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일석 칼럼] 최저임금의 지불 책임
[고일석 칼럼] 최저임금의 지불 책임
  • 고일석
  • 승인 2018.05.3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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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질적인 최저임금 논의를 위한 환경이 마련됐다
 

이번 주 계속 최저임금법 개정안과 관련된 얘기를 하고 있다. 어제 어떤 분이 “예전에는 이런 글을 써놓고 지금 와서 딴 소리 할 수 있냐”며 어떤 링크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작년 7월 허핑턴포스트에 올린 글이었다.

 

졸문이지만 한 번 읽어보시면 최저임금에 대한 내 생각을 살펴보실 수 있을 것이다.

 

☞ 알바를 고용해 본 입장에서 생각하는 ‘최저임금 1만원’

 

그 분이 왜 이 글을 내밀면서 내가 다른 소리를 한다고 말씀하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글의 요지는 이런 것이었다.

 

“최저임금의 지불 책임을 오로지 고용주에게만 지워서는 안 된다. 마트나 프랜차이즈는 수수료도 좀 줄여주고, 본사 혹은 납품업체의 부당 거래도 줄이고, 식당·점포의 경우 당연히 임대료 부담도 줄이고 해서 고용주의 지불 여력을 확보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즉 최저임금의 1차적인 지불 책임이 사업자들에게 있다고 해도 그들의 여력이 충분하지 않으면 거래 당사자들과 정부, 그리고 사회가 함께 그들의 지불능력을 확보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미 문재인 정부가 그 방향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

 

이 글은 “최소한 최저임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책임이 주로 자영업자와 소규모 사업자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규모가 있는 기업에서 직원들 최저임금도 못 맞춰줘서 전전긍긍하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필시 범상한 상황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자영업자와 소규모 업자들 중에 돈 쌓아놓고 장사하는 사람은 없다. 다들 직원들보다 조금 더 벌든지 혹은 덜 벌든지, 때로는 (어쩌면 상당수가) 장사해서 남는 게 없어서 빚내서 월세 내고 인건비 주고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이들에게 곧바로 부담이 주어진다. 다행히 조금 여력이 있거나 그 사이 매출이 좀 올랐으면 기꺼이 올려주겠지만, 그럴 여력이 없다면 직원들 근무 시간을 줄여서 월 지급액을 맞추거나, 아니면 직원을 줄이고 업주가 일을 더 하거나, 그것도 안 되면 폐업을 해야 한다.

 

 

최저임금 결정 주체와 지불 책임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은 계속 올려야 한다. 그래야 저소득층의 소득이 늘어나서 (당장은 아닐지라도) 소비가 늘어나고 경기가 좋아지고, 그러면 지금은 최저임금 때문에 속앓이를 하는 사업이라도 형편이 펴질 것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저임금의 결정에는 근로자위원, 사용자위원, 그리고 공익위원들이 참여하는데, 근로자위원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사용자위원은 여러 단체들이 참여하지만 경총이 주도한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원래 최저임금은 바로 그 선에 걸쳐 있는 사업자와 노동자들에게 미쳐야 한다. 그런데 법 개정 전의 현실은 최저임금 선을 훨씬 넘어서있는 사업자들과 노동자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다음 해 최저임금 수준을 정하는 데 있어서 바로 최저임금 선에 있는 사업자와 노동자가 서로 납득할 만한 수준이 있다고 해도, 최저임금과는 관계가 없어야 마땅할 중견급 이상 기업과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상상을 해보자. 이미 지난 해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이 결정되자 편의점업계는 점주들의 지급 여력을 보조해줄 수 있는 여러 조치를 취했다. 일본 편의점업계의 사례를 그대로 벤치마킹했다.

 

이런 식으로 만약 정부나 어떤 공동체 조직이 마트업계와 상의를 해서 입점 수수료를 줄여 마트 점주들이 임금을 최저임금 기준으로 1% 정도 올려줄 수 있는 여력을 확보했다고 치자.


또 정부가 신용카드업계를 설득해서 카드수수료를 대폭 낮추는 방법으로 소규모 점포들의 지급여력을 확보했다고 치자. 

