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제에서 권력구조의 문제 ② 충신과 역적 사이 1편
군주제에서 권력구조의 문제 ② 충신과 역적 사이 1편
  • 정재웅
  • 승인 2018.12.19 09:36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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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국공신 소하의 관직 ‘상국’ 지위가 2대 상국 이후 영구결번 처리된 이유

경제학 박사이자 페이스북에서는 ‘역사 덕후’로 알려진 정재웅 님이 ‘군주제에서 권력 구조의 문제’라는 주제로 새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매주 금요일 업로드 되니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협천자 영제후(挾天子 領諸侯 : 천자를 옆에 끼고 제후를 호령함)와 국궁진췌 사이후이(鞠躬盡力 死而後已 : 정성을 바쳐 나라를 위해 일하고 죽은 후에야 그만둠).

 

일견 상반된 듯한 이 두 글에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역적과 충신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 조조와 제갈량
 

연의와 정사를 떠나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전자가 언급하는 인물은 후한말의 조조, 후자가 언급하는 인물은 역시 후한말의 제갈량이다.

 

한명은 한조의 권신을 일컫는 망탁조의(왕망, 동탁, 조조, 사마의) 중 한 명인 반면 다른 한명은 현재까지도 충신의 대명사로 일컬어진다.

 

그렇지만 이에 앞서 조조와 제갈량에게는 중대한 공통점이 있다. 그건 바로 둘 다 승상과 상국이 되어 국정에 대한 최고 의사결정권을 갖고 국사를 좌지우지했다는 사실이다.

 

한조의 관직은 다소간 복잡한 변천을 거치지만, 그 변천의 과정은 간단하게 말하면 상국-승상이 지닌 막대한 권한을 어떻게 나누고 합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승상은 상국의 수석보좌관 격으로 상국 부재시 그의 업무를 대신하는 자리에 불과하다. 이런 승상이 상국과 동급으로 쓰이게 된 이유를 살펴보려면 한의 초대 상국인 소하와 그에 이어 상국이 된 조참을 살펴봐야 한다.

 

 

▲ 한나라 초대 상국을 지낸 소하와 그 후임자인 조참.
 

초한쟁패 시대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듯이 소하와 조참 모두 고조 유방이 패현 풍읍 사상의 정장으로 몸을 일으킬 때부터 함께 했던 동료이자 신하다.

 

소하는 패현 풍읍의 하급 관리에 불과하였지만, 그의 진정한 가치는 유방의 함양 입성 이후에 드러났다.

 

함양에 입성한 유방의 장졸들이 모두 금은보화를 찾아 궁성을 헤맸지만, 오직 소하만은 진 승상부에 보관되어 있던 여러 문서와 어사부의 율령도서(史律令圖), 지적도 및 호적부 등의 문헌들을 수집하여 깊숙한 곳에 감추어 보관했다. 이러한 문서들이 초한 쟁패기와 그 이후 한이 천하를 안정시키는데 도움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후에도 소하는 홍문연에서 분노한 유방을 진정시켜 그가 항우와 전면전을 벌이는 대신 입촉하여 힘을 키우도록 만들어 그 공으로 한의 승상이 되었다.

 

그리고 대장군으로 한신을 추천하여 유방이 군사적으로 항우를 이길 수 있는 기틀을 만들고, 삼진을 평정한 유방과 한신이 마침내 관중 밖으로 나가 항우와 천하쟁패를 벌일 때에는 훗날 혜제가 되는 유영과 함께 관중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한의 종묘와 사을 세우고, 궁궐을 건축하는가 하면, 법령과 규약을 제정하고 관중 각 지역에 군과 현을 두어 행정조직을 완비했다. 

 

즉 소하 혼자서 제국의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더 대단한 사실은 이 당시 소하가 담당한 지역은 작은 군이나 현이 아니라 관중과 파촉인데, 이 지역은 진이 힘을 길러 나머지 육국을 압도하여 전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원천이 되는 지역이었다.

 

시황제 영정 사후 혼란을 겪었기에 전성기 진 수준의 국력은 온전하게 나오기는 힘들었지만, 제대로 다스리고 활용하기만 하면 초에 근거한 항우의 실력에 비해 밀릴 이유는 없었다.

