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의 느닷없는 ‘사돈 남 말’
조선일보의 느닷없는 ‘사돈 남 말’
  • 고일석
  • 승인 2018.02.09 17:26
  • 댓글 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땅히 표현할 말이 없는 조선일보의 어이 없는 유체 이탈

이 글을 쓰기 위해 조선일보의 행태에 걸맞는 사자성어가 뭐가 있을까 한참 고민했다.

 

적반하장, 후안무치, 견강부회, 인면수심, 양두구육, 교언영색에서 반어적 표현으로서의 개과천선까지. 그러나 도저히 마땅한 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

 

조선일보는 “‘평창올림픽’ 대한민국이 주인공이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온라인 1면 머리기사로 올려놨다. 원래 제목은 더 자상하다. "'평창올림픽 성공'이 최우선이고 대한민국이 그 주인공이다" 내용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바람직하며 온당하다.


 
도둑놈도 “남의 재물을 탐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한 구절을 읊을 수 있다. 조폭들도 팔뚝에 “바르게 살자”는 문신을 새겨놓기도 한다.  

그러나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을 일삼던 자가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 모든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고 외친다면 듣는 사람은 어안이 벙벙하다가 화가 치밀어오를 것이다.

 

사설의 내용은 구구절절 바르고 옳다.

 

"아무 것도 없던 강원도 깊은 산골이 선진 부국들 겨울 축제의 주인공"이 됐고, "세계 역사에 남을 대한민국 부흥의 한 상징"이기도 하며, "92개국 2925명의 선수가 참여하는 지구 전체의 축제로서 전 세계인이 TV를 통해 선수들 동작 하나하나에 열광할 것"이라고 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3수의 천신만고 끝에 유치했다"는 것을 강조하기도 했고, "어렵게 성사시켜 놓고 운영 미숙으로 오점을 남겨서는 안 된다"는 당부를 하기도 했다.

 

특히 사설의 마지막 문단은 어느 한 줄 뺄 것이 없다.

 

“7년 전 IOC에서 "평창"이 발표될 때의 전율을 모든 국민이 기억하고 있다. 그 감격을 모두가 되살려내야만 한다. 어떻게 유치한 올림픽인가. 실패는 있을 수 없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역대 어느 대회보다 완벽한 진행과 자원봉사자들의 헌신, 국민의 열기로 선수들이 최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평창에서 쏟아지는 감동의 스토리들이 지구촌을 울리고 웃게 해야 한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감동적이다. 이 말을 하고 있는 자가 조선일보만 아니라면 마음 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하염없는 존경심이 용솟음쳤을 지도 모른다.

 

 

어이없는 자가당착과 유체이탈

 

그런데 사설의 가운데 부분은 그냥 어이가 없다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국민들이 평창올림픽을 살리고 나라를 위하는 마음으로 경기장을 찾아 응원했으면 한다.”

 

불과 며칠 전 평창 리허설을 다녀와서는 “추위에 떤 기억뿐”이라며 악담을 하고, “영하 22도에 보안검색 100m 가는 데 1시간” 걸린다며 푸념을 늘어놓던 그들이다.

 

또 이런 말도 했다. “북한이 참가를 결정한 이후 세간의 이목이 온통 정치적인 문제로 쏠리면서 정작 올림픽의 주인공들인 선수들이 관심을 받지 못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이 정도면 부패 경찰이 치안 부재를 걱정하고, 재벌의 떡값을 꼬박꼬박 챙겨먹던 검사가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검찰의 정의를 논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면서도 “평창올림픽이 개막되는 오늘부터는 더 이상 그럴 수 없”단다. “이제 올림픽과 평창이 최우선”이란다.

 

이게 누구보고 하는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돈 남 말 하는 것도 분수가 있고, 고양이 쥐 생각하는 것도 정도가 있다.

 

 

기왕 내놓은 옳은 말, 올림픽 기간만이라도 지키길

 

북한이 참가를 결정한 이후 온통 정치적인 문제로 몰면서 정작 올림픽의 주인공들인 선수들을 내팽개친 것은 “세간의 이목”이 아니라 바로 조선일보 너희들이다. 

 

“평창올림픽”에 “평양올림픽”이라는 속 터지는 딱지를 붙이고 주야장창 노래를 불러댄 것도 조선일보고, 올림픽 소식을 오로지 북한 얘기로 덮어버린 것도 조선일보며, 현송월이니 남남북녀니 하면서 예술단을 졸졸 따라다니며 정작 선수들은 뒷전으로 밀어버린 것도 조선일보다.


어제까지만 해도 "(북한 대표단에게) 육해공 다 열어준다"며 비분강개하고, "김일성 일가, 6.25 이후 처음 내려온다"며 공포와 혐오를 조장하던 그들이다. 

 

이게 뭔가? 돈 세탁에 신분 세탁이란 게 있더니 조선일보는 이제 말 세탁을 하는 것인가?

 

말이야 옳은 말이니 너무 야박하게 시비를 따질 필요는 없겠다. 어쩌면 이게 조선일보식의 반성이고, 부끄러움의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자기 기만인지 자기 성찰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기왕 옳은 말 했으니 최소한 올림픽 기간 동안 만이라도 이 사설처럼 말 같은 말만 좀 골라서 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p.s.


네이버 댓글 알바들은 이 사설 보고 정신분열 중

☞ [사설] '평창올림픽 성공'이 최우선이고 대한민국이 그 주인공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5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미아 2018-02-20 23:08:37
완전 사이다

대구깨시민 2018-02-10 21:19:50
국민들의 심정을 고일석 기자님이 대신 해주시니 부글부글 끓던 속이 좀 가라앉네요.
조선일보가 하는 말은 순수성이 없으니 또 무슨 계산일까 싶은게 워낙 많이 속아봐서 그냥 순순히 들리지가 않네요.ㅋ
올림픽 끝날 때 까지만이라도 제발 지랄풍작들을 떨지 말아야 할텐데 국민들이 잘 지켜볼 겁니다.

0 0 2018-02-10 09:31:24
대표 기레기 ..폐간이 답이다

ㅇㅇ 2018-02-10 01:50:47
통쾌합니다 ^^ 감사합니다

평택시민 2018-02-09 23:27:14
고일석 기자님 칼럼? 기사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