 

그러면 경총과 중기중앙회에서 “오, 그러냐” 하면서 최저임금 인상에 순순히 응해줄까?그들은 마트와 소규모점포 점주들이 지불여력을 확보했건 말았건, 최저임금이 1% 올라가면 자기들 소속 업체의 월급은 더 많이 올려줘야하기 때문에 기를 쓰고 가로막을 수밖에 없다.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아무리 이런 정책 저런 정책을 써도 경기가 나빠져서 도저히 업주들의 지불능력이 확보되지 않는 경우, 양대 노총에서 파견된 근로자위원들이 최저임금의 동결이나 소폭 인상에 쉽게 합의해줄까?

 

소규모 사업자들은 상황이 어려울지라도 자신들의 카운터파트너인 중견 이상 기업들은 지불여력이 충분한데, 최저임금을 올려서 그들로부터 더 많은 임금을 끌어낼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려고 할까?

 

물론 최저임금은 오로지 저임금 노동자와 소규모 사업자에게만 걸쳐있는 정책이 아니다. 최저임금은 지금 같은 희한한 임금 구조가 아니더라도 사회의 전체적인 임금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거시경제정책의 수단으로서의 성격도 있다.

 

또한 근로자위원이나 사용자위원들이 오로지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익만을 대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도 자신의 이해관계보다는 최저임금이 가지고 있는 사회경제적 의미와 기능을 더 깊게 생각하고 판단할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노사 모두 지금까지 해온 행태들이나 특히 노총이 최근 벌이고 있는 허황된 선전들을 보면 나의 믿음은 그저 기대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본질적인 최저임금 논의를 위한 환경

 

위에서도 말했지만 최저임금은 계속 올려야 한다. 그 돈이 어디서 나오든, 자영업자의 주머니에서 나오든, 정부 재정에서 나오든, 더 많은 저소득자들과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임금이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최저임금 제도는 최저임금 선에 걸쳐져 있는 노동자들과 그 이하에 있는 초저임금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이어야 한다.

 

그것이 어찌어찌하여 그 이상의 노동자들에게 매우 효과적이고 요긴한 임금 인상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고, 그리하여 상당수의 노동자들이 이번 법 개정으로 어쩌면 유일할 지도 모르는 임금 인상 수단을 잃게 됐더라도 그것은 그것대로 방법을 찾아야 한다.

 

비록 최저임금 제도가 그런 기능을 수행해왔다고 하더라도 이 제도는 결코 중상위 노동자들의 임금을 국가가 강제로 올려주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이번 최저임금법 개정은 상위 사용자들과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해관계를 완전히 해소시켰다. 따라서 그들 조직의 이해관계가 최저임금 결정에 영향을 줄 소지는 사라졌다.

 

최저임금 선에 걸쳐져 있는 사업자들의 여력이 확보되어 있는데도 사용자 단체들이 기를 쓰고 반대할 일도 없어졌고, 저임금 노동자들도 납득할 만큼 소규모 사업자들의 상황이 어려워져 있는데 노동자 단체들이 불문곡직 고율 인상만 고집할 가능성은 훨씬 줄어들었다.

 

이제 보다 본질적으로 최저임금이 가지고 있는 사회경제적 의미와 기능에 집중하고, 최저임금 선의 언저리에서 실제로 최저임금의 지불책임을 지고 있는 중소규모 사업자들, 그리고 그들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 수단 등을 살펴가면서 임금의 하한선으로서의 최저임금을 논의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최저임금위원회는 7월까지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한다. 아마도 정부는 내후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에 맞추어 결정될 수 있기를 바랄 것이다.

 

이번 개정으로 사용자 위원들이 격렬하게 반대할 소지가 훨씬 줄어들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용자 위원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동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 것이다.

 

그러나 내년을 거쳐 내후년 최저임금 1만원이 달성되더라도 노동자 단체들은 ‘허울뿐인 1만원’이라고 비난할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최저임금 선에 걸쳐져 있는 저임금 노동자들은 ‘시급 1만원’을 실질적으로 확보하게 된다.

 

그래봐야 노총 소속 노동자들의 임금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수준이겠지만, 최저임금만으로도 기초적인 생활이 가능해야 한다는 최저임금 제도의 정책적 목표는 어느 정도라도 의미 있게 달성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최저임금만으로도 노총 소속 기업들의 제품을 더 많이 구매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그 분들의 임금도 저절로 오를 것이다. 당장 최저임금의 혜택을 볼 수 없게 됐다고 해서 너무 화내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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