 

다만 관건은 진 멸망 이후 급속도로 붕괴한 행정조직을 복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는데, 이 어려운 과업을 소하가 해냈다. 그것도 매우 빠르게.

 

이후 항우와 유방의 전쟁이 장기화되자 소하가 마련해놓은 기반이 빛을 발하게 되었다. 즉 유방은 항우와 수많은 전투를 겪으며 연이은 패배로 숱한 인력과 물자를 잃었지만 소하가 잘 다져놓은 관중에서 쏟아지는 보급이 그 손실을 충분히 메워주었다.

 

이렇게 유방이 악전고투를 거듭하며 항우의 본대를 붙잡아놓은 사이 대장군 한신의 군대가 북방을 완전히 평정하면서 대세는 결정 났다.

 

이 공로로 소하는 한 성립 이후 논공행상 과정에서 공신 중 최고 서열이 되어 차후(酇侯)에 봉해졌으며 7000호로 가장 많은 식읍을 받았다. 그리고 칼을 차고 황제를 배알하며, 황제를 배알할 때도 작은 걸음이 아니라 큰 걸음으로 걸을 수 있게 하는 등 황제 유방으로부터 신하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

 

이러한 소하의 공적에 대해 사마천은 사기 소상국세가에서 다음과 같이 평한다.

 

“소하가 이룩한 공훈은 다른 공신들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높고 컸다.”

 

상술한 것처럼 초한쟁패기 한이 초에 맞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소하의 행정능력과 인사능력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사구팽 일화로 유명한 고조 유방이 수많은 공신을 숙청하는 가운데도 오직 소하 만은 그 높임이 낮아지지 않은 이유는 그 자신의 저러한 능력에 더해 자신이 천거한 국사무쌍(國士無雙 : 나라 안에 둘도 없는 뛰어난 인재)인 한신이 제국에 위험한 인물이 되자 뒤돌아보지 않고 숙청에 가담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오직 국가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하는 한신 숙청에 세운 공으로 승상에서 상국이 되었고, 식읍 5000호가 더해졌다. 

 

소하가 임명된 상국은 바로 이러한 소하의 공훈과 권위로 인해 그 이후 2대인 조참까지만 계승되었을 뿐 이후로는 영구결번이 되고, 상국의 수석보좌관인 승상이 그 직무를 대행하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그 역할마저도 크다고 해서 삼공인 사도, 사공, 태위로 그 권한을 나눈다. 

 

이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초한쟁패기부터 한 초기까지 소하가 얼마나 막중한 권한을 보유하고 많은 일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막대한 공훈과 권위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명 홍무제 주원장과 더불어 공신 숙청의 대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 고조 유방의 치세를 살아남으며 상국까지 오른 소하의 예는 역으로 그와 같은 인물이 아닐 경우 이 자리가 얼마나 제국에 위협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능력과 함께 야심을 지닌 자가 오르면 황제가 위험해지고, 야심이 없지만 능력도 없는 자가 오르면 제국 전체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하와 조참의 공훈과 권위도 있지만 그 이후 이 지위가 영구결번이 된 것이지 않을까.

 

즉 상국이라는 지위는 충신과 역적 사이에 굉장히 미묘하게 위치한 관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우리가 익히 아는 것처럼 후한 말에 서로 상반되는 두 인물을 통해 그 명과 암이 너무나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계속)

 

 

▲ 한나라 2대 상국으로서 조참이 한 일…. 위키백과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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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드마 2019-01-21 20:56:01
2편을 먼저 읽고 1편을 찾음. ㅠㅠ

[삼국지 연의], 완독하진 않았어도
워낙에 유명하니 유명한 이름들이나 사건들은
띄엄띄엄 기억함.

소하...참 이쁜 이름.

정치판 운동권 진보인사 이름에 '소하'가 있었음.
얼굴은 모른 채 이름만 알고 있었음.
그 이름의 얼굴이 등장했음.
정의당 비례대표 윤.소하..ㅎ

산산히 부서진 나의 아름다운 이름.
외모 때문?? 그 당시...어쩜 그럴 지도. ㅠㅠ

이젠
정의당이 싫고, 운동권 진보라는 말조차 싫은 걸
어떡하냐구. ㅎ

파드마 2019-01-21 20:56:36
222 ^^

어우러기 2019-01-11 14:39:14
흥미진진한 관직과 인물탐구룰 통해 배우는 역사

아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