고 나야 서류작업 가격 확인 작업 등등이 가능했다.) 근무시간 끝났는데도 일어나려면 어색하고 그랬지.


불합리하다고 느꼈지만 그 무렵에는 싱글이었지만 내가 아이 엄마라면 저렇게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실제로 육아로 일을 쉰 후 다시 일 시작하면서 보니 나도 그랬고 워킹맘들도 그랬고 늘 마음이 조급했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했다. 일은 해야 하고 퇴근은 늦어지면 안 되니까.


그런데 정시 출근해서 정시에 퇴근하는 자를 보고 뭐라고 불렀나. 칼퇴자, 업무가 적은 자, 일 할만 한 자, 참 좋은 회사에 다니는 자.


실제로 막 사업이 시작되기 전 입사를 해서 잠시 딱히 업무가 주어지지 않았던 때에, 집도 멀고 아이들도 걱정되어 서둘러 퇴근하곤 하던 나를 불러 다른 직원들 분위기도 있고 하니 되도록 칼같이 퇴근하지 말라는 신박한 소리를 듣기도 했다.



합리적인 인사평가제도가 없을 때이니 그저 회사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우수한 직원이 되었지. 하지만 그 직원이 여성일 때에는 양가적인 평가도 있었고. 여러분이 예상하는 그 평가가 맞다. 


하루하루가 도전이었다. 구매 담당으론 혼자 여성이었는데 과도기 흐름에 따라 상징적인 의미도 좀 있어서 달라지는 인식도 있긴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구색을 갖추기 위한 것에 그쳤다.


구매 통계에서 중소기업청 등등에서 요구하는 대로 여성 대표의 제품 현황을 파악하는 것도 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나.(생각하니 구매 담당들은 각자 파트가 있는데 전체 구매통계 내는 것도 내 담당이었음 ㅠ) 


여성이 유리한 구매 스킬을 찾고 싶고 증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이도 어리고 툭하면 윗사람들이 불러다 “구매란 말이다” 시전을 듣곤 했다.


나만의 방법이라는 것이 고작 ‘빡빡하게 구는 여자’(아무개 대리님. 대리님께서 이 가격으로 견적서를 주셔서 예산이 이렇게 된 걸 어떡합니까? 부가세 포함 견적서 써야 하는 거 몰랐어요? 절대 안 됩니다)에서 ‘애교떠는 여자’(에이 왜 그래, 사장니임. 이번만 좀 해줘요 네?)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영업담당들이 내게 달라진 거라곤 선물하는 품목뿐이었다. 여자 사장님이라는 자가 담당자 통해 에스티로더 선물을 보내 왔는데, 햐 지들은 ‘센스 있는 선물했다’고 얼마나 흐뭇할까, 그 일차원성에 치를 떨었다.


그 사장님께 “센스 있는 선물보다는 경쟁사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공략해 봅시다”라고 얘기하는 담당자는 없었을까.



거꾸로 묻고 싶다. 그게 정말 그렇게 ‘간이고 쓸개고 내놓으며 할 일’인지.


‘그렇게 일하는 게 맞는 것이다’라는 건 누가 만들었나? 그들은 그렇게 일하기 좋았고 그렇게 일해 왔고 그렇게 업무 현장을 세팅해 놨다. 상대적으로 늦게 업무 현장에 들어간 여자들이 그렇게 일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능하다고 얘기한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지?


업무 현장은 과거보다 합리적인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그렇게 개선된 업무 환경은 성별과 관계없이 모든 직장인의 ‘삶의 질’을 이전보다 나아지게 만들고 업무효율을 높여줄 것이다. 


직장에서의 생존을 위해 ‘간이고 쓸개고 내놓도록 강요당하는’ 그것은 젠더의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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