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로마제국 선제후 이야기 ③ 금화, 더 많은 금화
신성로마제국 선제후 이야기 ③ 금화, 더 많은 금화
  • 정재웅
  • 승인 2018.11.26 14:1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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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5세, 천문학적 액수의 금화 뇌물로 뿌려 황제위를 “샀다”

서기 962년부터 1806년까지 840여년간 지금의 독일을 중심으로 체코, 오스트리아, 스위스, 북부 이탈리아 그리고 폴란드와 프랑스 일부까지 넓은 권역을 지배한 신성 로마 제국은 고대 로마 후기의 ‘황제’를 국가의 최고 통치자로 하고 여러 제후국을 휘하에 둔 나라였습니다.


신성 로마 황제는 선제후(選帝侯, 라틴어: Princeps Elector, 영어: Prince-elector)라는 이름의 선거인단이 뽑았는데, ‘선제후’들은 백작이나 공작, 대공 등의 직책을 맡고 있었으며 위계상으로는 신성로마제국의 봉건 제후들 가운데서도 황제 다음으로 높았다고 합니다.


경제학 박사이자 페이스북에서는 ‘역사 덕후’로 알려진 정재웅 님이 뉴비씨에 ‘신성로마제국 선제후 이야기’를 5회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연재물은 매주 금요일마다 업로드 되니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 2016년 5월, 유튜브에 올라온 카를 4세 탄생 700주년 기념 영상 썸네일

1356년, 황제 선출 권한을 지니는 선제후를 4인의 세속제후와 3인의 성직제후로 제한하는 한편 그들의 특권을 명시한 금인칙서가 룩셈부르크 가문의 카를 4세(1316-1378)에 의해서 선포되었다.


황제위를 자신의 가문인 룩셈부르크 가문에게 세습시키려 한 카를 4세의 의도와는 달리 이후 황제위는 알브레히트 2세 이후 단 한차례(비텔스바흐 가문의 카를 7세)를 제외하고는 모두 합스부르크 가문에 의해 상속되었다. 


비록 합스부르크 가문에 의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위가 계승되는 일이 기정사실화 되었다고는 해도, 황제가 되기 위해서는 일곱 선제후의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물론 일단 황제로 선출된 이후에는 자신의 계승자를 “로마왕”으로 임명하여 공동 통치자 겸 차기 황제로 내정할 수 있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황제 선거에 있어 유리한 고지를 하나 차지하는 일에 불과했다. 


이런 이유에서 신성로마제국 황제 선거에서는 선제후에 대한 각종 공약과 뇌물이 오갔다.


예를 들어 벨프 가문의 오토 4세 같은 경우는 자신의 후계자에게 황제위를 세습시키지 않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되었는가 하면, 합스부르크 가문 신성로마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끈 막시밀리안 1세와 그 손자 카를 5세의 경우에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금화를 선거자금 겸 선제후에 대한 뇌물로 뿌려 황제위를 “샀다.”


▲ 신성로마제국 카를 5세 황제. Charles V, Holy Roman Emperor

카를 5세(1500-1558)의 경우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막시밀리안의 손자인 동시에 카스티야 연합 왕국의 국왕인 펠리페 1세와 후아나의 아들이자 제국의 노른자위인 저지대(현재의 베네룩스 3국)의 영주였음에도 불구하고 신성로마제국 황제 선거에서서 프랑스의 국왕 프랑수아 1세와 맞붙어 무려 85만 두카트를 선거자금 겸 선제후에 대한 뇌물로 뿌려 황제로 선출될 수 있었다.


두카트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금화로 무게 약 3.5g에 순도 99%의 금화다.


현재 금 시세를 기준으로 평가하면, 1g짜리 골드바가 7만1000원에 거래되므로 카를 5세가 뇌물로 쓴 금액은 무려 603억5천만원에 달한다.


저 막대한 금액을 조달하기 위해 카를 5세는 티롤 지방 은광 채굴권을 담보로 하여 독일 남부 아우크스부르크에 근거지를 둔, 유럽 최고 은행가 가문 중 하나인 푸거 가문의 야코프 푸거에게 돈을 빌렸다.


여담으로 야코프 푸거는 놀라운 정치적 감각의 은행가로 유명한데, 신성로마제국 황제 선거에 출마하는 카를 5세에게는 이렇게 막대한 자금을 융통해주었지만, 그 할아버지인 막시밀리안 1세가 교황 선거에 출마할 자금의 대출을 요청했을 때는 거절한 바 있다.


이를 일컬어 시오노 나나미는 “돈놀이꾼의 놀라운 현실적 감각은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다”고까지 평한바 있다. 


▲ 카를 5세 시대에 발행된 두카트

금인칙서를 통해 선제후가 7인으로 고정된 덕분에 유력 제후 사이에 선제후 지위를 놓고 전쟁을 할 이유가 사라졌고, 선거 때마다 일곱 선제후는 자신들이 가진 표의 가격을 후보들과 흥정하며 몸값을 높였다.


비록 제위는 합스부르크 가문이 가졌지만, 실질적인 제국의 주인은 황제에 필적하는 대귀족인 선제후가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선제후는 명목상으로는 어디까지나 황제의 신하이지만, 그 동시에 황제를 선출할 권한이 있는 유권자였기에 황제에게는 상전이었다. 


카를 4세의 금인칙서는 선제후 자리를 둘러싼 유력 제후들 간 전쟁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여 황제 선거가 있을 때마다 생기는 혼란을 제국의 최고위층으로 고정하는 효과가 있었다.


▲ 카를 4세가 공포한 금인칙서.

하지만, 그 반면에 선제후에 대한 견제는 다른 선제후로밖에 할 수 없는 까닭에 선제후들의 카르텔이 형성되어 그들 스스로 자신의 권한을 공고하게 만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에 야심이 있는 유력 귀족들은 세습이 불가능한 까닭에 주기적으로 교체되는 3대 성직제후 - 마인츠 대주교, 쾰른 대주교, 트리어 대주교 - 를 노리게 되었고, 그 결과 이 성직제후 혹은 주교공이 돈으로 거래되는 일이 빈번해졌다. 


어떠한 제도든지 그 몰락은 그 제도가 강화된 그 원인에서 시작됨이 일반적이다. 바야흐로 선제후 제도도 그들의 권한을 강화한 금인칙서에 의해 몰락할 때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계속)


▲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헨리 7세(제위 기간 1312~1313년) 선출을 위해 모인 선제후들. 1341년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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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드마 2018-12-20 15:17:58
어떠한 제도든지 그 몰락은 그 제도가 강화된 그 원인에서 시작됨이 일반적이다.
바야흐로 선제후 제도도
그들의 권한을 강화한 금인칙서에 의해 몰락할 때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아.... 이번 글의 마지막.

'견제받지 않는' 권력의 부메랑.
정말 끔찍한 진실입니다.
'군사독재정치' 대한민국 정치가 이미 증명했음에도
지금 집권 민주당 당대표는
'한 줌' 당원들이 자신을 '견제하는' 걸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네요.

어우러기 2018-12-14 14:18:41
권력이 집중되면 어떤 방식으로든 금권의 세습을 위해 집단자체가 고통받는 방식으로 썩어가는군요

그래도 퇴행하지 않고 느리게라도 발전하는 역사의 흐름의 한단면을 볼 수 있는 흥미진진한 역사이야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